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행이라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고도 마무리를 해피엔딩을 만들지 못했다. 지난 29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마지막 라운드에서 대한민국은 아랍에미리트(UAE)에게 0-1로 일격을 당했다.
 
베스트 멤버를 모두 가동한 한국은 후반 9분 UAE 하리브 압달라 수하일에게 뼈아픈 결승골을 허용했고, 만회골을 위해 분전했으나 아쉽게도 득점을 올리는 데 실패했다. 이란과의 지난 9차전까지 질주했던 한국은 이날 첫 패배를 기록, 7승2무1패(승점 23)로 최종예선을 마무리했다. 최종 순위는 이란(승점 25)에 이어 2위다. UAE를 상대로는 무려 15년 만에 당한 패배로, 2021년 3월 25일 이후 1년 동안 이어지던 A매치 무패 행진도 끊겼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29위의 한국은 월드컵 본선진출국중 세네갈(18위) 이란(21위), 일본(23위), 모로코(24위), 세르비아(25위), 폴란드(28위), 한국(29위), 캐나다(33위) 등과 다가오는 카타르월드컵 본선에서 '포트3'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으로 약체가 모이는 4번 포트 대신 3번 포트에 들어간다면 월드컵 본선에서 좀더 수월한 대진표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포르투갈 출신의 벤투 감독은 지난 4년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한국축구에 역사적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2018 러시아월드컵이 끝나고 신태용 감독의 뒤를 이어 한국 지휘봉을 잡은 벤투 감독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뛰어넘어 역대 한국 대표팀 최장수-최다승(28승) 감독-10회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카타르월드컵까지 무사히 임기를 마친다면 4년주기의 월드컵 지역예선부터 본선까지 모두 소화한 최초의 외국인 감독으로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벤투호의 특징은 감독의 확실한 전술적 철학과 방향성을 가지고 장기간 뚝심있게 팀을 이끌며 성과를 냈다는 데 있다. 벤투 감독은 다소 투박하더라도 스피드와 압박, 수비 등을 중시하는 선굵은 한국식 축구스타일 대신, 유럽스타일의 '빌드업 축구'를 입히는 것을 추구했다. 높은 점유율을 토대로 후방부터 짧은 패스로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나가는 빌드업 축구는 슈틸리케, 조광래 감독 등 이전의 사령탑들도 여러 차례 추구해왔지만, 한국 축구에는 맞지 않는 옷이라는 지적 속에 완전히 자리잡지 못했다. 

벤투호 역시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 탈락, 약팀들을 상대했던 아시아 2차 예선에서의 연이은 부진, 2021년 한일전 0-3 완패 등으로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실속없는 점유율에만 집착한다는 비판, 쓰는 선수와 전술만 고수하는 단조로운 플랜A의 한계, 벤투 감독의 불통과 고집에 대한 불만이 갈수록 커지며 한때 감독교체설까지 나오기도 했다.
 
전환점이 된 것은 오히려 역대 최악의 난이도로 예상되었던 최종예선이었다. 벤투호는 전통의 강호 이란을 비롯하여 중동팀들에게만 둘러싸인 '죽음의 조'에 배정받았다. 서울과 수원서 열린 최종예선 조별리그 1, 2차전에서 이라크(0-0 무), 레바논(1-0 승)을 상대로 답답한 플레이 끝에 1무 1패에 그칠때만해도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7일 안산서 열린 시리아와의 3차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손흥민의 극적인 결승골로 2-1로 승리했고, 이어 '원정 팀의 무덤'으로 불린 이란 테헤란의 아자디 원정에서 1-1로 비기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최대 고비를 넘긴 대표팀은 11월 열린 UAE전(1-0 승), 이라크(3-0 승)전 2연승을 통하여 한층 완성된 조직력을 선보이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대표팀은 지난 1월 터키 전지훈련과 평가전에서도 유럽파 없이 국내파 위주로 친선경기에 나섰음에도 승승장구하며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이어진 중동 원정에서는 주력 선수인 손흥민과 황희찬이 부상으로 빠졌음에도 레바논(1-0 승), 시리아(2-0 승)를 완파하며 조기에 월드컵 10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9차전에서는 11년동안 A매치 승리가 없었던 난적 이란까지 2-0으로 완파하며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벤투 감독을 향한 여론은 일제히 찬사로 바뀌었다.
 
마지막 UAE전마저 낙승했다면 월드컵을 앞두고 벤투호에 대한 기대치는 최고조에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벤투호는 최종전에서 빌드업 축구의 불안요소들을 드러내며 예상 밖 졸전 끝에 무너졌다. 
 
UAE전은 결과만 놓고 크게 실망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의미없는 경기라고 패배의 의미를 애써 축소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 경기를 통하여 벤투호가 처한 현실과 앞으로의 숙제를 냉정하게 인식하는 게 더 중요하다.
 
벤투호가 최종예선에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벤투 감독도 4-1-4-1을 주포메이션으로 하거나, 대표팀에서 부진하던 손흥민의 전술적 활용법을 개선하여 공격력을 끌어올리는 등 빌드업축구에 대한 피드백을 어느 정도 반영했고, 이는 성공적 변화로 이어졌다. 

여기에 침대축구에 강한 중동팀들을 상대로 UAE와의 최종전 이전까지 선제골을 내주는 상황이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 이란을 제외한 나머지 중동팀들간 서로 무승부가 속출하며 순위싸움이 물고물리는 양상이 반복되는 등 벤투호의 경기력과 별개로 의외의 운이 따라준 순간도 많았다.
 
반면 벤투호에게는 아직 약점들도 많다. 최종예선 4골을 넣은 손흥민을 제외하면 다양한 득점원의 부재, 간판스트라이커 황의조(최종예선 무득점)의 침묵, 세트피스에서의 결정력 부족, 김민재의 출전 여부에 따라 편차가 큰 수비력, UAE전처럼 밀집수비로 빌드업이 답답할 때 창의적인 플레이로 활로를 뚫어줄 플레이메이커가 없다는 점 등이다.
 
무엇보다 벤투호는 대부분의 경기를 아시아권 팀들과 치렀기 때문에 월드컵 본선에서 만나게 될 유럽이나 남미팀들을 상대로도 빌드업 축구가 경쟁력 있을지 의문이다. 
 
월드컵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뿐이다. 벤투 감독이 이제껏 이룬 성과는 인정하되, 그것이 자만이나 독선을 정당화하는 계기로 변질되어서는 곤란하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한국보다 전력에서 더 강한 상대들, 새로운 변수들이 벤투호를 기다리고 있다. 최종예선의 성공 비결과 UAE전의 패배 원인 모두 값진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벤투호 최종예선결산 카타르월드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