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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 카레이츠
 고려인, 카레이츠
ⓒ 큐리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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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침공으로 고난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을 걱정하다 문득, 그곳에 한국인들도 있을 텐데, 염려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인들뿐 아니라 '고려인(카레이츠)'들도 있다는 걸, 그리고 이들이 또다시 삶의 터전을 잃고 위기에 처했다는 걸, 보도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안타깝다.

사진작가 김진석은 2019년부터 이들 디아스포라 '고려인'들의 흔적을 쫓아 그들의 켜켜이 쌓인 희로애락의 역사를 사진집 <고려인, 카레이츠>에 담았다. 사진 속 인물들은 낯설고 슬픈 얼굴이라 지레짐작한 내 무지와 편견을 가볍게 무너뜨렸다. 그들은 어디서나 만나봄직한 친근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1937년 10월 어느 날, 연해주에 살고 있던 우리 민족 약 172,000명은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굉음을 내며 달리는 열차에,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화물칸에 몸을 실어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가 진행된 것이다. 당시 소련의 1937년 10월 25일 자 보고서에 의하면 고려인 총 36,442가구 171,781명이 이주를 마쳤다고 하면서, 이주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공화국으로 20,170가구 95,256명, 우즈베키스탄공화국으로 16,272가구 76,525명이 총 124편의 열차에 배치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강제 이주로 산산이 흩어진 '고려인'들을 찾아 나선 김진석은 프롤로그에서 '고려인'의 연원을 이렇게 전달하며 사진집을 열고 있다. 그는 11개국, 30여 개 도시에서 약 4천여 명의 '고려인'을 만나 사진기에 담았다.

그가 찾은 곳은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에서 동유럽의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에스토니아 그리고 러시아의 연해주와 사할린까지다. 지도를 펼치고 그가 찾은 곳을 더듬다 보니, 그 먼 거리에 아득해졌다. 이 아득히 먼 곳에 한민족의 뿌리를 가진 이들이 숨 쉬고 살아가며 삶을 꾸려왔다는 경이로운 사실에 절로 수굿해진다.

어디에서고 삶은 이어지고 있다

지금 포화가 끊이지 않는 전쟁 한복판의 우크라이나에, 이전에는 '고려인'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 2만여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그들의 조상은 아마도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위해 유배된 척박한 땅을 떠나 비옥한 대지를 품고 있는 우크라이나로 이주했을 것이다.

낯설고 물 설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큰 고난을 감내했을지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헌에서 만났던 앞선 '고려인'들이 말풍선을 달고 떠올랐다. 그중 먼저 떠오른 이는 주세죽이었다.

주세죽은 이념적인 이유로 이름과 공헌이 알려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나마도 그가 호명되는 방식은 박헌영의 아내로서다. 하지만 그를 박헌영의 아내로만 기억하는 것은 부당하다. 박헌영을 만나기 전 그는 이미 우뚝했던 독립운동가였고 여성운동가였기 때문이다.

결혼 후 박헌영이 조선공산당 검거로 수감되며 고초를 겪은 후 둘은 소련으로 탈출한다. 탈출 후 낯선 땅에서 딸을 출산하고 양육하면서도 독립운동과 세계 해방에 헌신했다. 하지만 시대의 격변 앞에 개인의 운명은 유리처럼 부서졌다.

그를 격동의 쓰나미가 휩쓸어 밀어낸 곳이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였다. 소련으로부터 일본의 첩자라는 의심을 받은 그는 그곳에서 혹독한 유형생활을 견뎌야 했다. 조선희의 소설 <세 여자> 중 일부는 그가 카자흐스탄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낸 불운한 삶을 실감나게 복원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로 명성이 드높았던 홍범도 역시 고려인 강제 이주라는 엄혹한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민족의 영웅이었던 그가 추방된 카자흐스탄에서 극장 수위로 생을 마감한 비통한 역사는 수많은 고려인들이 겪었을 간난신고를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지금 카자흐스탄엔 전체 인구의 0.6퍼센트인 약 8만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놀랍게도 "이들의 경제력이 카자흐스탄 경제력의 22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폭압적 일제시대를 거쳐 모든 것이 무너지는 전쟁의 참화를 겪고도 다시 일어선 한민족의 정신이 그들에게서도 발현된 것이리라.

그렇다고 모든 이주지에서 모든 '고려인'이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소수민족인 이주민이 차별과 냉대 혹은 혐오를 뚫고 굳건한 삶을 세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한국인이 이주민을 대하는 차별적 태도와 이를 받아내고 삶을 일구어야 하는 이주민을 생각해 보라).

종종 소수의 행운이 과하게 대표 되는 착시현상은 다수의 고난과 역경을 지우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모든 '고려인'이 성공했다고도 불행했다고도 단정하지 않으면서, '자기 앞의 생'을 살아낸 각각의 '고려인'을 한 인간으로 복원하고 이해하는 일은 뜻깊다. 그들 모두 유의미한 인류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려인, 카레이츠> 속 사진.
 <고려인, 카레이츠> 속 사진.
ⓒ 김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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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에서 마주한 '고려인'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거나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았을 삶을 추측하게 한다. 한국에 직접적인 인연의 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3세 4세로 이어져 이제 그 DNA의 존재조차 희미해질 만도 하건만, 작가가 만난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고려인'의 후예로 정체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 '고려인'을 발굴하거나 대접해 주지 않은 고국에 대해 섭섭함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만난 고려인들은 그를 따뜻하게 환대했다. 이주지에서 당한 설움을 딛고 타인을 향해 환대로 나아가는 인류애는 자괴감과 열등감을 탈각한 웅숭깊은 정신만이 보일 수 있는 이타성이다.

비록 모국의 말은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히 잊었어도, 자신의 뿌리가 '고려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존경심이 샘솟는다. 동시에, 망각으로 삶의 시련과 고통을 통과하려는 인간의 본능이 어떻게 이들에게선 잊지 않음으로 변이되어 보존될 수 있었는지, 물음표도 커졌다.

사진들 속엔 누가 봐도 한민족의 후손임을 짐작하게 생긴 '고려인'들도 있지만, 혼혈 '고려인'도 적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자신의 뿌리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는 대신, 한국말을 배우거나 한국의 고유문화인 민속춤이나 노래를 연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잠시도 듣기 어려워하는 전통 음악이나 춤을 익히고 즐기는 그들의 모습은 아이러니한 격차를 느끼게 한다.

나는, 우리는 누구입니까 

작가가 만난 '고려인'들 중 일부는 자식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한민족이라면 예외 없는 교육열은 이주지의 고달픈 삶에서도 자식들을 고등교육까지 마치게 했다. 아제르바이잔의 '고려인' 장 리마 할머니는 아들 둘이 모두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좋은 대학을 졸업한 아들들이 부푼 꿈을 안고 도착한 한국은 기대와 전혀 달랐을 것이다.

학벌과 무관한 일은 물론이고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굳은 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아들들의 삶을 보며, 할머니는 말을 아꼈지만, '고려인'을 하대하는 고국에 서운함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강인한 표정에 꾹 다문 입, 독거의 고독이 주름 속에 펴져있는 그의 흑백 사진엔, 아제르바이잔인이면서 '고려인'으로 살아낸 이중적 정체성이 복잡하게 스며있다.

여러 조건을 면밀히 따져 자격을 묻고 입국과 영주를 허용한 '고려인'에게도 한국에서의 삶은 결코 녹록지 않을 것이다. 각박한 한국인들에게 '고려인'이라는 호명은, 풍전등화의 조국과 풍찬노숙으로 운명을 같이 했던 수많은 애국자의 후손임을 잊게 하는, 그저 좀 다른 부류를 지칭하는 생경한 네이밍이었을지 모른다.

한 민족이었으나 역사의 광풍에 휘몰아쳐 낯선 곳에 던져졌던 '고려인'들. 그들은 버림받음으로 사무치는 원망을 오히려 그리움으로 치환해 '고려인'이라는 세 글자를 가슴속에 문신처럼 새겨 넣고 엄혹한 시절을 버텨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이주민이라는 지위로 강등시킨 것은 아닐까.

파주에 살고 있는 '사할린 한인'("사할린의 동포들은 자신들은 '고려인'과 다르다고 말"한다. 일제 강제 징용으로 "강제로 떠나왔고 돌아갈 수 없었던 이들은 국적을 가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고 또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박승의는 그의 책 <박승의 나는 누구입니까>에서 자신의 정체를 묻는다.

그는 부모님이 꿈에도 그리던 고국에 그들의 꿈과 한을 대리하기 위해 돌아왔지만, 온전한 한국인이 되기 어려웠다. 어디에도 이물감 없이 속할 수 없고, 어디에도 적극적으로 포섭되지 않는 경계인으로서 그가 서있는 지형은 늘 불완전했다. "머리가 터질 지경으로 혼란스러운" 경계선에 선 채 그는 번번이 묻는다. '나는 누구입니까.'

그가 질문의 방향을 돌려 우리에게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까. 그들이 타진하고 있는 간절한 신호를 우리는 번번이 응답 없음으로 일관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고려인, 카레이츠> 속 수많은 얼굴들도 어쩌면,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시합니다.


고려인, 카레이츠 - 100년을 거슬러 만난 고려인

김진석 (지은이), 큐리어스(Qrious)(2021)


태그:#<고려인, 카레이츠>, #김진석 작가, #고려인, #디아스포라,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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