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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편집자말]
이번 달 초 피아노 레슨을 하는 날, 선생님이 확진자와 밀접 접촉해 PCR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수업을 한 주 쉬어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건강 유의하시고 다음 주에 뵙자는 이야기가 무색하게 나는 그 이후로 3주째 피아노 레슨을 받지 못했다. 

도미노 같은 확진세

피아노 선생님의 연락이 있던 그 주 주말을 시작으로 친정 부모님이 차례로 확진되었다. 이때는 이미 일일 확진자 수가 20만명을 훌쩍 넘어 30만명으로 치닫고 있을 때였다. 친정 부모님과 주말에 식사를 하기도 했고, 아이의 하교를 맡아주고 계셔서 우리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피아노 선생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오시지 않도록 말씀드렸다. 그날은 마침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아이는 선거일 전날부터 미열이 나기 시작했다. 미리 사전투표를 했기에, 선거날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신속항원 검사를 받으러 다녀왔다. 아이도 나도 둘 다 음성이 나와서 그 날은 집에서 하루 푹 쉬었다. 오후가 되자, 아이가 열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후두염 증상과 비슷한 '컹컹' 거리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이가 한정적이라 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색종이를 접고, 책을 읽고, 블록을 쌓고, 피아노를 치며 놀았다. 원래 피아노 선생님 오시는 날인데 못 오신다고 하니 아이가 서운해 했다.

요즘 아이는 피아노 선생님이 내주시는 교재 연습 말고 스스로 노래를 만들어서 쳐 보는 작곡(?)에도 취미가 한창 붙어 있는 참이었다. 레슨은 받지 못했지만, 디지털 피아노 기능 중에 녹음 기능을 이용해서 아이가 만든 곡을 녹음해서 들어보고 다시 쳐서 새로 녹음한 것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아이는 가래가 많이 생기고 밤새 열이 39도까지 올라가는 등 상황이 심상치가 않았다. 또 다시 신속항원 검사를 하러 갔더니 이번에 아이는 양성, 나는 또 음성이 나왔다. 아이는 PCR 검사를 해 두고, 학교에 연락해 등교를 하지 않았다.

주변을 보니 신속항원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PCR은 99% 양성이 나온다고 하길래, 아이를 친정집으로 보낼 채비를 했다(3/14 이후부터 신속항원 검사만으로 코로나 양성 확진 판정을 해주고 있지만 이때는 3/14 이전이었다).

아이를 친정으로 보내고 아이 학원에 연락을 하고, 피아노 선생님께도 연락을 했다. 피아노를 한 주 더 미루어야 하겠다고. 다음날 아이의 PCR 결과 양성 문자를 받았고, 동거 가족 확진이라 나도 PCR 검사를 받으러 다녀왔다.

격리 중 피아노 연습이 가져다 준 힐링
 
피아노를 치는 동안 가족들 걱정, 코로나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음악에 빠져드는 경험을 했다.
 피아노를 치는 동안 가족들 걱정, 코로나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음악에 빠져드는 경험을 했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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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R 검사를 받은 날은 재택 근무를 하게 됐는데,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대단히 낯설었다. 일을 하고, 혼자 밥을 차려 먹고, 중간 중간 아이 상태를 전화로 전달받으면서, 간혹 생각이 날 때마다 피아노를 쳤다.

연습하는 곡들이 마침 김광민의 '학교 가는 길'이나 영화 <스팅>의 주제곡인 'The Entertainer' 같은 발랄한 곡들이라 피아노를 치는 동안 가족들 걱정, 코로나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음악에 빠져드는 경험을 했다.

다음 날 오전 PCR 결과 음성 판정을 문자로 통보받았지만, 오후가 되자 나도 목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주말부부를 하는 남편도 아이와 같은 날 확진 판정을 받아 주말이지만 내려오지 못했다.

오롯이 혼자 있는 주말이라니! 주말이라 조금 늘어져서 집안 정리를 하고, 피아노를 쳤다. 이 곡 저 곡 쳐보다가 늦은 점심을 차려 먹고, 너무 피곤하여 안 자던 낮잠도 한숨 잤다.

자고 일어나니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 머리가 무겁고 멍한 데다가 여러가지 걱정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어서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 먹고는 또 피아노 앞에 앉았다. 피아노를 치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다.

다음 날 아침, 눈물과 콧물을 동반한 감기와 함께 잠에서 깼다. 우려했던 대로 자가진단 키트 두 줄이 떴다. 비를 뚫고 PCR 검사를 받으러 갔다. 한 주간 도대체 코를 몇 번이나 찌른 것인지, 더 이상 세는 것이 무의미했다.

오후가 되니 열이 나고 목이 아파오면서 증상이 더 심해졌다. 집에 있던 약을 먹으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 밥은 배달을 시켜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역시나 나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피아노 선생님께 다시 한번 연락을 드려서 피아노를 한 주 더 미루자고 했다. 피아노 레슨을 3주 동안이나 받지 못하게 되었지만, 연습은 더 열심히 했다. 아이 없이 집에 혼자 있고 나가지도 못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피아노 앞에 앉는 시간이 늘어났다.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팠고, 책을 읽자니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럴 때 환기할 겸, 바깥 공기를 쐴 겸 창문을 활짝 열어 두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힐링이었다. 건반을 두드리며 피아노를 치는 행위에서 오는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고, 연습에 연습을 더하며 칠 때마다 조금씩 더 나아지는 음악 소리에 집중해 음악 감상을 했다. 내가 만들어 낸 음악에 내가 힐링이 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몸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고 항생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약을 먹어서인지 약간 멍했다. 심지어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인후통이 너무 심해서 입을 닫고 생활을 했다. 평소라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대화가 그리워 누군가와 통화라도 했을텐데, 호되게 앓던 3일간은 침 삼키기도 무서울 정도의 인후통에 시달렸다. 전화 통화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컴퓨터나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파서 철저히 고립된 생활이 지속 되었다. 유일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피아노였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악보에 그려진 음표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피아노를 치다 보면 온 가족이 코로나 확진이 되고 아픈 상황이 그렇게 암울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피아노 앞에 앉은 시간이 길어지며 나는 더듬 더듬 한 손씩 치던 곡을 마침내 두 손으로도 매끄럽게 치게 되었다. 지난 두 달 간 배운 곡들을 죄다 처음부터 섭렵할 기세였다.

다시 조금 업그레이드 된 일상으로

그 다음 주말, 자가 격리가 끝난 남편과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자가격리 기간 동안 몸에 배인 습관처럼 틈만 나면 자연스럽게 피아노 앞에 가서 앉았다. 연습 소리를 듣던 남편과 아이가 피아노 방으로 모여 들었다.

"와~ 당신 대단한데?"
"엄마 멋져!"


격리 기간 동안 한층 늘어난 나의 피아노 실력을 아낌없이 칭찬해주었다. 코로나 확진이 가져다준 긍정적인 효과랄까. 무섭게 증가세를 보이던 오미크론 확산이 잠시 주춤하는 듯하다. 남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코로나 확진이 온 가족을 휩쓸고 지나가고, 나는 항체와 더불어 조금 업그레이드된 피아노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고 하 듯, 이 모든 과정이 부디 단계적인 일상 회복으로 가는 길이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건강도, 피아노 레슨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개인 SNS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시민기자 그룹 '워킹맘의 부캐'는 일과 육아에서 한 발 떨어져 나를 돌보는 엄마들의 부캐(부캐릭터) 이야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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