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2일과 3일 양일간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인디스페이스와 함께하는 4.3과 친구들 영화제'가 열립니다. 상영작 장단편 6편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인디스페이스 원승환 관장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제주4.3 74주년을 맞아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가 마련한 '4.3과 친구들 영화제'는 신청 시 무료 관람이 가능합니다. [기자말]
 인디스페이스와 함께하는 4.3과 친구들 영화제 웹포스터.

인디스페이스와 함께하는 4.3과 친구들 영화제 웹포스터. ⓒ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윤석열 당선자가 제주4.3 희생자 추념식 참석을 공식화했다. 국가기념일인 제주4.3 제74주년 희생자 추념일을 이틀 앞둔 지난 1일 대통령직 인수위를 통해서다. 그러면서 인수위는 "4.3의 완전한 해결 실천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제주 및 4.3 관련 단체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고, 언론들도 주목했다.

사실 '4.3의 완전한 해결'이란 슬로건을 선취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지난 2018년 제70주년에 참석해 이를 공식화한 문 대통령은 임기 내 총 3번이나 제주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또 여당은 임기 내 4.3 특별법 개정을 주도하기도 했다. 제주4.3의 전국화 및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도 70주년 이후 임기가 맞물린 현 정부 들어서였다.

그런 가운데 윤 당선자는 4.3 추념식 참석을 국민 통합과 화합의 제스처로 내건 모양새다. 의도야 어떻든 환영할 만한 자세다. 4.3 특별법이 개정됐지만 여전히 4.3의 완전한 해결이란 과제는 4.3의 정명 및 대중화와 전국화, 진상 규명 등 여전히 녹록치 않은 노정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자에게 세 편의 영화들을 소개하는 건 그래서다.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가 제주 4.3 74주년 서울지역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마련한 2일과 3일 마련한 '4.3과 친구들 영화제' 상영작인 양영희 감독의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소준문 감독의 <빛나는 순간>(2021), 임흥순 감독의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2019)은 윤 당선자가 내건 '4.3의 완전한 해결'이란 공약이 왜 이행돼야 하는지를 직간접적으로 확인시켜주는 문제작들이다.

해녀로 분한 고두심, <빛나는 순간>
 
 영화 <빛나는 순간> 포스터.

영화 <빛나는 순간> 포스터. ⓒ 명필름

 
'태초에 탐라에는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크고 힘이 센 설문대 할망이 살고 있었다. 제주에서는 이 설문대 할망이 어느 날 누워서 자다 벌떡 일어나 앉아 방귀를 뀌었더니 천지가 창조되기 시작했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4370신문 3호 중

육지 것들은 알 턱이 없다. 한라산 백록담 정상을 휘감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는 이 설문대 할망의 전설을. 제주민 들은 한번쯤 접해 봤을 이 설문대 할망 전설을 접하고 나면 한라산 정상이, 그리고 제주 여인들이 달리 보일지 모를 일이다. 그 제주 여성들의 강인함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이들이 바로 제주 해녀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빛나는 순간>의 1등 해녀 고진옥(고두심)이 바로 그런 여성이다. <빛나는 순간>은 그 고진옥이 서울에서 내려온 미대 출신 다큐멘터리 PD 경훈(지현우)을 통해 맞이하는 '빛나는 순간'이자 '위로의 시간'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단순히 70대 해녀와 30대 남성 PD의 로맨스라고 하기엔 훨씬 더 너르고 강인하며 단단한 '어른의 감성'을 품은 채로.

진옥으로부터 경훈에게 전이되는 '살암시민 살아진다'란 제주 말이 대표적이다. 진옥은 어린 아이일적 제주4.3으로 인해 부모를 잃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경훈은 사랑했던 연인을 참사로 잃고 물을 무서워하는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다. 그런 경훈을 강인한 생명력과 특유의 무심한 듯 따스한 감정으로 품어내는 것이 바로 진옥이다.

상서화를 바라보며 교감을 나누는, 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진옥과 경훈은 그리하여 어쩌면 낯설고 또 어찌 보면 신화적 공간과도 같은 제주에서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대면하고, 교감하며 치유의 순간을 목도하게 된다. 그 결말이 비록 자의와 타의가 뒤섞여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해도 말이다.

<빛나는 순간>이 제주4.3을 직접 언급하진 않는다. 하지만 4.3은 진옥이란 해녀 캐릭터를 넘어 제주라는 아름다운 풍광 이면을 지배하는 공간 전체의 정서에 녹아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경훈의 카메라 앞에서 과거 고통스런 기억을 꺼내들며 오열하는 진옥 역의 고두심의 연기는 이 영화의 백미다. 제주를 대표하는 배우인 고두심은 이 작품으로, 제18회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 여우주연상 및 2021년 제작가협회상 여우주연상, 올해의 여성영화인 수상을 수상했다.

<비념> <위로공단> 임흥순 감독의 시선 확장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포스터.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포스터. ⓒ 엣나인필름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6년 노조 투쟁을 벌였던 동일방직의 여공들이나 2015년 서울시로부터 직접 고용 시위를 벌이는 상담 여성 직원들도 모두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보장받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다. 그래서 어느 여성 노동자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바닥인생이었는데, 박근혜 대통령 때도 똑같다"고 말했는지 모를 일이다.

1980년대 구로동맹파업, 2005년 기륭전자 사태, 그리고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태 속 여성 노동자들이라고 달랐을까. 지난 2015년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은 이렇게 한국 여성 노동사 40년을 종단하다시피하는 보기 드문 다큐멘터리다.

영화이면서 미술이고, 다큐멘터리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임흥순 감독의 2019년작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그러한 임 감독의 시선을 한국 현대사와 여성으로 확장시킨 아트 다큐멘터리다. 아울러 지난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된 MMCA 현대차 시리즈 '2017 임흥순의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_믿음, 신념, 사랑, 배신, 증오, 공포, 유령' 展의 다큐멘터리 영화 버전 확장판이기도 하다.

2012년 제주4.3을 정면으로 다룬 <비념>을 완성했던 임흥순 감독의 2019년작. "독립운동가, 빨치산, 투쟁가란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하나를 꿈꿨던 위대하고 찬란했던 여성들의 대서사시"를 주제로 독립 운동, 4.3 항쟁, 한국전쟁을 경험한 정정화, 김동일, 고계연 세 할머니의 인생 여정을 조망했다.

미술과 영화의 경계를 허물고, 극과 다큐를 뒤섞은 이 작품에서 제주4.3은 김동일 할머니의 삶을 통해 조명된다. 제주4.3 당시 유격대를 돕다 결국 육지로 건너가 한국전쟁 시기 지리산 빨치산에 가담했던 김동일 할머니는 결국 일본으로 건너가 신산한 삶을 이어갔다.

2017년 김동일 할머니가 생을 마감한 이후 제주의 첫째아들과 일본의 둘째아들이 만나는 장면은 제주4.3의 아픔과 비극이 시공간을 어디까지 확장됐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건 독립운동가였던 정정화 할머니나 빨치산 활동에 이어 광주에 정착했던 고계연 할머니와 그 자손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한국현대사에 있어 '이념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동시에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까지 교차시키는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제주4.3 역시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더 할 나위 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영희 감독의 '가족 3부작' 완결편 <수프와 이데올로기>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한 장면.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한 장면. ⓒ 엣나인필름

 
"어떤 남자라도 괜찮아,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면. 단, '미국놈, 일본놈은 안 된다'."

"어떤 남자였으면 좋겠어요?"라는 딸의 물음에 불콰하게 취해서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 가며 결혼을 종용하는 아버지. 그는 일본계 조총련 간부였다. 제주 출신이던 아버지는 15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조국'으로 북한을 선택했고, 이른바 북한 정권이 강력하게 추진하던 '북송' 사업의 일환으로 아들 셋을 40년 전 북으로 떠나보냈던 철저한 민족주의자의자 이념가였다.

지난 2006년 작인 양영희 감독의 <디어 평양> 속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와 가족사를 카메라에 담아 주목을 받았던, 넷째 딸이자 외동딸처럼 자랐다는 양영희 감독은 이후 1995년부터 2008년까지 13년간 북한에 오고간 기록을 바탕으로 여자 조카인 선화를 주인공으로 2011년 속편과도 같은 <굿바이 평양>을 발표했다.

이후 역시나 자신의 가족사를 극화한 일본영화 <가족의 나라>를 통해 2012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국제예술영화관연맹상 수상한 양영희 감독이 '가족 3부작'의 완결판이라 일컬어지는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아버지에 이어 이번엔 어머니다. 2009년 돌아가신 아버지를 오빠들이 사는 평양에 묻은 어머니는 오사카에서 혼자 거주 중이다. 제주 출신 여성 특유의 강인함의 소유자인 어머니는 그러나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게 됐고, 이후 "절대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제주4.3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맞다. 일본에서 태어났다 해방 이후 고향으로 이주했던 어머니는 제주4.3 당시 군경과 서북청년단의 폭압을 피해 두 동생을 데리고 다시 일본으로 피신했던 제주4.3 피해자였던 것이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족사에 다시 한번 카메라를 가져 간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그 어머니가 왜 세 아들을 북한으로 보내는 것도 모자라 한 평생 과한 경제적 부담까지 짊어지며 그 아들들을 위해 헌신했는지, 왜 하필 남한이 아닌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했는지를 양영희 감독이 깨달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상황은 오사카로 직접 방문한 제주4.3 연구소 관계자들을 만나 4.3 당시의 기억을 털어 놓은 직후 어머니가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리라. 그 어머니와 양 감독, 양 감독의 일본인 남편이 지난 2018년 제주4.3 70주년 추념식을 찾는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후반부는 실로 미묘하고 복잡하며 가슴 아픈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걸작이다. 이번 영화제 상영작 중 유일한 미개봉작인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오는 6월 개봉을 준비 중이다. 놓치지 마시길.
덧붙이는 글 인디스페이스에서 진행되는 '인디스페이스와 함께하는 4.3과 친구들 영화제' 장편 섹션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상영은 2일 오후 7시 30분, 임흥순 감독이 참석하는 관객과의 대화는 김효정 영화평론가 진행. <빛나는 순간>은 3일 오후 2시 상영, 고명철 문학평론가 진행으로 소준문 감독과의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이후 오후 5시 20분 상영, 오동진 영화평론가와 제주 출신 <체포왕>, <영화감독 노동주>를 연출한 임찬익 감독과의 대화 진행. 를 함께한다. 무료 예매는 구글 폼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Plp9lkD65sFVI647Prhnt3b-hEWpp3E8MZZtQ7CtNKdVtiA/viewform 으로 진행 중입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제주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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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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