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 포스터 이미지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 포스터 이미지 ⓒ 왓챠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_'난민'의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 반비례하는 영화적 풍요의 역설
 
적어도 작금의 전 세계 영화제에서 오늘날 세계의 화두 중 하나인 난민 문제를 다룬 영화들을 만나기란 절대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난민 소재의 영화가 (적어도 영화제에서만은) 넘쳐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가 쉬이 해결되기 힘든 만큼 역설적으로 해당 이슈는 계속 새로운 테마와 형식적 실험을 거듭하며 변화하는 난민 의제를 가장 첨단에서 목격할 수 있는 간접체험의 공간으로 영화제의 부수적 기능을 확장시켜주고 있다.
 
난민 문제를 영상화하는 데에는 몇 가지 난제가 발생한다. 우선 첫 번째는 당사자성이다. 난민 당사자가 여유롭게 자신의 고단한 여정을 (우리가 일상 브이로그를 촬영하듯) 기록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당사자가 직접 행한 기록은 대개 파편적이거나 상대적으로 일시나마 정주한 상태를 다루게 마련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당사자의 경험을 회고하는 인터뷰와 수기, 사진, 자료화면 등을 총동원하는 재연의 형태로 구성된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경우에는 극영화 드라마의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 경우 예산과 자원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리얼리티 측면에서 근접도가 떨어지는 한계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유럽 예술영화를 상징하는 거장들인 켄 로치나 다르덴 형제가 구사하는 방식, 가능한 만큼 최대한 실제 당사자와 연관성이 있거나 밀접한 환경을 가진 비전문배우를 기용하는 방법도 종종 활용되지만 일반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다른 대안으로 '애니멘터리', 즉 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의 하이브리드 형태가 흔하진 않지만 근래 간간히 시도되는 중이다. 저널리즘 영역에선 꽤 이전부터 활용되어온 방식이다. <팔레스타인>의 조 사코나 <굿모닝 예루살렘>의 기 들릴 같은 선구자들의 작업은 극화 체 이미지에 작가 자신이 장기간 취재한 르포 스타일을 결합해 괄목할 만한 재현 정도를 선보였다.

영상화 방면에서도 이리 풀만의 <바시르와 왈츠를>이나 리티 판의 <잃어버린 사진> 같은 시도가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석권하면서 일찍이 주목받은 바 있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적극 활용해 안정적 자료를 준비하기 어려운 해당 소재의 취약점을 극복하는 데 성공한 또 다른 사례다. 그저 성공적인 예전 작업을 답습하는 것을 넘어 기존에 소화하기 어렵다고 봤던 지점까지 돌파해내는 성취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2_아프간 난민 소년의 파란만장한 모험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 스틸 이미지.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 스틸 이미지. ⓒ 왓챠

 
영화가 시작된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한 소년이 활개를 치며 뛰어다니는 중이다. 소년의 귀에 꽂힌 이어폰에선 1980년대를 풍미했던 메가 히트 곡, A-ha의 'Take on me'가 쩌렁쩌렁 흘러나오고 있다. 여기가 아프가니스탄 맞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들이 생길 법하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영상과 교차하며 선보이는 기록 필름을 통해 당시 풍경이 소개되면 생소하지만 그곳이 카불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시대는 1984년,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대도시는 소련의 지원을 받는 사회주의 정권이 지배하고 있었다. 지방에선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을 받는 무자헤딘 게릴라들이 치열하게 투쟁 중이었지만 말이다. 사회주의 정권 하에선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대중문화와 교육 기회가 존재했었다. 지식인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 아민은 그런 문화적 풍요 속에서 가족들과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늘이 아민 가족에 다가온다. 정권에 비판적이던 소년의 아버지는 어느 날 비밀경찰에 끌려간 뒤 가족과 이별한다. 그리고 1989년 정권을 후원하던 소련군이 철수하면서 정세는 소용돌이친다. 무자헤딘이 전국을 석권할 상황이 되자 대도시의 중산층은 대거 아프가니스탄 바깥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소년의 가족 또한 당시 유일하게 아프간 사람들의 비자를 받아주던 러시아로 피난하게 된다. 국외로 무사히 탈출은 했지만 당시 소련 붕괴 후 혼란을 겪던 러시아 역시 이들이 머물 곳은 되지 못했다. 가족은 보다 안정된 서유럽으로 떠나고 싶지만 방법도 경비도 마련할 수 없어 불법체류자로 숨죽이고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다.
 
카불에 비해 혹독한 날씨의 모스크바에서 아민 가족은 툭 하면 뇌물을 요구하며 그들을 핍박하는 러시아 경찰의 횡포와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거리에서 불량배들에게 봉변을 당해도 어찌할 수 없는 세월을 보낸다. 소년에게 그 시절의 기억은 불안과 초조, 막연함으로 남아 있다. 이들은 몇 차례 서쪽으로 망명을 시도하지만 단속에 적발되거나 사기를 당하는 등 수난을 겪는다. 목숨을 걸어야 한 적이 여러 번이다.

결국 가족은 흩어져 하나 둘 훗날 만날 것을 기약하며 어찌어찌 국외로 떠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들을 거지 취급하는 서구 세계의 차가운 시선에 깊은 상처를 받은 건 치유하기 힘든 상처로 남았다. 애니메이션에선 청소년 시절의 아민이 모스크바에서 겪던 차별과 멸시, 위기의 연속이던 서쪽으로의 이주 과정의 공포를 고도의 표현주의적 상징으로 묘사한다.
 
3_난민 성소수자 소년이 정착할 '집'을 찾는 여정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 스틸 이미지.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 스틸 이미지. ⓒ 왓챠

 
마침내 아민은 덴마크에 도달한다. 그는 난민으로 인정받는 절차를 통과해 덴마크에서 머물 수 있게 된다. 다만 이 과정 역시 소년에게 그늘을 남기게 된다. 그나마 강제송환당해야 했던 에스토니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처우였지만, 난민으로서 절박함을 부각하기 위해 브로커의 사전 조언으로 아민은 가족을 모두 잃어버린 고아 행세를 해야 했고 이는 소년에게 죄책감과 후유증으로 남는다.
 
다행히 덴마크에서 아민은 정착하게 되지만 그동안 숨겨왔던 그의 또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 소년은 게이 지향의 성적 소수자였던 것이다. 이미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시절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부분이지만 고향을 떠나 몇 년간의 유랑 중에 소년이 이를 드러낼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사춘기를 경유하면서 점차 억지로 감춰두고 있던 본능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런 몇 번의 위기(?)를 겪은 뒤 아민은 마침내 그가 정착한 땅 덴마크에서 연인을 만나게 된다.
 
그가 주위의 눈치를 보며 숨겨왔던 성소수자로서의 면모는 친척이 준 용돈으로 처음 퀴어 당사자들이 이용하는 클럽에 출입하면서부터 드러난다. 영화에서 이 장면은 그동안 내내 자신을 숨기고 움츠러들어 있던 아민이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는 순간으로 묘사된다. 덴마크에 난민으로 머물게 된 것이 당장 신변의 안전을 보장하는 1차 정착이라면, 어린 시절 내내 억지로 누르고 있던 성적 지향을 마침내 드러낼 수 있게 된 안도감이 2차 정착에 해당한다 하겠다.
 
아민은 성장해 과학에 재능을 보이며 자리를 잡아간다. 연인과의 관계도 꾸준히 이어지는 중이다. 커플은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찾아 교외에 근사한 집을 구하려 한다. 하지만 그런 아민에게 뒤늦게 돌아온 후유증처럼 불안이 엄습한다. 오랜 세월 아민과 우정을 다져왔던 감독이 그런 주인공의 정서 안정과 치유를 위해 그의 경험을 인터뷰로 꺼내보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영화작업이 시작되고 그 여정의 끝에서 마침내 아민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오랜 세월 쫓기며 살아왔던 지친 자신에게 보금자리가 될 '집'을 발견하게 된다.
 
4_<나의 집은 어디인가>가 달성한 소중한 성취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 스틸 이미지.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 스틸 이미지. ⓒ 왓챠

 
고통스런 기억을 당사자에게서 끄집어내는 건 상당히 위험스런 시도다. 감독이 선량하기만 하면 온전히 내용을 뽑아내기 힘들다. 반면에 감독이 비윤리적이면 당사자를 착취하거나 소모하는 결과를 낳기 십상이다. 본 작품의 감독은 청소년기에 처음 만난 친구의 꼭꼭 감춰둔 사연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사적인 신뢰와 친밀도를 형성하는 과정을 경유해 취재한다. 상호간의 접근 정도는 인물 다큐멘터리에서 핵심적 요소다.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한 데 이어 기존 난민 소재 영화와 변별력을 갖는 도전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난민 당사자들의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절박해 보이는 상황, 좀 더 나쁘게 표현하자면 불쌍하게 느껴지는 측면을 부각시키는 손쉬운 호소에 기울지 않는다. 안일한 태도로 쉽게 호응과 관심을 유도하려는 유혹을 넘어 철저히 당사자를 존중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여기에다 대중이 흔히 상상하는 고정관념으로서의 난민이 아니라 소수자 마이너리티로서 난민이 겪는 내면적 고통을 과감히 전면에 내세운다. 감독의 노력 덕분에 관객은 그저 시혜적 관점으로 스테레오 타입으로 단정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다양한 단면을 간접체험하고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여정을 지켜볼 수 있게 된다.
 
역시 본 작품의 화룡점정은 겉으로 보이는 외부적 이미지를 넘어 당사자의 사연을 재구성하는 데 혁혁한 공훈을 세운 애니메이션 배치다. 한정된 영상자료나 대역배우의 재연을 초월해 내면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구현해낸다. 정교하게 세공된 애니메이션이 주로 활약하지만 배경을 좀 더 간결하게 전달하는 자료화면의 보조 활용도 군더더기 없이 흘러간다. 그런 세심한 배려와 장치들 덕분에, 처음에는 주인공 아민의 사연이 그저 이제는 익숙한 난민문제의 감성적 접근으로 보이다가도 그가 겪어온 유랑과 추방의 경험에 감정을 이입하기 시작하면 생각이 바뀌게 된다.
 
관객은 서서히 막연히 난민이라는 집단성을 넘어 그저 행복을 찾고 정착할 땅을 찾는 개별성을 지닌 주체로서 주인공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난민문제를 외면하다 지극히 양심을 찌르는 비극성에만 반응하곤 하는 서구의 위선적 난민정책에 대한 비판의식 또한 고민하게 될 테다. 그리고 아프간 무슬림 출신 성소수자 난민이라는 정체성은 우리가 선입견으로 정의를 내려버리는 난민 의제를 확장시키는 잠재력을 드러낸다.
 
주인공이 가족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과정의 두려움, 기나긴 탈출과정에서 의지할 곳 없이 똘똘 뭉칠 수밖에 없었던 가족애의 순수한 결정체, 그리고 감동적인 커밍아웃과 이후의 극복들은 오히려 애니메이션을 통한 재현이 아니라면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난망한 것들이다. 여전히 애니메이션이 어린이용이라 치부하는 편견은 그 어떤 극화보다 더 현실을 리얼하게 다루는 것은 물론, 정서적 공감을 끌어내는 위력을 선보이는 본 작품 앞에서 이제는 거둬도 될 만하다. 이미 작품소개에 가득 들어찬 수상실적과 이후로 더 추가될 예정인 상찬은 <나의 집은 어디인가>가 보여준 성과에 대한 합당한 결과임이 분명하다. 
 
<작품정보>
나의 집은 어디인가 Flee
2021|덴마크/프랑스/스웨덴/노르웨이|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2022. 4. 7. 개봉|89분|12세 관람가
감독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
수입 및 배급 왓챠
 
2021 미국비평가협회상 표현의 자유상, 다큐멘터리 톱5
2021 LA비평가협회상 애니메이션상
2021 시카고비평가협회상 애니메이션상
2021 보스턴비평가협회상 애니메이션상
2021 유럽영화상 유러피안 애니메이션상, 유러피안 대학영화상,
       유러피안 다큐멘터리상
2021 뉴욕비평가협회상 다큐멘터리상
2021 뉴포트비치영화제 관객상-애니메이션
2021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크리스탈 작품상-장편,
       Gan Foundation상-장편, 사셈 음악상-장편
2021 예테보리국제영화제 북유럽다큐멘터리 드래곤상
2021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2022 애니마-브뤼셀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 관객상-국제경쟁,
       장편상-국제경쟁
2022 전미비평가협회상 다큐멘터리상
2022 팜스프링스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
나의 집은 어디인가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 아프가니스탄 난민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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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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