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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속에는 역사가 있다. 다치지 않은 옛 그대로의 자연이 있고, 그것을 보는 옛사람들의 눈길과 그들의 어진 마음자리가 있다. 한마디로 옛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이다. 또한 옛 그림은 아련한 지난 세월의 향내를 지니고 있다."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다시 펼쳤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숨에 읽었다. 무슨 소설책도 아닌데 단숨에 읽을 수 있나 싶지만 그랬다. 소설 같은 재미는 아니지만 재미가 있다. 그것은 그림을 그렸던 옛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재미, 저자가 이야기했듯 당대의 역사와 자연, 눈길과 마음을 흥미롭게 엿볼 수 있어서다.

또 하나는 그림 보는 눈이 신통치 않은 이라도 그림을 보며 글들을 읽다 보면 그림을 그렸던 이의 마음이 상상의 나래 속에 펼쳐진다. 어떤 마음인지 엿볼 수 있다. 그 마음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주문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잘 읽지 않은 편인데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마음과 다시 한 번 읽고 싶어서였다. 또 하난 군 제대 후 집에 있는 아들놈에게 읽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오주석의 옛 그리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의 옛 그리 읽기의 즐거움>
ⓒ 신구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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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는 누구이고 김명국은 누구인가?

목차를 다시 훑어보며 첫 번째 등장하는 김명국의 <달마상>을 펼친다. 예전 이발소나 음식점에서 종종 봤던 그림이다. 검은 먹선으로만 이루어진 그림. 뭉툭한 매부리코에 부리부리한 눈, 풍성한 눈썹과 대충 난 듯한 콧수염, 한 일 자로 꽉 다문 입, 억세게 뻗쳐나간 구레나룻의 거침없는 수염들. 굵고 얇은 붓선으로 이루어진 달마의 모습은 미묘하다. 달마상을 보고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선과 선 사이로 하나의 매서운 기운이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이른바 필획은 끊어져도 뜻은 이어진다는 '필단의연(筆斷意連)' 옷주름 선뿐만 아니라 얼굴선, 관서 글씨의 선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이 호쾌한 선들을 관통하는 기氣의 주인은 김명국인가, 달마인가?"
 
저자는 달마의 상에서 김명국을 봤다. 그래서 달마는 누구이고 김명국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한다. "김명국이 달마를 그렸는가, 달마가 김영국을 시켜 자신을 그리게 했는가?" 하며 달마와 김명국을 분리된 존재가 아닌 연결된 존재로 말한다. 김명국의 성품 속에서 달마의 모습을 찾지 않았나 싶다.

천민 출신의 화원 김명국. 그는 성품이 호탕해서 얽매인 데가 없었고 거리끼는 것 또한 없었다 한다. 그러면서도 해학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엄청난 술꾼이어서 '취옹(醉翁)-술 취한 늙은이'이라는 별호를 가진 그는 대부분의 작품을 술이 취한 상태에서 그렸다고 한다. 이런 그의 성품이 달마도 속에도 드러나지 않았을까.

불교에서 색(色)은 존재의 모습을 가리킨다. 그런데 달마상엔 색이 없다. 색으로 희로애락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흑(黑)으로만 그렸다. 흑은 소멸과 존재의 끝이면서 출발점이다. 그래서 오주석은 흙을 모든 생명을 낳을 수 있는 생명의 원점이라 말한다. 달마상에 색이 없는 이유라 말한다.

천하 명필과 희대 고수가 이룬 걸작, 몽유도원도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세계가 있다. 그 꿈꾸는 세계를 서양에선 파라다이스, 유토피아라 하고 동양에선 무릉도원, 이상향이라 한다. 불교의 극락이나 기독교의 천국 같은 세계일 터인데 극락이나 천국은 사후세계의 이상이다.

유토피아나 무릉도원은 살아서 살고 싶은 세계다. 현실이 고달프고 힘들수록 사람들은 고통이 없는 새로운 세계를 갈망한다. 때론 노래로 그 세계를 염원하기도 한다.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청산'도 고달픈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민중들의 작은 이상향이었고 소망의 공간이었다.

그 이상향, 현실 세계에선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무릉도원을 보고 다시 읽는다. 실물이 아닌 화면 속에서다. 몽유도원도는 어쩌면 실물로 보기 힘들지 모른다.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죽인 수양 세조는 그의 동생 안평대군도 죽이고 그의 글과 그림을 모두 없앴다. 흔적마저 지워버렸다. 그런데 사라진 줄 알았던 몽유도원도는 500여 년 후에 다시 세상에 나왔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안견이 그렸지만 안견만의 그림이 아니다. 이 그림은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안견이 그렸다. 안평대군은 안견을 불러 꿈속의 이야기를 하며 안견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안평대군의 총애를 받던 안견은 꿈 이야길 들은 지 사흘 만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했다.

그리고 천하 명필 안평은 우아하고 유려한 필치로 <몽유도원가>라는 걸작이 탄생하게 된 내력을 담은 <몽유도원기> 쓴다. 이리해서 오주석의 표현대로 한 편의 장대한 교향시 <몽유도원도>가 완성된다. 이 <몽유도원도>에 대한 감상은 작자의 이 표현에 함축되어 있다.
 
"두루마리를 여는 순간, 우리는 대뜸 펼쳐진 황홀한 무릉도원의 전경에 압도된다. 마치 궁중아악 수제천의 시작을 알리는 박 소리가 그치자 모든 악사들이 일제히 강박 합주로 장엄한 첫 음을 울리는 것처럼, 안개 자욱한 무릉도원은 꿈결 같은 향기를 온 누리에 퍼뜨리며 화평한 기운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우리는 몽유도원도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지금 천상의 걸작인 몽유도원도는 우리나라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반출되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다가 지금은 중요문화재가 되어 일본은 국외반출을 허용하지 않고 관람도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읽는다는 건, 알아간다는 의미

보통 우리는 그림을 본다. 감상한다. 이렇게 말한다. 보고 감상한다는 건 인상으로 받아들인다는 느낌일 것이다. 그럼 그림을 읽는다는 건 뭘까. 그림을 알아간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림이 탄생한 배경과 이야기, 그림에 나타난 여백이 주는 의미, 그림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그린 이의 마음과 생각, 이런 것들을 알아가는 것이라 아닐까.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은 이런 의미에서 한 번쯤 읽고 간직하고 싶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엔 많은 그림들이 설명되어 있다.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윤두서의 <자화상>,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송하맹호도> <무동>, 정선의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김정희의 <세한도>,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등 많은 작품들을 오주석은 다양하고 친밀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의미와 마음, 배경들을 곁들여 풀어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소개된 옛 그림을 보며 작가의 손을 빌려 한 점 두 점, 한 획 두 획 그린 이의 마음을 읽어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옛 그림에 푹 빠져들게 된다. 봄볕이 따스하게 비추고 매화가 향기를 날리는 봄날, <몽유도원도>나 <주상관매도>를 관조하며 옛 그림의 향취에 빠져보면 좋을 듯싶다.

덧붙이는 글 |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 2> 값 20,000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지음, 신구문화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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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오주석 (지은이), 신구문화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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