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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특별한 '한 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무조건 맞는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엄마의 레시피는 나에게 오로지 하나뿐인 레시피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일흔 살 밥상을 차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엄마의 음식과 음식 이야기를 기록한다.[기자말]
어린 시절, 명절날이나 잔칫날, 시골 큰집에 갔을 때 늘 상에 올랐던 음식이 있었다. 얼핏 보면 새빨갛고 새콤하다는 점에서 홍어무침과 비슷하지만 분명 다르다. 홍어무침은 무척 귀해서 우리 같은 아이들 차지가 될 수 없었다. 어른들의 술안주 0순위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홍어무침에 그다지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대신 내가 좋아했던 음식은 콩나물잡채였다.

콩나물잡채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콩나물에 당면을 넣은 음식으로 소개된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어린 시절에 먹었던 콩나물잡채는 당면이 없고, 콩나물과 미나리, 무, 쪽파, 당근, 다시마 등의 채소로만 이뤄진 음식이었다.

식재료를 보라. 얼마나 평범한가. 그 옛날에는 그냥 밭과 들판에 나가면 얻을 수 있는 아주 흔하디 흔한 것들이었다. 콩나물잡채는 평범함의 합이다. 

평범함의 합, 그러나
 
우리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재료로 만든 콩나물잡채. 알싸한 찬공기처럼 새초롬하고 새콤한 콩나물잡채. 봄철 나른하니 입맛없을 때 최고다.
 우리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재료로 만든 콩나물잡채. 알싸한 찬공기처럼 새초롬하고 새콤한 콩나물잡채. 봄철 나른하니 입맛없을 때 최고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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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베이스는 식초와 고춧가추. 맛은 새콤달콤매콤하다. 명절, 결혼식, 생일 등 집안 경사에는 꼭 이 음식이 상에 올랐다. 기름진 잔치음식에 새콤한 콩나물잡채는 느끼함을 덜어주기에 제격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술안주였으리라. 참고로 내 시골 큰집이 있던 정읍시 입암 지역은 콩나물잡채로 유명한 곳이었다. 놀랍게도 나는 이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콩나물잡채는 콩나물, 미나리, 무, 쪽파, 다시마 등의 재료에 소스를 끼얹어 무치는 음식이다. 과정 자체는 그다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정작 열을 가해서 볶거나 끓이는 과정은 없지만, 밑재료 손질에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명절이 오기 며칠 전부터 며느리들은 재료를 구해다 부지런히 밑손질을 하며 명절을 숨가쁘게 기다렸다.

어린 시절, 엄마가 집에서 이 음식을 따로 해준 기억은 없다. 엄마는 아마 명절에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젊은 엄마 입장에서는 굳이 자신의 집에 와서까지 시댁을 떠올리는 음식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나 역시 콩나물잡채는 응당 명절날 큰집에서만, 어린 시절에 먹던 음식이려니 생각하고 마음을 둔 적도, 해달라고 조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엄마가 갑자기 최근에 이 음식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나는 추억의 음식이라 환호했지만 엄마가 과연 이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엄마가 집에서 만든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스를 적당한 비율로 배합하고, 요리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는 이 음식을 아예 놓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예전 콩나물잡채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겨자가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엄마는 겨자를 추가함으로써 삶에 무슨 변주라도 주고 싶었던 걸까.

고단했던 시집살이의 맛
 
콩나물잡채에 쓰는 콩나물은 짧고 통통한 아귀찜용 콩나물이 좋다.
 콩나물잡채에 쓰는 콩나물은 짧고 통통한 아귀찜용 콩나물이 좋다.
ⓒ 안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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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다섯 며느리 중 막내 며느리였다. 위로는 윗동서 네 명이 있었다. 한때 부엌에 모여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우면서 머리에 하얀 수건을 쓰고 불을 때고, 물을 끓이고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음식을 만들던 며느리들은 지금 다들 연로하셔서 요양병원에 계시거나 집안에 계신다. 아주 고요히.

콩나물잡채의 톡 쏘는 새콤함은 서럽고 고단했던 시집살이의 맛이었다. 그들은 정작 자신이 만든 홍어무침은 맛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콩나물잡채의 톡 쏘는 맛에 시집살이의 설움을 털어내려 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콩나물잡채는 며느리들의 바쁘고 고단했던 시절의 음식이자 활달하고 몸이 가벼웠던 젊음의 맛이기도 했다.

엄마가 콩나물잡채를 다시 만들기 시작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이 음식을 굳이 만들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명절도 각자 집에서 알아서 쇠고, 경조사에 쓰일 음식도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그저 일상 하루 세끼를 위한 음식. 그나물에 그밥이 반복되는 느슨한 일상 속에서, 엄마는 겨자를 꺼내 톡 쏘는 콩나물잡채를 만들었다.

시집살이를 호되게 겪어야 했던 엄마들의 지난 젊음의 맛. 하지만 박제되지 않고 여전히 봄 날씨처럼 새초롬하고 신신하다. 나는 그 맛에서 엄마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큰엄마들의 좋았던 리즈시절을 생각해 본다.

지나간 시절은 누구에게나 그립고 아쉽고 아득하다. 그러다 기분이 처지면 콩나물잡채를 먹어볼 일이다. 엄마 버전의 겨자가 추가된 콩나물잡채를 먹으면 매일매일이 잔칫날이다. 콩나물잡채는 입맛을 돋운다. 살맛을 돋운다.


[정선환 여사의 콩나물잡채]

1. 콩나물은 아귀찜용 콩나물로 구입해 머리와 끝을 떼어내고 다듬는다.
2.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끓이다 다듬은 콩나물을 넣어 살짝 데친다. (너무 오래 데치면 콩나물의 아삭거림이 사라진다)
3. 데친 콩나물은 찬물에 넣어 헹군다. (이 때 얼음 넣으면 아삭거림 두 배)
4. 무, 다시마, 당근, 쪽파, 미나리 등을 4~5cm 길이로 채 썬다.
5. 소스를 만든다. 찬물 2컵, 설탕 1/4컵, 식초 1/4컵, 소금 2큰술, 매실청 5큰술, 까나리액젓 1 큰술을 넣어 섞은 뒤, 겨자 2 큰술을 풀어 넣는다. (콩나물 800g 기준)
6. 채썬 당근과 무, 콩나물은 고춧가루를 뿌려 미리 살짝 무쳐놓는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 나중에 다른 재료들과 한꺼번에 비비면 양념이 제대로 스며들지 않는다)
7. 4번에 나머지 채소들을 넣고 소스를 부어가며 살살 비빈다.
8. 그릇에 담은 뒤 통깨를 뿌려 상에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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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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