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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시민기자 그룹 '40대챌린지'는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편집자말]
얼마 전, 남편이 제주 여행 에세이를 읽고 나에게도 여행을 다녀오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이를 낳은 지 12년, 드디어 나에게도 자유의 시간이 찾아온 것인가. 남편은 그동안 가끔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난 남편보다 육아에 더 깊이 관여하고 있어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 남편의 제안을 덥석 물었다. 사실 혼자 여행하는 거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혼자 여행을 간다니 주변에서 한 마디씩 한다.

"아이는 어떻게 하고 가는 건데?"
"혼자 여행하는 거 위험하지 않아?"
"남편이랑 아이 밥은?"
"자유부인이로구만."


내가 자유부인이 되기 훨씬 전에 이미 우리 집엔 자유남편이 있었다. 아이도 이제 12살이니 혼자서 학교도, 학원도 갈 수 있다. 남편이 퇴근만 일찍 해서 아이와 저녁 시간을 보내면 될 일이다. 나이든 중년 여자의 국내 여행이 위험하다면 안 위험한 곳이 없을 터. 게다가 한 달도 일주일도 아닌 고작 2박 3일 여행인 걸. 크게 걱정할 일이 무엇인가.

가고 싶은 마음과 두려운 마음
 
길 가다가 너무 예뻐서 찍은 유채꽃밭
 길 가다가 너무 예뻐서 찍은 유채꽃밭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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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의 말은 훌훌 털어버렸는데 정작 내 마음속에서 두려운 마음이 올라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설레기보다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길치인 내가 혼자 잘 다닐 수 있을까. 난 운전도 못 하는데. 서울에서도 가끔 버스를 잘못 타는데. 이러다 숙소에만 처박혀 있는 건 아닐까. 설마 태풍이 불어 결항 되는 건 아니겠지.

가족과 함께 여행 갈 땐 해 본 적 없는 걱정들이다. 결혼 전에는 가끔 혼자 여행도 갔었는데, 어쩌다 이런 겁쟁이가 됐을까. 가고 싶은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한다. 아이에게 "엄마 여행 가지 말까?" 하고 물으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왜? 다녀와. 다녀와. 난 걱정 말고. 2박 3일 말고 한 일주일 정도 있다가 와."

난 아이가 학원에서 늦게 오는 목요일을 가장 좋아하고 아이는 내가 여행가는 날을 기다린다. 같이 있어도 좋지만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도 좋은 관계. 그래, 가자.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캐리어가 아닌 배낭에 짐을 싼다. 짐은 최소한으로 아주 단출하게 챙긴다. '큰 욕심 없이 숙소 근처의 오름 몇 군데만 다니자. 카페에서 글을 쓰자' 하는, 짐만큼이나 단출한 계획을 세운다. 이번 여행은 떠남 자체에 의의가 있다. 그리고 혼자 하는 여행이라는 것도.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핸드폰 속 지도 앱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내린 후에는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그 모든 과정이 얼마나 걸리는지 아주 친절하게 알려준다. 길을 잘못 들어도 길치라고 탓할 사람도 투덜댈 사람도 없다.

그저 혼자 허허, 이 방향이 아니군 하며 다시 걸을 뿐이다. 아이와 왔을 때 가지 못했던 제주도 서점들도 가고 싶고 아래서 구경만 했던 성산일출봉도 오르고 싶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혼자니 거리낄 것이 없다. 단출한 계획으로 왔는데 제주도 풍광을 마주하는 순간 욕심쟁이가 된다.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곳을 찾아가 내 모습도 야무지게 그려달라고 하고, 서점에 가서 제주와 어울리는 책도 골랐다. 가족 여행 때는 친구들에게 거의 연락이 오지 않는데 이번엔 친구들 연락이 많다.

"지금 어디야?"
"뭐 하고 있어?"
"사진 좀 찍어서 보내 봐."


카톡이 하루에도 여러 번 왔다. 다들 나의 여행을 궁금해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자유롭고 재미있지만 외롭기도 했다. 생각 외로 가장 큰 문제는 숙소였다. 사실 그 곳을 예약한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인데 화장실이 딸린 일인실이 있어서였다. 대중교통으로 가기도 좋고 근처에 오름도 많고 평도 좋았다.

어둑어둑해질 즈음 숙소에 도착했다. 사장님께서는 친절하게 밖으로 나와 맞아주셨다. 게스트하우스는 큰 독채 두 동으로 이루어졌다. 내가 묵는 건물 1층은 주방 및 거실이 있는 공용공간이고 2층에는 1인실, 2인실, 4인실 등 방들이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신발을 정리하려는데 사장님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신다.

"오늘 이 독채에는 손님만 계시거든요. 2층 예약한 방 쓰시고 1층 공용공간은 자유롭게 사용하세요."

잠시 좋았다가 이내 무서운 마음이 든다. 이 큰 건물에 나 혼자라니. 하지만 오늘 난 아주 피곤하니까 금세 잠이 들겠지. 밤이 깊었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잠이 들만하면 '딱딱' 소리가 난다. 효자손으로 원목 식탁을 두드리는 것 같은 아주 명징한 '딱딱' 소리다. 정체불명의 소리에 잠은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다.

달아난 잠을 다시 부르려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스트레칭도 했다. 그래도 잠이 안 와 다시 조명을 켜고 책을 읽었다. 잠이 살며시 오는 것 같아 누웠는데 '딱딱' 소리가 또 나고 잠도 휘리릭 달아났다. 귀에 이어폰도 끼어보고, 자는 위치도 바꿔보고 그 소리는 또 나고 난 침대에서 내려와 숙면에 좋다는 바나나를 까서 입에 넣는다. 집의 편안한 잠자리와 가족을 그리워하다 새벽 4시에야 잠이 들었다.

다행히 다음 날엔 앞방에 손님이 왔다. 난 속으로 '야호!' 하고 외쳤다. 잠결에 '딱딱' 소리를 들은 것도 같은데 소리가 나든 말든 쿨쿨 꿀잠을 잤다.

가끔은 반갑게 맞이하는 것도
 
세화 해수욕장 근처 카페에서 본 바깥 풍경.
 세화 해수욕장 근처 카페에서 본 바깥 풍경.
ⓒ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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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하는 여행이지만 내 머릿속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 좋은 일이나 힘든 일이 있으면 전화해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좋은 풍경을 보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가족이 생각난다.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사진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떨어져 있으니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

2박 3일 여행을 마치고 집에 오니 딸이 반갑게 날 맞아준다.

"우아, 우리 딸 반가워!"
"엄마, 반가워!"
"딸 보니까 좋네. 우리 딸 반가운 게 좋아서 또 여행을 다녀와야겠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딸은 내가 없는 동안 마음껏 주방을 사용한 모양이다. 처음 만들어 본 베이글이 성공적이었다며 사진을 보여준다. 난 선물로 사 온 작은 소품들을 꺼내며 여행 에피소드를 늘어놓았다.

항상 함께 하는 것만이 좋은 게 아니구나. 가끔은 따로 지내다가 반갑게 만나고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자고 생각했다. 두려움이 걷히고 혼자 여행의 포문이 열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뻔한 하루는 가라,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노력. 도전하는 40대의 모습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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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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