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돌아가세, 전원이 거칠어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歸去來兮 田園將蕪 胡不歸)

중국 동진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첫 구절이다. '귀거래'는 벼슬에서 물러나 자연에서 산수와 벗하며 자족적인 삶으로 돌아가려는 옛 선현들의 꿈으로 여겨진다. 지금도 귀농이나 귀촌 등으로 전원생활을 꿈꾸는 도시민들은 '귀거래'를 가슴속에 담고 있다.
 
고성 이 씨, 낙포 이굉 선생이 1513년 지은 정자 . 안동 낙동강과 반변천 합수 지점에 세웠으나 큰 도로가 나면서 지금의 자리로 물러났다.
▲ 안동 귀래정 정면 모습 고성 이 씨, 낙포 이굉 선생이 1513년 지은 정자 . 안동 낙동강과 반변천 합수 지점에 세웠으나 큰 도로가 나면서 지금의 자리로 물러났다.
ⓒ 이호영

관련사진보기

 
안동시 정상동에 있는 '귀래정'은 조선 중종(1513) 때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 안동으로 돌아온 낙포 이굉(李汯) 선생이 지은 정자이다. 귀래정의 원래 위치는 낙동강과 반변천이 합수하는 지점이었지만 큰 도로가 생기면서 지금 자리로 물러났다.

낙동강 자전거 도로를 따라 강변을 돌다 영가대교 남단으로 올라오면 귀래정이 보인다. 왕복 6차로 바로 옆에 있는 데다 400~500년이 된 은행나무가 정자를 지키고 있다. 귀래정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은 언제 보아도 넓고 시원하다.
  
앞면 2칸, 뒷면 4칸 규모의 T자형 건물. 지붕은 여덟 팔(八)자 모양 팔작지붕.
▲ 귀래정 정자 모습 앞면 2칸, 뒷면 4칸 규모의 T자형 건물. 지붕은 여덟 팔(八)자 모양 팔작지붕.
ⓒ 이호영

관련사진보기

 
귀래정은 앞면 2칸, 뒷면 4칸 규모의 T자형 건물이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마루 주위를 제외한 다른 곳의 기둥은 각이 있고 창문에 쐐기 기둥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안내돼 있다.

이곳에는 이현보·이우·이식·윤훤 등 30여 명의 시를 보존하고 있다. 특히 '귀래정' 현판 글씨는 초서에 뛰어났던 조선 중기 서예가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1521~1567)가 쓴 글씨이다.
 
조선 중기 초서 대가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1521~1567)가 쓴 글씨.
▲ 귀래정 현판 조선 중기 초서 대가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1521~1567)가 쓴 글씨.
ⓒ 이호영

관련사진보기

 

  
낙포 이굉 선생이 귀래정을 짓고 "스스로 읊조리다'라는 시를 짓다.
▲ 낙포 이굉 선생 시판 낙포 이굉 선생이 귀래정을 짓고 "스스로 읊조리다"라는 시를 짓다.
ⓒ 이호영

관련사진보기

 
경상북도는 '귀래정'을 1985년 8월 5일 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했다. 이 귀래정에서 불과 100여 m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정자, 반구정 재사(伴鷗亭 齋舍)가 있다. 이 정자는 임청각을 지은 이명 선생의 여섯째 아들 반구옹(伴鷗翁) 이굉(李肱)이 1530년 초기에 지었다고 한다.
 
이 정자는 임청각을 건립한 이명 선생의 여섯째 아들 반구옹(伴鷗翁) 이굉(李肱)이 1530년 초기에 지었다고 한다.
▲ 안동 반구정 정자 이 정자는 임청각을 건립한 이명 선생의 여섯째 아들 반구옹(伴鷗翁) 이굉(李肱)이 1530년 초기에 지었다고 한다.
ⓒ 이호영

관련사진보기

 
이굉의 아들 어은(漁隱) 이용(李容) 역시 이곳에 돌아와 은거하니 삼세(三世)가 은둔한 곳이 되면서 조선 숙종은 이를 기리어 '고성이씨 삼세유허비'를 건립했다. 그 후 퇴락하여 빈터만 있던 것을 영조 16년(1740)에 중건했지만 1945년에 정자가 소실되어 1946년에 다시 중건하였고 현재의 재사는 1905년에 중건됐다고 한다. 문화재 안내판에는 '반구정 재사'로 표기됐으나 지역민들은 "반구정 정자가 맞다"라고 증언한다.
  
반구정에서 시회(詩會)와 향회(鄕會)를 자주 열면서 숙식 등을 위해 동·서재(東·西齋)를 지었고, 장판각에 주사(廚舍, 주방)까지 만들면서 서원처럼 강학 공간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 안동 반구정과 동.서재 반구정에서 시회(詩會)와 향회(鄕會)를 자주 열면서 숙식 등을 위해 동·서재(東·西齋)를 지었고, 장판각에 주사(廚舍, 주방)까지 만들면서 서원처럼 강학 공간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 이호영

관련사진보기

  
반구정 정자 뒤편에 걸린 현판
▲ 반구정 현판 반구정 정자 뒤편에 걸린 현판
ⓒ 이호영

관련사진보기

 
당시 안동 유림에서는 이곳 반구정에서 시회(詩會)와 향회(鄕會)를 자주 열었다고 한다. 그래서 숙식 등을 위해 동·서재(東·西齋)를 지었고, 장판각에 주사(廚舍, 주방)까지 지으면서 서원처럼 강학 공간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258호로 지정돼 있다.

[귀래정]
경북 안동시 정상동 777번지. 영가대교 남단
[반구정]
경북 안동시 정상동 486번지. 귀래정에서 100여m 떨어져 있다.

덧붙이는 글 | '자전거로 떠나는 안동 문화 여행' 계속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안동 사는 善山人. 待人春風 持己秋霜(대인춘풍 지기추상)을 좋아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