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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포리 앞 바다는 물살이 셉니다. 밀물이 져서 바닷물이 밀려들어올 때면 바다는 온통 뒤척이며 을러댑니다. 물살이 이리도 셌으니 바다를 메워 땅을 넓힐 때도 메울 생각을 못했을 테지요.

원래의 강화도는 지금처럼 평야가 넓지 않았어요. 고려 시대 때부터 조선 말엽까지 바다를 메워 땅을 넓히는 간척을 해서 지금의 강화도가 되었답니다. 그러나 외포리 앞 바다는 메우지 못했어요. 석모도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서로 연결하지 못했습니다. 바다가 깊기도 했지만 물살이 세어서 막지 못했어요.

석모수로를 지키는 돈대들

석모도와 강화도 사이를 흐르는 바다는 '석모수로'라는 이름이 붙어있어요. 석모수로는 강화도 서쪽 해안과 석모도 동쪽 해안 사이에 있는 수로로 'S'자로 크게 굽어 있습니다. 그곳은 조선시대 삼남(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목 중 하나였으며, 교동도 앞에서 양서(황해도와 평안도) 해로와 합쳐져 서울의 양화나루까지 이어졌습니다.
 
석모수로의 돈대들
 석모수로의 돈대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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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수로는 강화 남쪽 해안에 비해 수심이 깊어 썰물 때에도 배를 띄울 수 있었습니다. 그곳 일대의 포구 근처에 돈대가 많이 배치되었는데 이는 나루나 포구가 적의 상륙 지점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었겠지요.

삼암돈대는 석모수로를 지키는 돈대 중의 하나입니다. 석모수로를 지키는 돈대는 모두 9개가 있었는데 '인화보' 관할 아래 있던 돈대들과 '정포보' 관할의 돈대가 석모수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삼암돈대는 건평, 석각, 굴암돈대와 함께 '정포보'에 속해 있었어요.

숙종, 48개 돈대를 만들다

1678년(숙종 4년)에 병조판서 김석주의 건의로 요충지인 강화도에 방어시설물인 돈대를 쌓기로 합니다. 그해 12월부터 석수(石手) 400여 명이 강화도로 와서 돌을 깨고 다듬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 다음 해(1679) 3월 초에 조정에서는 함경도와 황해도 그리고 강원도의 승군(僧軍) 8000여 명과 어영군 4300여 명을 강화도로 보내 돈대 쌓기에 돌입합니다. 그 외에도 일을 돕는 역군과 경석수와 제도석수 총 1100여 명 등, 수많은 인력이 동원되어 80여 일 만에 48개의 돈대를 쌓았습니다.  
  
삼암돈대.
 삼암돈대.
ⓒ 한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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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암돈대
 삼암돈대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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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개의 돈대를 강화도에 급하게 축조한 까닭은 도성인 한양을 수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한양으로 들어서는 길목인 강화를 철저하게 보호하고 방비할 필요성이 있어 돈대를 쌓은 것이지요. 강화도는 수도 방어체제의 제일선이었습니다.

삼암돈대도 그때 만들었습니다. 석모수로를 지키는 돈대 중의 하나인 삼암돈대는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산 223-4번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북쪽으로 1.2킬로미터 거리에 석각돈대가 있고 남쪽으로 1.5킬로미터 거리에 망양돈대가 있습니다.

원형이 잘 보존된 삼암돈대

삼암돈대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형태는 둥근 원 모양이며 둘레는 약 121m입니다. 바다 쪽으로 향한 성벽에 4개의 포대가 있으며 돈대 안 마당에 고인 물을 빼내는 석누조(石漏槽)가 성벽에 따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누조는 돌에 홈을 파서 구유처럼 만들어 성벽에 끼워넣고 물이 그쪽으로 흘러내리도록 한 배수장치입니다.

이 누조는 토압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여 석축을 보호했습니다. 이러한 돌 누조는 여타의 돈대들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시설로 54개 돈대 중에서 건평돈대와 굴암돈대 그리고 삼암돈대에서만 볼 수 있답니다.
 
돈대 안에 고인 물을 빼내는 장치인 '석누조'.
 돈대 안에 고인 물을 빼내는 장치인 "석누조".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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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암돈대 성벽 위 여장의 흔적
 삼암돈대 성벽 위 여장의 흔적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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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암돈대는 미루지 돈대와 함께 원형(原形)을 가장 많이 간직한 돈대로 평가됩니다. 1995년에 돈대의 문 주변을 일부 보수한 것을 제외하고는 원래 모습이 잘 남아 있습니다. 특히 서남쪽의 벽과 북쪽 벽의 위쪽에 요철(凹凸) 형태의 여장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주목됩니다. 

여장(女牆)은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이 뒤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거나 합니다. 삼암돈대에는 얇고 넓적한 돌을 켜켜이 쌓아 만든 여장이 55개나 있었다고 기록에는 전하지만 현재는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돈대에서 치성을 드리다니

이렇게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삼암돈대를 훼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삼암돈대에는 대포를 설치해놓던 포대가 4개 있는데, 그곳에 누군가가 불을 질렀습니다. 포대 안 석벽이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고 재도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포대에는 포탄을 보관하는 용도의 '이방(耳房)'이란 공간이 따로 있는데 그곳에도 나뭇가지를 쌓고 불을 피웠는지 석벽이며 바닥이 꺼멓게 그을려 있었습니다.

이방(耳房)에는 치성을 드린 흔적도 보였어요. 촛불을 켜두고 그 옆에 막걸리병과 두부 한 모를 놔두었습니다. 석벽에는 흰색 페인트로 글자까지 써놨습니다. 모년 모월 모일 아무개라고 써놓은 걸로 봐서 분명 치성을 드린 흔적입니다. 
 
포대 안에 불을 피운 흔적.
 포대 안에 불을 피운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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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 포대 석벽의 낙서.
 돈대 포대 석벽의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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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요. 지키고 가꿔야 할 문화재를 이렇게 훼손하다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삼암돈대는 바닷가 급경사지의 평지에 위치해 있습니다. 삼암돈대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면 약간의 평지가 있고 그 앞은 바다입니다. 

어디선가 "당당당당" 꽹과리 소리가 들려옵니다. 징소리도 들립니다. 그 소리를 따라가 보니 바닷가 한쪽에 자리를 깔고 비손을 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두 손을 비비며 연신 절을 합니다. 간소한 제물도 차려 놓았습니다.

외포리 망양돈대 아래 해안가 갯바위나 삼암돈대 아래 바닷가에는 치성을 드린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그런 일들이 벌어졌는지 갯바위가 온통 숯굴 같이 된 곳도 있습니다.
 
삼암돈대 아래 바닷가에서 치성을 올리고 있는 무속인.
 삼암돈대 아래 바닷가에서 치성을 올리고 있는 무속인.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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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포리 바닷가에서 치성을 드리고 있는 무속인들.
 외포리 바닷가에서 치성을 드리고 있는 무속인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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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초목에 정령이 있다고 믿고 기도를 올리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믿음의 세계는 각자 다 다르니 이것이 옳다 저것은 그르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만신들의 용왕 신에 대한 치성 역시 봐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돈대에 불을 놓고 제물을 진설하다니요. 문화유적에 이런 행위를 하다니, 실로 통탄치 않을 수 없습니다.

조상이 남긴 돈대, 잘 보존해야

조상이 남긴 문화 유적은 우리 모두가 지키고 가꿔야 할 대상입니다. 그곳을 개인의 신당처럼 사용하다니요.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54개 돈대 찾아 강화 한 바퀴' 회원들이 삼암돈대를 찾았습니다.
 "54개 돈대 찾아 강화 한 바퀴" 회원들이 삼암돈대를 찾았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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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이 역사를 말해준다는데, 돈대 역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말해줍니다. 돈대는 우리가 지키고 가꿔야 할 소중한 문화 유적입니다. 그런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무속인들이 돈대를 신당처럼 이용하는 처사에 분개하면서도 우리 역시 당당하지 못합니다. 우리도 돈대를 홀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대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삼암돈대입니다. 외포리에서 석모도로 가는 길 가에 있어 찾아가기에도 아주 좋습니다. 평지에 있어 노약자나 보행이 불편한 사람들도 편하게 구경할 수 있습니다.

꽃다지가 노랗게 꽃을 피운 삼암돈대에서 봄을 느껴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즐겨 찾아주는 게 바로 돈대를 위하는 길일 겁니다. 삼암돈대는 오늘도 묵묵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삼암돈대 기본 정보>

. 소재지 :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산223-4 
. 1999년 3월 29일 인천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 크기 및 모양 : 둥근 원 모양이며 둘레는 121m임. 
. 삼암돈대의 특이 사항 : 돈대의 원형이 잘 남아 있음. 배수장치인 돌로 만든 누조가 있고 얇고 넓적한 돌로 쌓은 여장의 흔적도 남아 있음.
. 근처 돈대 : 북쪽으로 석각돈대가 남쪽으로 망양돈대가 있음.
. 현재 상황 : 1995년 지표 조사후 정비, 보수함. 

덧붙이는 글 | '강화뉴스'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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