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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집에서 밥을 먹다 화장하는 초등학생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어머니는 요즘 초등학생들은 워낙 성장이 빨라서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은 아이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거기다 요즘엔 초등학생이 화장까지 하니 도통 나이를 가늠하기도 힘들다며 변한 세태에 놀라움을 표했다.
  
화장하는 시기가 빨라지긴 했다.
 화장하는 시기가 빨라지긴 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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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거기까지였다면 일상적인 대화였을 이야기는 미시적인 목격담을 넘어 거시적인 담론으로 넘어갔다. 어머니는 당신으로선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들의 행동에 대해 한탄에는 조금 미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에휴... 그대로도 예쁘기만 한데, 뭣 하러 좋지도 않은 거를 벌써부터 바르고 다니는가 모르것어.. 그대로도 예쁜데.. 아는 아 다워야지... 보고 있으면 안타까워..."

공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가끔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거나 마중 나갈 때면, 큰 키에 어른스런 복장과 화장까지 한 일부 학생은 교생 선생님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어머니와 다른 것은 그걸 딱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데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머리에 힘을 주려 헤어스프레이를 뿌리며 정성껏 나를 가꿔왔던 나로서는 그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간다. 조금씩 이성에 눈을 뜨고 멋과 미에 대한 안목이 자리할 즈음 많은 관심은 자연스레 겉모습에 치중되기 마련이다.

머리를 감고 나면 바가지머리가 되는 생머리를 가졌던 나는 고불거리고 가르마가 생기는 헤어 스타일을 동경했다. 소 핥은 머리라고 들어 보았는지 모르겠다. 소가 머리를 핥으면 머리카락이 소가 핥은 방향으로 고정된다는 이야기에 소에게 머리를 내밀어 볼까를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엄마들이 하던 파마의 원리를 알고는 전열기 가까이에 머리를 향하고 누워 머리에 고데기를 감은 채 이마가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누워있기도 했다. 그럴 때면 꼬순내가 방안 가득했다. 80년대 말 초등학생에게도 외모는 지상 최대의 과제였다.

아무래도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이 어땠는지를 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아들도 초등학생일 때부터 헤어스타일에 신경 썼고 여자아이들에게 뽐내려 춤 연습을 하다 새 신발의 앞 코를 다 해 먹었던 사실을 '다시' 고했다.

경상도 일부 지역의 방언으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도삽'이라고 하는데, 그럴 때면 도삽 진다며 어머니가 아들을 타박했음도 상기시켜드렸다. 어머니는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을 옛 기억 속에서 꺼내 곱씹으며 웃음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당시 나의 또 다른 '도삽'을 며느리 앞에서 신랄하게 '다시' 읊었다.

"야가 그랬던 기라. 바지에 뭐가 묻어서 더러버지면 그기 부끄럽다고 손으로 가리고 학교서 집꺼정 절뚝거리며 왔다 안하나. 야가..."

아.. 그 얘기는 제발... 쩝. 이쯤 되면 남을 이해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 된다.
  
추억으로 채워가는 공감

놀랍게도 그렇게 시작된 '아들 디스'는 어머니의 '셀프 디스'로 이어졌다. 당신 아들도 다르지 않았으니 화장하는 아이들을 편히 생각하시라는 의도로 꺼낸 추억 팔이 덕분에 이야기꽃이 만개했고 그간 들은 적 없던 어머니의 어릴 적 '도삽'을 알게 됐다. 의외의 수확이었다.

"그랑께 말이다. 어릴 때 뭣 한다고 그런 게 하고 싶었을꼬. 빼딱구두가 신고 싶어 가꼬, 엄마가 새로 사준 새하얀 고무신 바닥에 나무를 대고 못을 박아서 신고 다녔다 아이가. 말랑말랑한 고무신이 구두가 되것나. 휘청거리면서 다니몬 멀쩡한 신발에 뭐하는 짓이냐고 엄마한테 혼나면서도 그게 그리 좋았다 아이가.. 그라고 본께 남 말할 처지가 아이네... 참말로... 하하하하"

민망할 때면 나오는 어머니 특유의 호탕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지금 아이들보다 더 했던 당신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어머니의 공감 지수는 120% 채워졌다.

이해할 수 없던 일들이 나나 주변인의 일이 되면 이해하고도 남는 일이 된다. 그런데 그걸 자꾸 까먹는다. 올챙이적 기억을 하지 못하는 개구리마냥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아마 지나고 알게 된 부질없음과 혹시 어린 몸에 유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일 테다. 그러고 보면 남의 일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는 마음이 참견을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말이 어울리진 않지만 어머니가 참 기특하다. 비록 오랫동안 갸웃거리며 화장한 아이들을 봐왔을 천상 옛날 사람이지만 변한 세상에서 자신의 과거를 빗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귀 뚫는 남자를 이해하지 못했던 어머니가 고향에 내려온 아들의 귀에서 귀걸이를 발견했을 때, 강렬한 색으로 염색한 젊은이들을 보며 혀를 찼던 당신의 눈 앞에 와인색 머리 아들이 서있을 때의 당황한 어머니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 아들만은 안 그럴 줄 알았는데'라는 당혹감과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자신을 다독이는 자기 위안적인 방어본능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남의 일이 아님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뒤로 불쑥 올라오곤 하는 뒷말을 삼키려 노력했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한탄조의 말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그럴 때면 재빠르게 다시 주워 담는다. 남 말할 게 아니라면서.

한 세대가 다른 세대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언제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다. 그래도 하나만 기억하면 좋겠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거듭되어도 모습만 다르지 어느 시대나 어느 세대나 마음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음을.
 
모습은 달라도 그 마음이 그 마음
 모습은 달라도 그 마음이 그 마음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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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딱구두를 만들기 위해 멀쩡한 고무신에 못질을 했던 어머니나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숨을 참고 헤어스프레이를 뿌렸던 나나 화장에 정성을 쏟는 요즘 아이들의 멋지고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을 누가 나무랄 수 있나. '내가 그랬으니 너도 그렇겠지', '내가 아는 누구처럼 너도 그런가 보구나' 상대의 상황에 다른 마음을 대입해 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공감이라고 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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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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