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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파이프라인이 전쟁의 원인?

훌쩍 뛴 휘발유와 경유 가격에 에너지를 둘러싼 지정학의 영향을 실감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에너지 공급에 악영향을 끼친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원인과 결과, 전망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으나 이 글에서는 에너지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러시아는 지리적 근접성과 연결성을 활용해 주요 유럽 국가들에 천연가스를 공급해 왔다. 유럽은 천연가스 40% 이상을 러시아에서 수입하며, 특히 독일은 천연가스 절반 이상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가스 수입의 통로는 가스파이프라인이다. 독일은 러시아와 협업하여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을 건설했다.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은 2005년에 합의되어 2012년 개통한 제1노선과, 2015년 합의돼 개통을 앞두고 있었으나 이번 침공을 이유로 승인되지 않은 제2노선으로 구성된다. 러시아의 영향력 확산을 우려한 미국의 제재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러시아는 가스파이프라인 건설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만큼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은 유럽을 비롯한 각국의 사활을 건 문제다.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천연가스관이 우크라이나를 가로지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천연가스관 중간 통행료를 주요 수입원으로 활용해 왔다. 따라서 민족 분쟁에 더해 통행료를 둘러싼 분쟁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 종종 있어 왔다. 에너지 지정학 관점에서 보자면,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하는 과정에서 가스파이프라인 중간에 위치한 우크라이나가 친유럽 노선으로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추진하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위협을 가했으며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많은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고수했음에도, 미국은 셰일가스를 LNG(액화천연가스) 형태로 만들어 유럽에 수출하려고 시도했다. 러시아산 가스 공급량이 감소하자 미국이 유럽 대상으로 천연가스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은 셰일가스를 유럽에 수출할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냉전 이후 미-소가 아닌 미-중 경제 패권 분쟁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패권 경쟁의 장이 미-러로 확장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을 역사와 민족적 맥락으로 고려해볼 수 있으나, 강대국 사이의 에너지 패권 다툼과 가스파이프라인 통과국과 수출국의 분쟁도 원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유럽의 에너지 정책에 미치는 영향

에너지 패권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직격탄을 맞은 것은 유럽이다. 유럽 국가들이 재고물량을 우선 사용하고 있지만 재고 감소로 천연가스 수급 차질과 가격 상승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에서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화석연료 사용 감축을 통한 탄소 중립 정책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유럽은 중-장기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3월 8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발표한 리파워EU(REPowerEU) 계획은 유럽의 값싸고 안정적이며,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계로의 전환을 모색한다. 이 계획은 '긴급 에너지 가격안정', '다가오는 겨울 사용을 위한 가스자원 확보', '러시아 화석에너지 종속성 종료'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전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의 큰 틀인 그린 딜(Green deal)을 가속화하여 러시아로부터 화석연료 수입을 줄이고 2030년 이전까지 수입을 완전 중단하겠다는 계획이다.

영국은 에너지 믹스와 전기 발전에서 원자력 발전 비율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EU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러시아 화석연료 수입으로 인한 종속성을 줄이기 위해 리파워EU는 더 많은 태양광 패널, 열펌프, 에너지 절약을 통한 효율화 향상을 추구하고, 산업의 탈탄소화(전기화와 수소에너지 활용), 그리드 시설 향상으로 재생에너지 허가(renewables permitting)를 가속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농업폐기물 등을 활용한 바이오메탄을 2030년까지 매년 35 bcm(billion cubic meter)씩 두 배로 늘리고, 10mt(milltion ton) 수소 수입을 다변화하며, EU 내 5mt의 재생가능수소를 더 생산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경험하며, 유럽의 에너지 전환의 패러다임은 '에너지 자립 강화'로 공고화되고 있다. 국가별로 전통 화석연료를 대체할 주력 에너지원에 집중하면서 탄소 감축 실행에 힘을 실을 전망이다. 

한 예로, 독일은 노르트스트림 제2노선 사업을 중단한 상태로 에너지 공급과 안보에 직격탄을 맞았다. 2038년까지 탈석탄 체제를 이행하려는 독일에는 천연가스 안정적인 공급이 시급한 문제이다. 독일 하벡 부총리 겸 경제·기후부 장관은 현재 국민들이 천연가스 문제를 기후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밝히고,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풍력 및 태양광 프로젝트 가속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경향은 EU를 넘어, G7 에너지 장관들이 러시아로부터 화석에너지 의존을 줄이고, 에너지원 다양화의 촉진을 합의하는 것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 8일, EU 집행위원회는 러시아산 가스, 석유 등 화석연료로부터 독립하는 계획 ‘REPowerEU’을 발표했다.
 지난 3월 8일, EU 집행위원회는 러시아산 가스, 석유 등 화석연료로부터 독립하는 계획 ‘REPowerEU’을 발표했다.
ⓒ 유럽연합(EU,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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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에너지 정책에 미치는 영향

한국은 97%의 에너지를 수입하는 국가다. 화석연료 공급처의 전쟁 같은 비상상황에 한국 에너지 안보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는 유류세 인하 및 할당관세 유예조치를 연장함으로써, 국내 경제 충격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통해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고 동시에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재생에너지 전환의 징검다리로 천연가스 대체 공급망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제한할 경우, 기존 아시아에 공급하던 천연가스 일부를 유럽으로 공급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점차 줄이고, 유럽의 천연가스 수급 차질에 대비하여 안정적인 대체 천연가스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패권 경쟁, 화석에너지 수급 차질과 가격 상승은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린뉴딜 정책을 활용한 녹색 일자리를 통해 재생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수입 화석연료 의존을 줄여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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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 이태동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2년 4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태그:#우크라이나, #러시아, #참여연대, #천연가스,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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