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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9일째, 오늘은 밀양 송전탑이 세워진 마을로 갑니다. 2008년 7월 밀양 주민들이 처음 송전탑 반대 집회를 시작한 지 1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산수유 핀 길을 따라 걷다 보니 102호 밀양 송전탑이  있습니다. 대책위의 젊은 활동가는 말했습니다. 

"저 산 위에 110번 송전탑 농성장이 있었습니다. 전기도 물도 없어서 산에 오를 때마다 물을 지고 갔습니다. 행정 대집행이 들어 올 때 부지에 있던 나무들을 다 베어 버렸습니다. 그 자리에 작은 나무들을 새로 심었습니다. 그 나무들이 벌써 많이 자랐습니다."

 
밀양 101호 송전탑
 밀양 101호 송전탑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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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송전탑을 막으려고 분신한 고 이치우 노인이 살던 보라마을 다리가 바로 뒤에 있습니다. 한 생명이 사라지자 그때서야 세상은 밀양을 주목했습니다. 

102호 송전탑에 온 한 주민은 노후에 행복하게 살려고 밀양 골짜기로 들어왔지만 마을이 쑥대밭이 되면서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고 울먹입니다. 그분은 그동안 밀양 할머니들이 경찰에 당하는 것을 보면서 하도 억울해서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밀양의 산골짜기마다 들어선 765kv 송전탑은 모두 69개입니다. 송전탑을 막기 위해 팔십이 넘은 노인들이 산골에 움막을 짓고 살기도 했습니다. 공사장 자재를 실은 헬기를 막기 위해 밀양 노인들은 매일 높은 산을 오르며 처절한 투쟁을 하였습니다. 송전탑이 지나가는 마을마다 암 환자가 발생하였고 그들은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송전탑이 세워지는 동안 마을은 분열되고 무너져 갔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송전탑을 막기 위해 애썼던 분들도 많이 돌아가셨습니다. 코로나는 서로의 연대마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지쳐갔습니다. 사람마저 왕래가 끊긴 마을은 적막했습니다.  

송전탑이 있는 단장면 산골은 전쟁 시기 밀양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마을 주민들이 집단학살을 당한 곳이었습니다. 그때나 이제나 힘없는 자들의 역사는 늘 반복됩니다.

 
밀양청도 송전탑 반대 문화제
 밀양청도 송전탑 반대 문화제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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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 '봄바람과 밀양·청도가 함께 만드는 탈핵·탈송전탑' 집회가 영남루 계단에서 있었습니다. 불편한 다리로 힘겹게 지팡이를 짚고 오신 부북면 주민은 밀양 송전탑 투쟁을 하면서 세 부류의 사람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돈만 생각하는 사람, 참된 마음과 투철한 의지로 탈핵반대를 하며 연대하는 사람, 처음에는 송전탑을 반대하다가 자기 이익을 챙기고 떠나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천민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세태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밀양의 주민들과 강정에서 살아온 평화바람 식구들은 같은 병을 앓고 있습니다. 같이 아프고 같이 힘을 냅니다. 봄바람 순례단이 온다는 소식들 듣고 집회 장소까지 몸이 힘들어도 서로 만나기 위해 모였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다 온 한 분은 집회 도중 쓰러져 119 구급차로 이송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힘을 내기 위해 마음을 모아 봅니다. 갑자기 다른 세상을 만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서로가 함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화바람의 한 분이 마지막 인사를 하였습니다. 

"밀양이 견디고 강정이 견디고 있습니다. 서로 의지하며 보낸 12년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가난하지만 인간의 존엄을 믿기에 싸워갈 것입니다."
 

사드 없는 세상을 원합니다

순례길 10일째입니다. 새벽 5시, 어둠을 따라 성주 소성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영하 3도의 날씨입니다. 새벽부터 마을 곳곳에서 등이 굽고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이 마을회관 도로 앞으로 한 분 두 분 모입니다. 동네 어른들과 문정현 신부님은 서로를 감싸주고 손을 꼭 잡아 줍니다.

사드 배치로 지난 7년간 소성리 주민들의 일상은 무너지고 마을은 전쟁터로 변했습니다.  사드가 배치되어 있는 산 입구는 경찰이 막고 있습니다. 도로에 주민들이 집회를 시작하였습니다. 문정현 신부님도, 동네 어른들도 영하의 추위에 덜덜 떨며 앉아 계십니다. 새벽 6시 30분, 사드 배치 공사장으로 올라가는 차량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모여 있는 것입니다. 집회 중에 경찰이 들어와 주민들을 고착하고 끌어냅니다. 힘으로 버틸 수가 없습니다. 노인들은 그런 수모를 매일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소성리 사드 반대 집회
 소성리 사드 반대 집회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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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도 우리 할머니들은 딱 버티고 계셨어요. 지금은 주 3회 차량이 들어오는데 들어오기 전날, 차량이 나간 다음날 이틀은 정신이 없어요. 일주일에 이틀 정도밖에 농사일을 못해요. 앞으로 주 5일을 들어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싶어요. 이제 곧 일하는 철이 돌아오는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불안한 건 사실이에요. 캄캄한 한밤중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에요. 끝까지 싸울 수 있을까, 버틸 수 있을까, 막막합니다." (임순분 주민)

 
소성리 사드 배치 반대 집회 '하늘보기 부끄럽다'
 소성리 사드 배치 반대 집회 "하늘보기 부끄럽다"
ⓒ 한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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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을 버텨냈습니다. 사드 기지와 가장 가까운 마을의 거리는 400~500m밖에 되지 않습니다. 노곡리는 사드 배치 이후 주민 100명 중 최근 1, 2년 사이 아홉 명의 암환자가 발생했으며 그중 다섯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전체 주민의 10%가 급작스럽게 암이 발병하였습니다. 주민들은 사드 레이더가 마을을 향해 세워진 이후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사드 배치로 인한 레이저 전자파 측정과 암 발생의 인과 관계를 확인해줄 연구와 조사조차 전혀 진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드 배치는 소성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일이며 한반도의 운명이 걸려 있는 일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분단 체제와 군사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국가는 군사주의를 통해 무력과 폭력을 사용하고 일상의 평화를 깨트렸습니다. 미국의 군사주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사드를 배치하고 주민들의 삶을 빼앗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살던 동네에 사드가 들어선다면 , 서울 한복판에 사드가 배치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지 우리는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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