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tvN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 tvN스토리

 
전쟁의 비극 속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투쟁했을까. 전쟁사는 보통 남성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많은 여성들은 남성 못지않게 강인했고 불굴의 의지로 가혹한 운명에 맞서 투쟁했다. 하지만 전쟁이 남긴 끔찍한 기억과 세상의 편견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지난 5일 방송된 tvN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에는 류한수 상명대 역사 콘텐츠학과 교수가 출연하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저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소개하며 강연을 펼쳤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소 전쟁(독일, 소련)을 무대로 당시 전쟁에 참전한 여성 군인들의 이야기를 조명한 작품으로 전쟁 문학의 걸작으로 불린다.

서양에서 '전투하는 여성'의 원조는 잔 다르크다. 프랑스 백년전쟁의 영웅 잔 다르크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을 '신의 질서'라고 여기던 시대적 배경 속에 영국군에게 마녀로 몰려 사형당했다. 가부장적인 질서 속에서 적과 싸우는 것은 여자의 일이 아니라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던 시절이었고, 이런 분위기는 20세기까지도 이어졌다.
 
알렉시예비치는 편향적인 근현대사 전쟁사 서술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본문에서 "절대적인 남자들의 세계에서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놓고 왜 여자들은 자신의 역사를 지켜내지 못했을까?"라고 말한다. 
 
벨라루스 저널리스트 알렉시예비치는 우크라이나인 어머니와 벨라루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저자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묘사하면서 개인의 목소리들을 합쳐서 담는 서술 방식을 '합창'이라는 표현으로 규정했다. 30년 넘게 침묵하며 살아가야 했던 여성 참전용사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 그는 '목소리 소설(Novel of voices)'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939년 당시 독일과 소련은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하지만 유럽을 정복하려는 야욕에 불타던 아돌프 히틀러는 1941년 불가침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한다. 거하게 뒤통수를 맞은 소련군은 전쟁 초반 패전을 거듭하며 국가 패망의 일보 직전까지 몰린다.

1941년 11월 7일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은 수도인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열며 독일에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전쟁 초기 병력 소모가 극심했던 소련은 궁여지책으로 자녀가 없는 여성도 징집 대상에 포함된 포고령을 내린다. 애국심에 불타올라 정부의 징집 통지서가 내려지기도 전에 자발적으로 참전한 여성들도 다수였다. 그들 중에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여성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뭉쳐 입대한 여성들이 정작 전장에 도착했을 때, 남자들은 무용단으로 착각하거나 조롱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여자 군인의 존재가 생소했고 남성용으로 제작된 군복과 군화는 몸에 맞지 않기 일쑤였다. 소련의 한 퇴역장교는 여성들까지 참전시킨 것에 대한 죄책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소련 시민들은 전장으로 향하는 남성 군인들에게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으나, 여자 군인에게는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등 동정과 연민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연합국 미국과 영국을 포함해 전범국 독일까지 여성들을 타자수나 전화 교환수 등 보조 인력으로만 활용했고 '여성은 전투에 투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표방한 소련은 1930년대 여성해방운동의 일환으로 사회 진출을 적극 장려하면서 여성에게도 군사훈련을 받게 했다. 2차 대전 당시 소련의 '붉은 군대'는 엄청난 규모의 여성 인력을 동원하며 여성이 없는 병과가 없을 정도였다. 여성이 전쟁사에서 보조 역할에 머물렀다는 인식을 깨는 가장 확실한 사례가 바로 소련이었다.
 
 tvN스토리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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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 속 여성의 활약상은 실제로 대단했다. 2차 대전 이후 훈장을 받은 여자는 10만~15만 명, 특히 최고 무공훈장에 해당하는 '소연방 영웅 훈장'을 받은 여자 군인만 해도 90명에 이른다. 2차 대전에는 100만 명에 이르는 여성이 참전했고 그들은 남자들과 똑같은 임무를 수행했다.
 
독소 전쟁 당시 독일을 벌벌 떨게 한 소련 공군의 여성 비행연대인 '588 야간폭격 연대'의 활약상은 전설로 회자된다. 588연대는 정비병부터 조종사까지 전원 여성으로만 구성되었다. 여자 군인에 대한 편견이 강하던 당시 시대적 한계상, 588연대는 남성들과 달리 최신 전투기 대신 낡고 오래된 비행기를 배정받았다.
 
이들은 느리고 성능이 떨어지는 비행기의 한계 때문에 주로 공중 전투보다는 야간에 침투하는 폭격 임무를 부여받았고 상상 이상의 놀라운 전과를 올렸다. 여성 비행연대가 한밤중에 소리를 내며 비행하는 모습이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 '밤의 마녀들'이었다.
 
또 다른 공포의 대상은 여성 저격수들이었다. 소련은 남성보다 인내심과 관찰력이 뛰어난 여성들의 장점을 살려서 2000명에 가까운 여성 저격병을 대거 양성했다. 독소전쟁 당시 여성 저격수들에게 당한 독일군의 숫자는 약 1만에 이르렀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저격수로 꼽힌 우크라이나 출신의 류드밀라 파블리첸코는 10개월 만에 무려 309명의 독일군을 저격하는 데 성공하며 '죽음의 숙녀(Lady death)'라는 별명을 얻었다. 파블류첸코는 미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미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환대를 받으며 최초로 미국 대통령의 영접을 받은 소련 출신 시민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독소전쟁은 2차 대전사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끔찍했던 전쟁으로 평가받으며 연합국 승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그 덕분에 전후 처리에서도 소련의 위상은 연합국 내에서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국의 영광에 크게 기여했던 많은 여성들의 사정은 달랐다. 전쟁이 끝난 후 이들은 승리의 기쁨이나 전쟁 영웅으로 대우받기보다는 오히려 참전 사실을 숨겨야만 했고 전장에서 얻은 트라우마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은 전쟁의 기억 때문에 붉은색을 기피하는 증상을 호소했고 길가에 핀 아름다운 꽃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전쟁 중 꽃을 꺾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죽음으로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의미였기에 고통스러운 기억일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잔혹하기로 유명한 스탈린조차 2차 대전 막바지에 "우리나라에는 일가친척이 죽지 않은 가정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위생 사관으로 참전했던 타마라 움냐기냐는 "300여 명이었던 부대의 병사들이 저녁 무렵에 10여 명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는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울었다"는 일화를 통해 소련이 전쟁 기간 겪었던 막대한 인명 피해를 설명했다.

2차 대전 당시 소련의 전사자는 무려 1000만 명에 육박했다. 독일(325만), 영국(32만) 미국(26만)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희생자 기록이었다. 심지어 민간인 희생자는 그 두 배인 2000만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적인 이슈가 되면서 러시아의 역사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푸틴의 전쟁 명분 중 하나가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북대서양 조약기구) 개입 반대다. 류한수 교수는 방송에서 19세기 나폴레옹, 20세기 히틀러의 침공을 받았던 러시아 입장에서는 서방의 존재가 항상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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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기억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떠올리기 싫은 아픈 트라우마다. 독소전쟁에 참전했던 소련 여자 군인들 역시 전쟁에 대해 말하지도 기억하지도 않으려는 현상이 있었다. 더구나 이런 현상을 악화시킨 것은 바로 주변의 시선이었다.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운 이들에게 '사람을 죽인 여자'라는 어처구니없는 꼬리표였다.
 
알렉시예비치 저서에는 "여자가 사람을 죽여? 그런 여자들은 정상이 아니다. 결함이 있는 여자일 것"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는 피해자가 나온다. 해당 참전군인은 "아픈 말을 들었다. 독을 품은, 돌처럼 차가운 말"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군 복무 사실을 숨기라는 사회적 유·무형의 압박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승리자나 영웅 취급을 받는 반면, 여자들은 전혀 다른 시선에 분노와 억울함을 느껴야 했다. 직장이나 가정에서도 종군 경력이 밝혀지면 오히려 비난과 멸시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을까. 당시 가부장제 가치관이 만연한 소련 사회에서 전후 나라를 지켜낸 여자들의 활약상을 의도적으로 축소, 은폐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여성들은 사회적인 멸시를 피하기 위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야말로 전형적인 토사구팽이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통해 수십 년 만에 당시 소련 여자 군인들의 이야기가 재조명되었다. 당시 저자가 취재한 참전용사들은 인터뷰를 마치고 전쟁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심장약을 먹거나 응급실에 실려갈 만큼 극심한 트라우마를 드러냈단다. 조국을 지키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를 누벼야 했던 여성들은 본연의 삶으로 돌아온 후 또 한 번 사회 속에서 끔찍한 전쟁을 거쳐야 했다. 전쟁의 참상 속에 여자라는 이유로 또 다른 차별과 침묵을 강요당해야 했던 이들의 충격적인 이야기는 우리가 보고 배운 역사가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여기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책 제목의 진짜 의미는 '전쟁은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일지도 모른다. 전쟁의 참상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심지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살아남은 사람들(특히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어떤 후유증을 남길 수 있는지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책서재 독소전쟁 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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