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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장군도의 4월
 여수 장군도의 4월
ⓒ 박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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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가까운 아득한 섬, 사람이 살지 않은(무인도) 장군도에 갔다. 4월의 장군도는 온갖 뽐을 다 내며 멋들어지게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돌산섬과 여수 반도 사이에 있는 섬 장군도는 중앙동 뱃머리에서 돌산 우두리로 오가는 철부선이 다닐 때 승객이 원하면 내릴 수 있는 섬이었다. 돌산대교가 들어선 후에도 일정기간은 철부선 또는 작은 연락선이 다니면서 가끔 낚시꾼이나 섬을 찾는 산책객들이 들를 수는 있었다.

그러다 연락선이 2015년 폐업을 하자 중앙동과 돌산 우두리를 잇는 뱃길 끊기고 일반 시민이 들어가기 어려운, 가깝지만 아득한 섬이 되었다.
 
2011년 관광자료에는 중앙동에서 장군도와 돌산을 잇는 연락선 노선이 표기돼 있다.
 2011년 관광자료에는 중앙동에서 장군도와 돌산을 잇는 연락선 노선이 표기돼 있다.
ⓒ 여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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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여수시 공원관리과에서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중앙동에 배정한 '장군도 숲가꾸기 사업'과 '장군도 산책로 조성사업' 취재차 지난 5일 한 차례 장군도에 들렀다. 6일엔 중앙동민들이 나서서 장군도에 봄맞이 나무심기운동을 실시하는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8명 정원인 낚시선을 임대해 임시 작업선으로 활용하는 배편을 이용했기에 접근이 가능했다.
 
장군도는 6일 나무 심기 작업 차 낚시 어선을 이용해 접안했다
 장군도는 6일 나무 심기 작업 차 낚시 어선을 이용해 접안했다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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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생태를 간직한 접근 안되는 무인도 공원
 
장군도 안 여기저기 산책로 모습
 장군도 안 여기저기 산책로 모습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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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도는 여수시 중앙동 산 1번지다. 여수항이 용의 입이라면 장군도는 여수항에 여의주 형태로 자리한 둘레 길이가 600m, 면적이 17,851㎡ 의 아담한 무인도다.

옛 돌산 뱃머리와 장군도 뱃머리 사이 약 100여미터 바다 목을 사이에 두고 장군도 동남편 바닷가에  '장군성'이라는 비석이 있는데, 여기서 '장군도'라는 섬 이름이 유래했다. 그 장군의 주인공은 임진왜란 100년 전의 조선시대 이량 장군이다.
 
장군도에 있는 '장군성'비
 장군도에 있는 "장군성"비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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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도 '장군성'비 건너 100미터 전방에 옛 돌산 나루가 보인다. 이 곳 바다 목에 수중석성이 있었다.
 장군도 "장군성"비 건너 100미터 전방에 옛 돌산 나루가 보인다. 이 곳 바다 목에 수중석성이 있었다.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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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497년(연산군 3년)에 수군절도사로 부임한 이량 장군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쌓은 수중석성을 쌓았는데, 우리나라 유일의 해저석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석성은 장군도와 돌산도 사이에 제방을 쌓아 왜구의 침입을 저지하는 역할을 했다.

국내 유일의 조선 초기 수중 국방유적이 있는 섬

후세 사람들이 이량 장군을 기리기 위해 장군도에도 '장군성(將軍城)' 비와 이량장군의 '방왜축제비'를 세웠다. 이량 장군을 기리는 섬, 장군이 석성을 쌓은 섬이라는 의미로 '장군도'라 부르고 있다. 
 
정식 명칭은 이장군 함천군 휘량 방왜축제비 李將軍咸川君諱良防倭築堤碑. 오른쪽) 후세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이전 비석은 진남관으로 옮겨졌다.
▲ 이량장군의 ‘방왜축제비’ (오른쪽) 정식 명칭은 이장군 함천군 휘량 방왜축제비 李將軍咸川君諱良防倭築堤碑. 오른쪽) 후세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이전 비석은 진남관으로 옮겨졌다.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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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런 역사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바로 이량 장군의 '방왜축제비'(정식 명칭: 이장군 함천군 휘량 방왜축제비 李將軍咸川君諱良防倭築堤碑) 비문에 근거 하고 있다. 비의 뒷면에 '숭정 기원후 중경인 십일월(崇禎紀元後重庚寅十一月)'이라 새겨진 것은 1710년 11월을 뚯한다. 비문이 닳아 1984년 이 비석은 진남관 경내 전라좌수영 비석군(碑石群)이 있는 곳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이 비석은 2003년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0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임란 100년 전 이랑 장군의 지혜로 이름도 '장군도'

'방왜축제비'에 한문으로 새겨진 비문을 근거로 하여 후세에 한글로 세운 '장군도 수중성 사적기'에는 이런 내용으로 적혀 있다.
 
"연산군때 장군 이량이 축조한 성이다. 공은 이곳 좌수영에 와서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지형을 잘 살피어 영의 남쪽 섬과 돌산도 사이 바닷속에 돌을 넣어 쌓으니 물을 가르는 수중성제가 축조되었다. 당시 침입한 왜구들이 수중성을 보고 "이것은 하늘의 조화로 된 것이다"하고 놀라 달아나는 것을 쇠가죽으로두룬 전선 몽동(朦艟)과 빠른 병선 비가(飛舸)로 섬멸하고 그 침로를 막으니 그의 공적으로 이곳 백성들이 칭송하며 이 섬의 이름을 장군도라 하고 섬 위에 '장군성'이란 비석을 세웠다."
 
 
장군도 수중성 사적기를 적은 비석은 장군도 정상 광장에 자리하고 있다
 장군도 수중성 사적기를 적은 비석은 장군도 정상 광장에 자리하고 있다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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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역사의 현장인 장군도는 이제 일반인의 통상적인 접근은 어렵다. 배편이 없어서다. 뱃길 끊긴 후에는 1년에 한 두 차례 중앙동민들이 섬 정화활동 캠페인차 들러서 쓰레기 줍는 작업을 해 왔다. 올 들어 장군도 '섬 가꾸기 주민참여예산 사업'이 펼쳐지면서 나무심기도 이곳 장군도를 택했다.

생태자원 보존이냐, 역사 관광자원 활용이냐

장군도 안에는 곳곳에 산책로가 일부 개설은 됐으나 숲과 잡목으로 우거져 막혔다. 이번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산책로가 다시 뚫렸다. 여수시 관계자는 "사람이 오지 않은 공간이지만 이런 산책로 조성은 공원 관리 차원에서 필요하고, 가끔 정화작업차 섬에 오거나 공원이기 때문에 언젠가 시민 휴식처라는 공원으로서 기능을 하려면 공원내 산책로는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6일 중앙동민들이 장군도 나무심기운동을 실시했다
 6일 중앙동민들이 장군도 나무심기운동을 실시했다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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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심기 행사에 참여한 섬섬여수 실천운동 중앙동 협의회 강용명 회장은 "공원으로 제 역할을 하려면 접근이 용이해야 하는데 무인도라서 장군도에 접안 가능한 연락선 허가가 나지 않아서 배편이 없다. 중앙동에서는 사회적 기업을 발족해 '수상택시' 사업을 시행할 경우 이곳 장군도에 접안이 가능하리라고 보고, 이곳 역사 현장에 대한 유적지 장군도를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장군도에 도토리가 쌓여 있을 정도인데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 조심스럽게 전문가 조언을 들어 야생 다람쥐를 방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전했다.

이에대해 여수환경운동연합 강흥순 국장은 "예전에 사전 조사 없이 금오도에 사슴을 방목했다가 다시 포획하고 애를 먹은 적이 있다. 다람쥐 방목 같은 인위적인 조치를 취할 때는 사전 모니터링이나 다른 지역 사례 연구 등 종합적으로 판단해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그는 공원 기능을 하도록 하는 조치는 필요하지만 인위적인 개발이나, 훼손과 손상을 가져오는 접근방식은 지양하고 개발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군도 뱃머리에서 바라본 돌산 공원
 장군도 뱃머리에서 바라본 돌산 공원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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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아득한 섬 장군도. 무인도지만 엄연한 도시자연공원인 섬. 조선시대 이랑 장군의 국방 지혜가 담긴 역사유적지 장군도. 아득함을 간직한 신비 그대로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보존을 잘 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책인가.

공원으로서 휴식을 제공하도록 접근성을 허용해 수시로 관리되어지고, 국내 유일의 해저 수중 국방유적지인 역사관광자원이기에 원할 때는 언제나 탐방이 가능한 공간이어야 하는가.
 
 커다란 이곳 벚나무 꽃들이 하늘을 뚫어 4월이면 외부에서도 보인다
▲ 장군도 정상 광장의 벚나무.  커다란 이곳 벚나무 꽃들이 하늘을 뚫어 4월이면 외부에서도 보인다
ⓒ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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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복지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여수 장군도, #이량 장군, #장군성, #여수시 중앙동 산 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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