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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 3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노보오가료보 관저에서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 3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노보오가료보 관저에서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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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침공과 전쟁, 학살이 계속되고 있다. 푸틴 정부는 전쟁에 대한 비판에 물타기를 하기 위해서 가짜뉴스도 쏟아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인 '우크라이나에 미국이 사주한 생물학 실험실이 있었고 러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세균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다'는 러시아 국방부의 주장이다. 근거 없음이 드러난 이 주장은 '후세인 정부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며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던 조지 부시 정부를 연상케 한다.

실제로 요즘 푸틴 정부의 언행을 보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미국의 '네오콘'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의 새로운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를 말했던 네오콘의 논리는 이런 것이었다.
 
'냉전 해체 속에서 테러리리스트와 깡패국가 등 새로운 안보 위협들이 등장했다. 중국 등의 도전 속에서 미국은 경제적으로 쇠퇴하고 있지만, 강력한 군사력으로 그것을 만회할 수 있다.'

'첨단 공군력을 이용하면 적은 지상군을 가지고도 중동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고, 독재에 시달리던 아랍 시민들은 우리를 해방군으로 환영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불량정권을 교체하고 민주주의를 전파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끝없는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
 
이 논리가 지금, 세계 2위의 군사력으로 주변 지역을 강탈해서 경제력 부진을 상쇄하려고 하면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우리를 해방군으로 환영할 것이기에 금방 탈나치화를 수행하고 철수할 수 있다'던 푸틴 정부의 구상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푸틴의 기대와 달리 러시아의 침공이 오히려 동서지역의 갈등도 뛰어넘어 우크라이나의 민족적 단합을 만들어내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강대국의 패권과 억압이 존재하는 한 저항적 민족주의는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우려스러운 또 다른 역설은 우크라이나에서 비중이 작았던 극우세력이 이 속에서 오히려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틴 정부는 '나토가 우리의 안보를 위협했다'는 전쟁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중립화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도 영토 강탈과 강제 분단을 노리며 전쟁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것이 나토의 확장으로 지금의 상황을 부추긴 서방 강대국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나토 확대가 전쟁의 불씨라는 것은 '냉전의 설계자'로 불렸던 조지 케넌조차 경고했던 바였다. 그는 이미 1997년에 '나토를 확대하는 것은 탈냉전 시대 전체에서 미국 정책의 가장 치명적인 오류가 될 것이다. 러시아의 군국주의적 경향에 불을 붙이며 냉전의 종식으로 인해 생겨난 모든 희망적인 가능성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월 27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러시아 언론과의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월 27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러시아 언론과의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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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서방 강대국과 서방 언론들은 러시아 탱크에 화염병을 던지는 우크라이나인은 영웅으로 추앙하지만,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탱크에 화염병을 던지는 팔레스타인인은 테러리스트로 비난하는 모순에 대해 답해야 한다. 또 자신들이 얼마 전까지 중동에서 러시아와 함께 아랍 혁명을 무너뜨리는데 협력했던 것도 해명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얼마 전 이스라엘 의회 연설도 아쉬운 점은 있다. 그의 출신 배경은 문제가 아니고, 그가 러시아에 맞선 저항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도 지지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가 지금 우크라이나 상황을 (과거의 홀로코스트를 넘어서서 지금의) 이스라엘의 상황과 비교한 것은 공감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점령과 학살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의 상황과 더 공통점이 많을 것이다.

이것은 나토 가입과 서방 강대국과의 동맹을 추구하던 젤렌스키 정부의 한계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이것이 러시아의 침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지지할 수 없는 이유는 될 수 없다. 강자의 부당한 억압과 폭력에 맞서는 약자의 저항은 언제나 지지받아야 한다.

그 저항을 반제국주의 좌파가 주도할 때만 지지할 수 있다는 태도는 홍콩 저항을 친미 자유주의자들이 주도한다는 이유로 지지하지 않거나, 검찰개혁 촛불시위를 친민주당적 인물들이 주도했다는 이유로 깎아내리는 것처럼 잘못된 태도일 것이다.

실제로 요즘 (극히 일부이겠지만) 몇몇 반제국주의 좌파들의 주장들은 동의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들은 '친미냐 반미냐'라는 단순 이분법으로 접근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반대와 비판은 곧 친미라는 뒤틀린 비약으로 나아간다. 그런 혼동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돈바스에 대한 우크라이나 군의 공격에 반대했지, 러시아의 키이우 폭격을 찬성한 것이 아니다'라는 우크라이나 좌파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또 자신들이 그토록 추앙하는 레닌의 지적도 되 돌이켜 봐야 한다. '한 제국주의 열강에 맞선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이 특정 상황에서 또 다른 제국주의 강대국에 의해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사회주의자들이 민족자결권에 대한 인정을 포기하도록 유도해서는 안 된다.(레닌 - '민족자결권'에 대해)'

이들이 서방 강대국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서방 언론을 불신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푸틴의 이해를 대변하는 러시아 관영언론을 신뢰하는 것으로 나갈 이유는 하나도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침공과 폭격에 죽어가면서도 그것에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눈과 목소리로 지금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침공과 전쟁을 방관하는 일부 좌파는 자신들의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정치가 과연 어디로 간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 강대국이 군사력으로 주변국을 침공하고 학살을 자행하는데 침묵하고, 저항하는 피억압 민족을 지지하지 않는 '선택적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정치'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좌파들이 '국제정치는 도덕과 윤리로 접근할 수 없다'며, 이 전쟁이 낳을 지정학적 변화에 대한 냉정한 분석에 몰두하는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반제 민족해방 정치의 핵심은 강대국의 불의와 폭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 억압받는 피억압 민중에 대한 강력한 공감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노, 공감, 연대의식이 빠진 반제 민족해방의 정치란 얼마나 공허한가.
 
3월 2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동쪽으로 약 400km 정도 떨어진 트로스트시아네츠 마을에서 청소년들이 부서진 러시아 탱크를 보고 있다.
 3월 2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동쪽으로 약 400km 정도 떨어진 트로스트시아네츠 마을에서 청소년들이 부서진 러시아 탱크를 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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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새로운 도전자들의 등장으로 제국주의 세계질서의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 속에서 다양한 견해 차이와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일이다. 이번 러시아의 침공은 특히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먼저 과연 서방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러시아 경제제재를 지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그동안 이란, 쿠바 등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이 나라의 가난한 민중에게만 더 큰 피해를 가하며 정부의 입지만 강화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동시에 모든 제재를 찬성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의 과두지배집단에 대한 표적 제재는 정당하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로 토마스 피케티는 유럽과 미국에 재산을 빼돌린 천만 유로 이상을 소유한 약 2만 명의 러시아 백만장자들의 자산 동결과 압수를 제안한 바 있다. 그것이 이 전쟁을 즉각 중단시킬 가장 효과적 방법이라는 것이다. 반면, 러시아측은 이런 제재가 '사유재산권을 부정하는 공산주의적 발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을 통해서 미군과 나토 군대가 직접 이 전쟁에 개입하고 러시아군과 충돌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에는 공감대가 크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이 전쟁은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직접적 충돌로 성격이 변화할 것이고, 3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재앙으로 발전할 수 있기에 도저히 지지할 수 없는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과 서방 강대국들이 우크라이나에 첨단 공격무기들을 지원하면, 사실상 대리전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하지만 당장 우크라이나 민중이 러시아의 전투기의 폭격과 탱크의 포격에 직면해서 죽어가고 있고, 그것에 결사 저항하는 상황에서 방어적 무기 지원은 불가피하고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주적은 국내에 있다'면서 '계급적 단결로 민족간 전쟁을 계급간의 내전으로 만들자'는 좌파의 전통적 구호를 반복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지적도 있다. 이것이 러시아에서는 여전히 매우 타당한 주장과 구호이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적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현재 우크라이나 좌파는 '젤렌스키의 패배가 더 낫다'(혁명적 패전주의)고 주장할 수가 없다.

지금 우크라이나 민중의 주적은 분명히 푸틴이고, 러시아 민중과 우크라이나 민중의 단결은 러시아 민중이 스스로 푸틴과 같은 편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때에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민족주의를 버리고 계급적 단결로 나서라'는 요구는 '당신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과 단결하라'는 말처럼 들릴 것이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지금 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이 모든 견해 차이와 논쟁을 넘어서서 '전쟁 중단과 러시아군 철수, 난민 환영'을 주장하는 광범위한 반전운동을 건설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베트남전 반대 운동 때도 그 대열 안에는 NLF(베트남민족해방전선)를 반대하는 사람도,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라크 반전운동 때도 그 대열 안에는 기독교인도, 무슬림도, 나토와 유엔 지지자도 있었다. 그 모든 차이와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전쟁 반대로 모인 사람들 속에서 좌파는 스스로 주장과 활동을 통해서 무엇이 전쟁을 중단시키는 데 효과적이고 정확한 분석과 주장인지를 입증하며 지지를 얻어야 했다.
 
3월 2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우의 관공서 건물이 러시아군의 로켓포 공격으로 무너진 가운데 잔해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3월 2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우의 관공서 건물이 러시아군의 로켓포 공격으로 무너진 가운데 잔해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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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푸틴의 전쟁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속전속결로 승리할 것이라던 전망은 무너졌고, 경제적 타격과 부작용은 심각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직접 가서 전쟁의 참상과 진실을 목격한 20만명의 병사들이 돌아와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관영언론들이 말하지 않은 진실을 말하기 시작하면 푸틴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이것이 이라크 전쟁이 부시의 '돌파구'에서 '무덤'으로 변화한 과정이다.

무엇보다 지금 푸틴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이다. 우크라이나 민중은 압도적인 군사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군의 진군을 곳곳에서 막아서고 있다. 젤렌스키 정부가 하는 구실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비무장한 시민들이 인간사슬을 만들어 탱크의 진격을 막아서는 장면들이 나타나고 있다.

수천 개의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서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폭격으로 파괴되고 고립된 지역의 시민들에게 음식, 의약품, 기본 생필품을 전달하고 있다. 피난민들에게 무료로 자신의 차와 집을 제공하는 수평적 연대와 자치가 나타나고 있다.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페미니스트, 보통의 시민들이 모두 여기에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이라크 침공과 전쟁이 미국의 지정학적 재앙이 되면서 네오콘의 꿈은 악몽으로 변했듯이, 푸틴도 비슷한 길을 향해 가야만 한다. 하나의 제국주의 강대국이 쇠퇴한 틈을, 또 다른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멋대로 전쟁과 침공을 일으킬 수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이 중요하다.
 
'제국주의/식민주의에는 양면이 있다. 한 쪽은 제국 간의 경쟁이다. 다른 쪽은 식민지에 대한 지배와 착취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영국, 독일은 아프리카를 지배하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우리는 그것을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프리카인에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프랑스, ​​영국 등이 자신들에게 한 일이었다. 그것이 제국간의 경쟁보다 더 중요한 이유이고 내가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바라는 이유이다.'(생태사회주의자 조나선 닐)

태그:#러시아, #우크라이나 , #전쟁,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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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보다 사람이 목적이 되는 다른 세상을 꿈꾸며 함께 배우고 토론하고 행동하길 원하며 <다른세상을향한연대>의 실행위원입니다. 더 많은 글들은 여기서 봐 주세요. http://anotherworld.kr/ 페이스북 계정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746737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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