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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우리집을 덮쳤다

회사에서 야근 중이었다. 저녁 9시가 다 되어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받아보니 초등학교 4학년 딸이 목이 아프고 기침이 심하니 올 때 편의점에서 자가진단키트를 사오라고 했다. 서둘러 컴퓨터를 끄고 회사 밖으로 나왔다. 머릿속에는 이제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운전해서 집에 가는 길이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딸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자가진단키트를 꺼내 검사를 했다. 가운데 하얀색에 조금씩 검은 물결이 차올랐다. 나와 아내, 아들 그리고 딸까지 여덟 개의 눈이 하나로 향했다. C에 빨간 줄이 선명하게 새겨졌고, 그 뒤로 T에 희미한 선이 뒤따랐다. 시간이 좀 더 지나 그 선은 확실한 줄이 되었다. 맙소사 양성이었다.

딸은 몹시 놀란 얼굴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번갈아 아이 등을 두드리며 괜찮다고 달랬다. 그리곤 긴장이 풀렸는지 피곤하다고 했다. 아내는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딸을 재우러 갔다. 그 사이 아들과 나도 자가진단키트로 검사를 했고, 음성이 나왔다. 조금 있다가 딸의 방에서 나온 아내도 검사를 했고 다행히 음성이었다.
 
딸에게 실시한 자가 키트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 자가 키트에 선명한 두 줄 딸에게 실시한 자가 키트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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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라는 거대한 적이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일단 먹거리부터 걱정이었다. 모두가 코로나에 걸리는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아무도 밖에 나갈 수 없었다. 우선 인터넷으로 밀키트를 주문했다.

나는 회사 단톡방에 상황을 정리해서 올렸고, 업무망에 접속해서 코로나 관련 보고서를 작성 후 담당자에게 제출했다. 그리곤 일주일간 재택근무를 신청했다. 부서장의 염려 말라는 연락과 동시에 몇몇 동료의 안부 문자가 이어졌다.

마스크를 계속 낀 채 번갈아 씻고 자리에 누웠다. 아내는 딸이 걱정된다며 결국 딸 방으로 향했다. 코로나도 막을 수 없는 모성애였다. 나 역시도 복잡한 마음에 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아내는 아침 일찍 딸과 검사를 받으러 나갔고, 나는 아들 밥을 챙겼다. 그리곤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PCR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뿐 코로나 확진이 거의 확실한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단 집안에서 내내 마스크를 써야 했고, 식사도 부엌과 거실로 나눠서 했다. 식기와 수저도 따로 사용했고, 식사 후에는 즉시 식기 세척기에 넣어 돌렸다. 거실 화장실은 딸이, 안방 화장실은 나머지 가족이 사용했다.

되도록 딸 아이를 방에서 나오지 않도록 했으나 답답했는지 수시로 문밖으로 나왔다. 낮에는 나름 조심한다고 했지만, 밤이 문제였다. 아직 혼자 자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 아내는 딸을 재운 후 안방으로 왔다.

드디어 다음날, 보건소에서 딸의 확진 문자가 왔다. 그리고 주말이 되었다. 그때 정부는 14일부터 동네병원에서 하는 신속항원검사 결과도 확진으로 인정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일단 나는 주말에 아들과 PCR을 먼저 받아보기로 했고, 아내는 월요일에 동네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일요일 저녁 느긋하게 식사를 마친 후 아들과 PCR 검사를 받기 위해 근처 선별진료소를 향했다. 인근에 도착해서 차가 막혔다. 도착은 했으나 마감이 임박해서 더는 사람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20분여 거리의 다른 선별진료소를 안내해 주었다. 부리나케 차를 돌려 그곳으로 향했다. 비까지 내려 마음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갔더니 다행히 입장이 가능했다. 줄은 길게 늘어서 있었다. QR로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미리 준비해온 가족관계 증명서와 신분증을 꺼냈다. 한 40분 정도 대기한 후에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날이 쌀쌀한 저녁임에도 이마에는 계속 땀이 흘렀다.

다음날 아침부터 아내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불길한 증조였다. 자가진단키트를 해보니 빨간 두 줄이 선명했다.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는데 결국 양성이 나왔다. 이제 아내마저 코로나에 걸렸다. 아내는 몸살과 두통, 인후통이 심했다. 아들과 나의 PCR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 계속 기침을 했다. 먼저 마스크를 쓴 채 딸의 밥을 챙기고, 나중에 아들과 늦은 식사를 시작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인근 죽집에서 죽을 시켰다. 아내는 몇 입 뜨지도 못하고 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집안에는 아내와 딸의 기침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차례로 하나, 둘 쓰러졌다
 
온가족이 차례로 코로나에 걸리다.
 온가족이 차례로 코로나에 걸리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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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라고 해도 일상을 멈출 순 없었다. 아이들은 온라인으로 학교와 학원 수업을 들어야 했다. 나는 재택근무 중이었다. 집에는 노트북 한 대, 패드 하나가 있었다. 낮에는 아들과 내가 노트북과 패드를 썼고, 딸은 아내 핸드폰을 사용했다. 하지만 오후 학원 수업은 반드시 노트북을 써야 했다.

핸드폰으로는 회사 업무망에 접속할 수 없는 나는 그저 멀뚱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아내까지 저녁에 교육받는 것이 있어 노트북이 필요했다. 함께 자가격리를 하는 기간 내내 미묘한 신경전이 오갔다.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고 있으면, 갑자기 아들이 나타나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한다며 다그쳐 옥신각신했다. 온 가족이 장기간 집에 머물며 예상치 못한 일이 하나둘 튀어나왔다.

이제 식사부터 씻는 것까지 아내와 딸, 나와 아들로 나눴다. 둘이 먼저 식탁에서 식사를 마치면, 그제야 나와 아들이 거실에서 식사했다. 잠도 둘둘 나눠서 잤다. 그렇게 이틀간은 잘 버텼다. 그런데 삼일째 아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기침을 시작했다. 자가진단키트를 해보니 익숙한 빨간 두 줄이었다. 서둘러 동네병원에 가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는데 이상하게 음성이 나왔다.

안심하고 있기엔 불안해서 나는 아들과 다시 PCR 검사를 받았다. 다음날 검사 결과, 아들은 양성, 나는 음성이 나왔다. 이제 나만 남았다. 집 안에서 마스크를 쓰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가족들은 편하게 집안에서 돌아다녔고, 이제 나 혼자 방에 갇혔다.

아내는 쟁반에 담아 식사를 챙겨주었다. 특별한 일, 아니고서는 문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집안에는 아들의 기침 소리까지 더해져 끊임없이 가족들의 기침 소리가 이어졌다. 아내는 몸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연일 가족들 식사를 챙기느라 파김치가 되었다.

다시 주말이 되었다. 21일이면 격리해제였다. 일요일 아침 일찍, 병원에 갔다. 아직 진료 시간 전인데도 사람들로 바글댔다. 삼십 분 넘게 기다렸다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음성이었다. 회사 단톡방에 결과를 알렸다. 드디어 열흘 만에 회사에 출근했다.

가족들이 모두 확진된 상황에서 끝까지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급한 회의 일정이 생겨 동료 한 명과 출장을 다녀왔다. 회의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야근을 해야 했다.

동료 세 명과 인근 식당에서 식사하고 돌아오는데 목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가족들에게서 익히 보아온 증상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일을 시작했는데, 점점 심해졌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얼른 정리하고 퇴근했다.

운전하고 오는데 기침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목 안에 미세먼지가 가득 찬 듯 불편했다. 서둘러 집에 도착했다. 그리곤 자가진단키트로 검사를 했더니 양성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제 막 열흘 격리를 마쳤는데, 코로나에 걸리다니. 그간 조심했던 행동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PCR 검사를 받고 최종 확진이 되면 또다시 일주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했다.

다음 날 PCR 검사를 받고 최종 확진 통보를 받았다. 이제 다시 길고 긴 터널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인후통에 기침까지 겹쳐 몸이 많이 안 좋았다. 오한까지 찾아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증상이 감기 정도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아픈 감기는 처음이었다.

격리를 시작하면서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마스크도 벗고, 식사도 다 같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가족 모두가 걸렸으니 조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상황이었다.

나처럼 확진이 되어 격리 중인 지인과 통화하다가 가족 하나가 걸리면 차라리 동시에 모두 걸리는 편이 낫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조심한다고 했다가 오히려 순차적으로 확진되어 고통의 길이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조심해서 릴레이 확진이 안 일어나면 더 좋았겠지만. 또 겪어보니, 가족 확진의 경우엔 격리해제가 되었더라도 며칠은 지켜보는 게 나을 것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같다
 
코로나는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 같다,
 코로나는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 같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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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보다가 확진자가 천만 명이 넘었다는 기사에 눈이 멈췄다. 다섯 명 중 한 명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리였다. 주변에 안 걸린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긴 많았다.

코로나에 걸린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후유증이 걱정되었다. 아내, 아들, 딸 모두 자가 격리가 해제되었음에도 아직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평소 기관지가 좋지 못한 아들은 기침이 끊이지 않았고, 위가 약한 아내는 독한 약 때문인지 속이 좋지 못해 계속 병원에 다니고 있다. 생각보다 후유증이 심각했다.

정말 언제쯤 끝이 나려나. 과연 그 끝이 있기는 한 것인가. 코로나에 걸렸어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고, 또 다른 변이인 스텔스 오미크론이 확산세라는 우울한 이야기만 들려왔다.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흐르길 바랄 뿐이다. 이 고통스러운 시기가 지나고 오롯이 일상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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