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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지난 겨울 방학, 그림책 깊이 읽기 수업을 했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주제를 선정해 그와 관련해 책을 골랐다. 읽은 후 자유롭게 감상을 나누고 몇가지 질문이 담긴 활동을 하는 시간을 보냈다.  

수업을 하며 놀랐던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지식 수준이 생각했던 것 보다 높다는 사실이었다. 아쉬운 점은 생각과 표현이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어른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흡수한 모습이었다. 아는 것은 많았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새해가 밝은 지 얼마 안 된 때라 이선미 작가의 <진짜 내 소원>을 골랐다. 이 책은 우연히 호리병 속 요정 지니를 만난 한 여자 아이가 세 번의 소원을 말할 기회를 얻는데, 엄마, 아빠 소원 대신 마지막 소원을 빌기 위해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의 소원이 얼마나 엉뚱하고 기발하며 웃길까 잔뜩 기대했는데, 예상이 깨졌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해 준 친구도 있었지만, 돈이 많았으면 좋겠고 능력이 있고 유명해졌으면 좋겠다는 어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소원이 주로 나왔다. 

양적으로 책을 많이 접근하고 아는 것은 많지만 이미 아이다움 보다 작은 어른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이 안타까우면서 한 아이의 부모로서 나를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아이들 속마음을 들으며 그림책이 아이들과의 대화에 좋은 매개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고 아쉬움도 느꼈다. 글자를 알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점점 그림책과 멀어진다. 사실 그림책의 주요 내포독자는 7세 정도까지다. 이번 모임에서도 어떤 아이는 그림책을 보고 어릴 때나 읽는 책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림책을 향유하는 어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림책을 소비하는 주요 계층은 유아와 그 부모 정도로 한정적이다. 아이가 글자를 읽기 시작하면 부모들은 점차 글 밥이 많은 책을 읽기를 원하고 일종의 과제처럼 읽기 독립이 목표가 된다. 자연히 부모가 그림책 읽어주는 시간도 줄어들거나 끝이 난다.

아이들이 자신의 성장 단계에 맞는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물론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그림책을 단순히 글의 양을 기준으로 유아에 한정하는 분위기가 나는 많이 아쉽다. 잘 만들어진 좋은 그림책은 영유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성장하는데 꼭 필요한 본질적인 삶의 가치를 매우 문학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르는 그림책의 매력
 
책장에 꽂혀 있는 다양한 그림책들.
 책장에 꽂혀 있는 다양한 그림책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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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인 로버트 풀검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에세이집 제목을 볼 때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그림책에서 배울 수 있다'고 바꿔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그림책은 살면서 꼭 알아야 할 본질적인 삶의 가치를 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림책 속의 아름답고 풍부한 표현들은 유아들의 어휘발달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에게도 함축적인 문장의 힘을 자연스레 느끼게 해 준다. 또한 세상의 이치, 옳고 그름, 사랑, 죽음 같은 관념적인 개념들도 어렵지 않게 접하고 이해하게 해 준다.

다른 사람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는지,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어떤 감정인지, 노력은 어떤 가치가 있는지 그림책은 어렵지 않게 공감 가는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간접 경험을 하게 해 준다.

아이들의 창의성에도 도움을 준다. 어린이들은 그림책 속 이야기를 어른처럼 논리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이런 과정 속에서 상상력이 발달되고 창의성이 자라나면서 호기심과 탐색의 힘도 키워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 그림책은 삶의 진리를 단순하고 진실한 방식으로 전하고 있다. 다 큰 어른들이 그림책에 빠지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 아닐까? '유치원의 가르침은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하다고 표현해서도 안 된다. 삶에 기본이 되는 것이라고 해야 옳다'라고 로버트 풀검도 말했듯, 그림책도 중요한 삶의 가치를 어렵지 않게 이야기한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아니, 몇 백 페이지의 책이 구구절절 설명하는 걸 어떻게 이렇게 짧은 문장과 그림으로 고스란히 나타낼 수 있는 거지?'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인 요르크 뮐러의 <외다리 병정의 모험>은 글자가 하나도 없지만 영화를 보는 듯한 그림 속에 수많은 사회적인 이슈들이 녹아 있다.

물론 살아가는데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실용서나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비문학적인 독서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와 어떤 연관을 맺고 의미를 획득할 것인가 하는 부분은 단순한 지식의 앎, 습득 수준에서는 바로 일어나기 어렵다.

이에 반해 그림책은 기-승-전-결의 완결된 구조를 가지고 흐름 속에서 실세계의 사건을 특정한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연스레 감정이입 한다. 세계를 알고 사람에 대해 배우게 만든다. 상상을 통해 현실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힘을 키워준다.

그림책의 가장 큰 묘미는 한정된 문장과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열린 여백이다. 글자가 적다고 해서 읽을 게 적지 않다. 어떤 의견을 답으로 제시하지 않고 읽는 사람의 생각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여백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림책을 읽으면서 더 자유롭고 독창적이 될 수 있다.

그림책은 글자 언어만이 아니라 그림 언어와 책을 구성하는 물리적인 요소(책의 면지, 표지 등)와 책에 영향을 주는 관련 자료나 후기 등을 일컫는 파라텍스트(Para-text)로 이루어져 있다. 글자 외에 이런 요소들을 찾아가며 읽는 습관을 갖다보면 흥미도 생길 뿐만 아니라 책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는 주체적인 독자로 성장할 수 있다.

많은 시간, 별도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아도 하루 10~15분 정도, 아이가 읽고자 하는 그림책 한두 권을 놓고 서로 가까이 앉아 소리 내어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책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자연스레 요즘 아이의 속마음, 사는 이야기도 나누게 되는 일석이조의 장점이 있다.

우리의 언어가 그림책이라면

좋은 그림책을 고르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시대를 넘어서도 널리 읽히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지금 아이와 이야기 나누고 싶은 주제들에 대한 책을 찾아서 읽어주면 더 흥미롭게 책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마음에 들어 하는 특정 작가가 생기면 그 작가의 전작을 찾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같은 작가가 다루는 주제를 어떤 이야기와 인물 속에 녹였는지 여러 작품을 통해 발견하고 그 작품들을 연결하는 메시지를 찾아보는 것도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상의 아이들이라면 그림책으로 독서모임을 해 봐도 좋을 것이다. 이때도 주의할 것은 아이가 의견을 말하면 말하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어른들도 그림책을 즐기고 이해하면서 책 읽는 시간을 함께 하면 좋을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문학사상, 2020)이라는 스코틀랜드 여행 에세이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예외적으로,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적어도 나는- 늘 그러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하고.
 
나는 늘 그림책을 읽으며 하루키의 이 문장을 떠올리고는 한다. '우리의 언어가 그림책이라면 복잡한 설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텐데'라고. 삶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들을 심플하고 친밀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그림책의 힘을 느끼고 이해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https://m.blog.naver.com/uj0102
https://brunch.co.kr/@mynameisred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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