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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은 '분열'의 정치공학을 잘 보여준다. 국민의힘은 전략적으로 젠더 갈등을 적극 이용했고, '정권 심판론'을 내세워 정책과 비전보다 '분한 마음을 어디로 돌릴 것인가'에 치중했다. 중요한 건 그 전략이 잘 먹혀들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외집단과의 갈등 또는 갈등 가능성을 부각하며 내집단의 위기의식을 자극하는 것은 우파의 지지세력 결집에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어째서 그게 효과적인 방법이 됐을까? 혐오는 어떻게 해서 이겨왔을까? 나아가 전세계에서 '대안우파'(네오 나치즘, 백인 우월주의, 민족주의 등을 추구하며 주류 보수주의를 거부하는 극우 집단)가 실권을 쥐는 경향이 지속되고, 아시아인 증오 범죄가 넘쳐나는 건 왜일까? 여기엔 신자유주의의 부작용과 팬데믹이라는 시대적 상황 외에 '인간'의 특성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다.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이런 질문에 생물학‧인류학‧사회심리학적 실마리를 제공한다. 두 저자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인간의 잔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왜 타자를 비인간화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다정함을 무기로 번성해온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를 들여다 보고, 분노와 혐오의 역사를 요약하며 희망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책. 늑대는 멸종 위기이나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개는 개체 수를 늘려온 이유, 사나운 침팬지보다 다정한 보노보가 더 성공적으로 번식할 수 있던 이유 등을 흥미롭게 조명한다.
▲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다정함을 무기로 번성해온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를 들여다 보고, 분노와 혐오의 역사를 요약하며 희망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책. 늑대는 멸종 위기이나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개는 개체 수를 늘려온 이유, 사나운 침팬지보다 다정한 보노보가 더 성공적으로 번식할 수 있던 이유 등을 흥미롭게 조명한다.
ⓒ 디플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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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화력의 어두운 면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 등 다른 종과 달랐던 점 중 하나로 '협력'을 꼽았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는 '자기가축화'와 친화력의 관계를 소개함으로써 이 같은 시각을 뒷받침한다.
 
사람(호모 사피엔스)은 네안데르탈인처럼 10명에서 15명 정도의 작은 무리로 살다가 친화력이 높아지면서 100명이 넘는 큰 규모의 무리로 전환되었다. 뇌가 더 크지 않더라도, 협력을 잘하는 더 큰 규모의 호모 사피엔스 무리가 다른 사람 종 무리를 쉽게 이길 수 있었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우리 종은 갈수록 복잡한 방법으로 협력하고 소통했고 이로써 문화적 역량도 새로운 경지로 나아갈 수 있었다. (32쪽)

친화력은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를 통해서 진화했다. 수 세대에 걸친 가축화는, 기존의 통념과는 달리, 지능을 쇠퇴시키지 않으면서 친화력을 향상시킨다. 어떤 동물이 가축화될 때는 서로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많은 요소가 변화를 겪는다. (중략) 우리가 연구에서 발견한 것은 조건이 일정하다면 자기 가축화가 타인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도 향상시킨다는 점이다. (31쪽)
 
두 연구자는 사람의 행동에 '옥시토신'이 크게 영향을 미치면서 자신이 속한 집단을 가족으로 인식하도록 진화한 것으로 본다. 옥시토신은 친화력과 공감능력을 높이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자기가축화는 세로토닌의 유용성을 증가시켰고, 이것은 옥시토신의 효과를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에게 극도로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것은 친화력의 다른 얼굴이다. 옥시토신은 아기에 대한 보호 욕구를 자극하면서도 자기 아기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는 분노를 솟구치게 만드는 양면적 속성을 가진다. 수컷의 공격적 행동도 옥시토신과 연관돼 있다. 친화력과 잔인성은 같은 뇌 부위의 작용이다.
 
우리 종에게는 우리가 아끼는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위협이 되는 무리를 우리의 정신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있다. (중략) 연민하고 공감하던 곳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공감하지 못하므로 위협적인 외부인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다. (32쪽)
 
지난 3월 25일부터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의 페이스북 발언과 이에 따른 반응은 '내집단'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대표가 장애인의 이동권 시위를 떼쓰기와 볼모잡기로 보는 것에 동의하는 이들은 전체 시민의 권익을 보호하자는 공리주의적 시각과 '바람직한 방식'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리주의에는 장애인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기보다 '외집단'으로 규정하는 시선도 깔려있다. 장애인들이 다른 방식으로 노력하며 오래 기다려온 역사와 그간 감당해온 신체적‧심정적 불편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태도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자기가축화 가설은 편견만으로는 외부 집단을 향한 행동을 다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우리 집단 소속이 아닌 사람들의 기본 인권에는 눈감는 맹목성은 편견보다 훨씬 더 어두운 힘"이다.

책에서는 이것이 흑인과 이민자 멸시 등 수많은 '비인간화'와 연결된다고 본다. 사회심리학자 누어 크테일리는 연구를 통해, 외집단 비인간화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요소가 '그들이 먼저 우리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인식'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것을 '보복성 비인간화'라고 한다.

우파 성향이 강한 경우 사회 질서에 혼란이 생기는 것을 더욱 위협적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집단 동질성에 위협으로 느껴지는 외부자들에 대해 극도의 불관용을 보이"며, 혼란의 원인이 되는 대상을 외집단화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하려는 속성이 강하다.

'우자'가 생존하는 사회의 시작

책은 설득의 무용함을 현실적으로 지적한다. 특정 집단을 배척하는 이들의 가치관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치는 행동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댓글에서 혐오를 지적받는 사람이 상대의 정의감을 꼬집어 '선민의식'이라 비난하는 것도 자주 눈에 띈다.

그럼 정치인들이 입을 모아 외치는 '국민 통합'은 애초에 불가능한 걸까? 각 계층과 집단 간의 더 많은 접촉, 교류, 소통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유대인 대학살 기간 중 유대인을 숨겨준 사람들의 예를 제시한다. 그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 수 있었던 것은 유달리 용감하거나 신앙심이 깊어서가 아니라, 깊은 마음을 나눈 유대인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겁고 거창한 얘기는 아니다. 접촉은 사람 사이의 동질성을 실감하게 한다.
 
"사회적으로 가장 비인간화되는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노숙자들과의 긍정적인 접촉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공감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어떤 외부 집단에 대해서 인간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말하는 정도만으로도 그 사람들과 접하거나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혐오의 재생산을 내려놓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최근 소위 '개딸'을 자처하는 2030 여성들의 정치 참여방식이 주목을 받는다. 집회에서도 '탓하기'와 '깎아내리기'를 최대한 피하고 "할 수 있다"는 구호에 열중하는 그들은,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방식의 한계를 알고 있는 듯하다. 혐오에 휘말려 기득권층에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그 '보여줌'이 혐오의 흐름을 멈출 것이라는 기대도 느껴진다. 이같은 행보는 책이 말하는 지향점에 닿아있다.
 
우리는 내집단의 구성원들이 위협받을 때, 평소에는 타인이나 외집단에게도 무리 없이 잘 느끼던 공감능력을 차단시킨다. 이에 외부자들도 위협받는다고 느껴 상대집단을 비인간화하고, 여기에서 보복성 비인간화의 피드백 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 서로 접촉하고 교류하는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그 위협받는 느낌을, 아주 잠깐만이라도 없앨 수 있다면 다른 종류의 피드백 순환 고리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보답성 인간화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63-264쪽)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힘들어서' 비정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결국 우리를 더 나아가게 하는 건 배제와 선긋기가 아닌 공감과 연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책의 감수를 맡은 박한선 신경인류학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적자생존'이 아닌 '우자생존'의 사고방식을 제안한다. 여기서 '우(優)'는 '넉넉하며 도탑고 인정 많고 부드럽고 품위 있고 뛰어남'을 의미하는 말이다.

모든 사람의 뇌에는 연민과 공감능력, 타인을 비인간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함께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사람들의 행동에서 동질성을 실감하는 것이 집단을 초월한 우정으로 나아가는 바탕이 되기를 바란다. "가장 강력한 접촉의 형태는 진심 어린 우정이며, 우정에서 생성되는 관용은 전염"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더 다정한 새해 프로젝트 리커버) -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지은이), 이민아 (옮긴이), 박한선 (감수), 디플롯(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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