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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과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가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롱리스트)에 올렸습니다. 오는 7일, 부커상 재단은 롱리스트에 오른 후보작 13편 중 최종 후보작(쇼트리스트) 6편을 선정해 발표하는데요. 또 다시 낭보가 전해질지 관심이 모이고 있는 지금, 이번에 롱리스트에 오른 작품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어봤습니다. [편집자말]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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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가 현실보다 진실할 때

이성애자로 살아온 내게 동성애의 세계는 미지의 것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음에 동의하지만, 나와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해 떠오르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마저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고 희미하게 남아 있던 경계심을 씻어낼 수 있었다. 허구로 쓰인 이 세계가 지닌 진실함 덕분에 진실(혹은 사실)이라고 믿었던 현실이 어떤 걸 외면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기에.
 
그를 보고 있으면 자꾸만 생각이 많아졌다. 그라는 사람이 궁금했고, 그보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고, 그보다 그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내 감정을 휘저어놓는지 알고 싶어졌다. 내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감정들이 자꾸만 떠올라 초당 수천 미터는 뻗어가는 것 같았고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그 에너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곤혹스러웠다. - 88쪽,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창비

사랑에 빠져들 때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은 이런 게 아니었던가. 이성이나 논리, 어떤 규제로도 통제할 수 없는 감정. 이토록 순수하게 발현되는 감정이건만 어떤 이들은 틀렸다고 비난받고 바꿔야 한다고 강요당한다. 표현 방식에 차이는 있겠지만 사랑받고 사랑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에 있어서 만큼은 어떤 선도 그을 수 없다는 걸 이 소설은 보여준다.   

다채로운 사랑의 얼굴들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네 편의 연작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처럼 네 편의 소설에는 저마다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십대라는 젊고 치기 어린 시절의 우정 같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재희', 서른한 살이 되어 스물여섯에 겪었던, 삶의 한 부분을 영원히 바꿔 놓은 사랑에 대해 회상하는 '우럭 한점 우주의 맛'.

뒤늦게 사랑이라고 깨닫는 관계와 삶과 사랑에서 번민할 수밖에 없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다룬, '대도시의 사랑법'과 '늦은 우기의 바캉스'. 네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작중 화자이자 소설가 '영'은 "모두 같은 존재인 동시에 모두 다른 존재"(337쪽)라고 책의 말미에 작가는 적어 두었다.

화자인 '영'은 자기 자신과 삶,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글을 쓴다. 그의 고민과 질문, 진솔한 고백이 생생하게 담긴 이 소설은 블랙코미디처럼 피식 웃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지만 이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곤 한다. 쉽게 사랑에 빠져들지만 자신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고 결국 상처 입고 마는 '영'의 모습에서 부끄럽고 나약한 내 모습과 어딘지 모르게 닮은 구석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네 편의 소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이다. 한 사람에게 다른 한 사람의 존재가 우주처럼 커다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게 사랑이지만, 그로 인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 게 사랑이기도 하다. 

소설 속 '영'은 한때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던 열두 살 많은 '형'에게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그는 '영'의 '게이스러움'을 부끄럽게 여기고 '영'을 가르치려고 든다. '영'이 열한 살 때 이혼해 억척스레 살아온 '엄마'는 암에 걸려 투병 중이다. 신실한 기독교인인 그녀는 남들보다 못한 모든 걸 수치스러워했고 고등학생인 '영'이 남고생과 키스하는 모습을 목격한 뒤 그를 정신과 폐쇄 병동에 입원시켰다.

사랑이라는 '포기의 마음' 

'엄마'와 '형'은 '영'을 가르치거나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이 지닌 결핍을 혐오하고 회피하는 두 사람은 그들의 결핍을 떠올리게 하는 '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영' 또한 그들 사이에서 자신에 대한 혐오로 괴로워하지만 자신을 직시하려는 노력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그녀 자신으로서 존재하고 있을 뿐 나를 옥죌 의도가 없고, 나 역시 그저 나로 존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똑같은 인간에 불과하다. - 178쪽,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창비

자신의 결핍을 바라보는 일의 어려움을 우리는 안다. 사랑할수록 상대의 결핍이 내 것과 겹쳐져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는 것도. 서로가 결핍을 떠안은 관계에서 자기 마음의 정체를 확인하려는 '영'의 노력은 관계에 필요한 거리를 만들고, 의존적으로 기울었던 감정에 균형감을 부여한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마음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라는 존재로 말미암아 인생이 예상처럼, 차트의 숫자처럼 차곡차곡 정리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가장 그렇지 말았으면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핏줄이 연결된 것처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존재가, 실은 커다란 미지의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인생의 어떤 시점에는 포기해야 하는 때가 온다는 것을. - 181쪽,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창비

사랑이란 무결한 이해와 용서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어떤 시점에는 포기' 할 줄 아는 지혜를 닮은 건지도 모르겠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겠다는 마음은 완전히 이해하고 제대로 용서해 보겠다며 불가능한 욕심을 부리기보단, 그 모습 그대로 가만히 두겠다는 포기의 마음과 오히려 가까워 보인다.

철 지난 관념과 사회적 시선 속에 규정된 사랑의 정의를 뛰어넘으며 자신의 감정과 관계, 사랑을 탐색하고 받아들이려 애쓰는 소설 속 주인공 '영'은 용감하다. 상처받더라도, 실패하더라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뛰어들길 주저하지 않기에, 그는 아름답다. 존재 그대로를 사랑하고 끌어안고자 분투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나로 온전하기 위한 노력과 성숙한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배운다.

사랑이라는 경계 없는 우주에서 우리는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영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오른 박상영 작가. 10일(현지시간) 부커재단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박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롱리스트) 13편에 이름을 올렸다. 창비 제공.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영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오른 박상영 작가. 10일(현지시간) 부커재단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박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롱리스트) 13편에 이름을 올렸다. 창비 제공.
ⓒ 연합뉴스 =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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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감정이, 말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금 주먹을 꽉 쥔 채 이 사소한 온기를 껴안을 수밖에 없다. 내 삶을, 세상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단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오롯이 나로서 이 삶을 살아내기 위해. - 339쪽, 작가의 말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창비

작가의 말처럼 '단지 나로서', '오롯이 나로서 이 삶을 살아' 가기 위해 매일 주먹을 꽉 쥘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 소설에서 다뤄지는 사랑이,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성에서 벗어난 것이라서 무조건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게 이 소설은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담고 있는 감정이란 우주만큼 드넓으며 거기엔 옮고 그름이라는 경계도, 우월의 구분도 없다고 알려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박상영 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 작가의 말 중에서) 관계를 바라는,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어쩔 수 없는 우리는, 똑같은 인간에 불과하다고.

여고생 시절 동성의 친구와 나누었던 교감은 우정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 시절엔 친구가 나라는 우주의 전부였다. 매일 만나도 늘 그리웠고 밤이 늦도록 편지를 썼다. 쉬는 시간이면 애정 하는 친구를 보러 그의 교실을 찾아갔고 두근거리는 설렘을 느꼈다. 어른이 되어 사회로 편입되기 전, 금지의 규칙은 많았지만 어떤 면에선 정상성의 규제에서 벗어나 있던 그 시절, 우리는 감정과 관계에 있어서는 지금보다 활짝 열려 있지 않았나 싶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단지 두렵다는 이유로 외면하거나 하나의 모습만 보며 그 세계를 왜곡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 싶고,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더 사랑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은이), 창비(2019)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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