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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시절 수탈의 첨병에 섰던 '조선신탁주식회사'가 사적지인 충북 청주시 산성동 상당산성 내 토지 9필지를 현재까지 소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충북인뉴스>가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구 토지대장을 전수 조사한 결과 조선신탁주식회사는 산성동 138번지를 비롯해 총 9필지 면적 7513㎡를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시지가를 적용해 평가한 토지금액은 5억8000여만 원에 이른다.

소유자로 등재된 조선신탁주식회사는 1932년 조선총독부와 조선의 매판 자본가들이 합작해 설립한 신탁회사다.

영업 분야는 금전신탁, 토지 등 부동산 신탁, 유가증권 신탁 등 세 부분이다.

조선신탁주식회사에 참여한 대표적인 인물은 민영휘다. 그는 한일병합의 공로를 인정받아 일제로부터 귀족 신분인 '자작'을 수여받았고 은사금까지 받았다.

민영휘의 아들 민대식도 조선신탁주식회사의 취체(대표이사)역을 맡았다.

조선신탁주식회사 명의로 확인된 토지 중 7필지의 원 소유자는 민영휘의 후처 안유풍으로 확인됐다. 민영휘는 부인 외에도 해주마마라 불린 안유풍과 평양마마 등 5명의 부인을 거느린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토지는 잠시나마 국고로 환수되기도 했다. 산성동 114번지, 138번지, 142번지 등 세필지는 1978년과 1980년에 걸쳐 대한민국 재무부로 소유권이 옮겨졌다.

1986년 해당 토지는 다시 조선신탁주시회사 소유로 환원된다.

환원된 이유는 법원 판결. 1985년 5월 서울민사지방법원은 의해 소유권 이전등기가 무효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친일파 재산, 왜 환수 안됐나?

2007년 8월 13일,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원회)는 민영휘 후손들의 소유한 토지 일부에 대한 환수 결정을 발표했다.

조사위원회는 "민영휘 후손 명의로 남아있는 총 76필지, 55만㎡에 대해서 조사개시결정을 하고 이중 청주상당산성 일부를 포함한 36필지 31만7362㎡, 시가 57억 원 상당의 토지에 대해 국가 귀속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향후 민영휘 후손 명의로 사정받은 토지 등도 추적해, 친일 재산 여부를 가려 국가 귀속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조사위원회는 남아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 채 제1기 활동이 종료됐다.

2007년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귀속결정을 한 토지는 어떤 것일까? 대부분 민영휘 본인 명의로 사정된 토지가 대부분이다. 반면 민영휘 본인 명의가 아닌 후손들의 명의로 사정된 토지들은 일부만 포함됐다.

여기서 사정(査定)이란 토지등의 소유관계를 조사해 토지등기부 등본 등에 대해 기록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충북인뉴스>가 입수한 결정문을 살펴본 결과 국가귀속결정이 난 토지는 대부분 민영휘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가 된 토지였다.

민영휘 후손이 소유한 토지 중 제일 먼저 국가귀속 결정이 나온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170번지(562㎡)의 경우 최초 소유자는 민영휘였다. 민영휘는 이후 조선신탁주식회사에 신탁을 맡겼다.

안유풍은 무슨 돈으로 땅을 샀을까?

민영휘 후손이 소유한 토지 중 국가 귀속 결정이 난 것과 나지 않은 것의 가장 큰 차이는 최초 사정자가 누구였나는 것.

그렇다면 안유풍이 소유한 토지 매입대금의 출처는 어딜까? 만약 안유풍이 실소유자가 아니라 민영휘의 자금에서 나왔다면 친일재산조사위원회의 판단은 달라졌을까?
 
"(민영휘는) 축재(蓄財)에 비상한 노력을 다해 한일합병 당시에 벌서 년 수입 소작료 벼 5만여 석이나 되는 전답 외에 경성부 내에 있는 토지가 가옥으로서 시가 1백만원 이상에 달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또 자본금 1백만원의 한일은행(韓一 銀行)을 설립한 외에 일한합병의 공에 의하야 은사금 수십만원을 받았는데 일찌기 통감부 재판소(統監府 裁判所)가 설치되자 민씨 가의 재산은 관권을 이용하야 불법한 축재를 한 것이라고 세평이 험악할 뿐 아니라 재산을 반환하여 달라고 하는 사람까지 다수 있으므로 민영휘는 일체의 재산을 자기의 소유 명의로 함을 피하고자 하였다." - 1938년 10월 1일, 잡지 <삼천리> 제10권 10호 '민씨가 비극, 일천만원 골육소(송)' 기사 중에서)

안유풍 소유의 토지가 사실상 민영휘가 소유했을 가능성을 입증하는 실마리는 다름 아닌 민영휘의 장자인 민형식의 입에서 나온다.

1938년 10월 1일 잡지 <삼천리>는 민영휘의 장자 민형식이 그의 동생 민대식 등을 상대로 제기한 유산상속 소송관련 내용을 보도한다.

기사 제목은 '민씨가 비극, 일천만원 골육소, 몰후 二년 민영휘가에 슬픔의 싸홈은 열여, 구월이십일 제 일회재판이 서울서 열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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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따르면 민영휘의 큰아들 민형식은 아버지의 재산관리에 대해서 "일체의 재산을 자기의 소유 명의로 피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삼천리는 민형식이 동생들을 상대로 낸 소송을 내용을 소개한다. 기사에 따르면 민형식은 소장에서 "원고(민영휘의 장남 민형식)는 원래 관직에 있으면서도 청렴을 뜻으로 하고 전혀 서도(書道)와 문학을 수학했고 이에 반하야 피고(민영휘의 차남 등)들은 당초부터 은행의 업무 기타 재게에 종사를 하고 있었던 관계상 조선토지조사령에 의한 토지신고를 할 때 부동산에 대하야는 거의 다 피고들에게 신탁하고 동인 명의로 신고를 해 사정(査定)을 받었으며 은행의 주식도 피고들의 명의로 신탁하고 또 선대 자신이 총재산을 관리하고 수익한 금액으로써 이후 매수한 부동산도 전부 피고 등과 피고 대식의 장남 병수(丙壽), 이남 병도(丙燾) 등에게 신탁"했다고 주장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민영휘는 자신이 소유한 토지 상당 부분을 아들이나 주변인 등의 이름으로 사정을 받았고, 신탁해 관리했다는 것이다.

장남도 인정한 민영휘의 재산 차명관리

큰아들 민형식 조차 민영휘의 재산축적은 "관권을 이용해 불법한 축재를 한 것이라고 세평이 험악"하다고 지적했다. 또 "재산을 반환해 달라고 하는 사람까지 다수 있으므로 민영휘는 일체의 재산을 자기의 소유 명의로 함을 피하고자 했다"고 꼬집었다.

민형식의 지적대로 민영휘가 소유한 재산을 반환해 달라는 소송과 관련한 기사는 차고 넘쳐난다.

친일파 민영휘 일가가 재산을 안유풍이나 직계자손 등 타인 명의로 소유한 흔적은 많다. 하지만 타인명의로 은닉한 재산은 현재까지 국가에 귀속되지 못한 상태.

그 이유는 단순하다. 2007년 친일파재산조사위원회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위원회가 민영휘의 친일 재산으로 조사할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었다.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민영휘가 자신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이 조사대상 재산이기 때문이다."

민영휘가 안유풍이나 그의 아들 등 타인의 명의로 둔 재산은 애시당초 조사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청주의 상징이라 할수 있는 상당산성. 이곳에 '조선신탁주식회사' 명의로 위장된 민영휘의 재산이 오늘까지 지속되는 이유다.

한편, <충북인뉴스>는 민영휘와 그 일가가 조선신탁주식회사로 신탁해 현재까지 소유하고 있는 토지가 산성동 일대 뿐만 아니라 청주시 일원에 존재하는 것을 확인했다. 추가 조사를 통해 그들이 소유한 토지 내역을 공개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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