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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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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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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지금부터 이십 년이나 삼십 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1991년 11월, 녹색평론 발행인 고 김종철 선생이 녹색평론 창간호에서 제기한 물음이다. 선생은 근대문명의 야만적 폭력에서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협동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상부상조의 사회관계를 회복하고, 하늘과 땅의 이치에 따르는 농업중심의 경제생활을 창조적으로 복구하는 것과 같은 생태학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조직하는 일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했다.

그 후 2020년 6월에 선생이 돌아가시고 2021년 11월 창간 30주년 기념호를 끝으로 휴재하기까지 선생과 녹색평론은 비타협적으로 근대 문명을 비판하면서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고 공정하고 평화로운 사회의 구축, 이를 위한 민주주의의 심화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세계는 선생과 녹색평론의 절박한 외침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우리는 근대화를 위해, 선진국을 따라 잡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고 더 많은 개발과 경제성장만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 결과 부는 극소수에게 편중되었고, 승자독식과 각자도생의 초경쟁사회에서 대다수가 패자가 되어, 일상화된 재난으로서의 기후위기와 팬데믹의 시대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혁명적 변화 없이는 이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날 길이 없겠지만,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오히려 새로 들어설 정부는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원전 비중을 늘리고 4대강 사업도 재개하겠다고 하니 고인의 탄식이 들려오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녹색평론 구독자로서 매호마다 선생의 여는 글을 읽어왔지만 선생의 문학가로서의 면모는 잘 몰랐고, 어떻게 문학이 아닌 길로 전환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예전에 썼던 문학평론들을 모은 <대지의 상상력 삶·생명의 옹호자들에 관한 에세이>는 작품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과 해설이라는 좁은 의미의 문학평론이 아닌, 인문적 지성으로의 문학비평이자 근대 문명에 대한 치열한 비판서이다. 

근대와 맞짱 뜬 사람들

윌리엄 블레이크, 찰스 디킨스, 매슈 아놀드, F.R. 리비스, 프란츠 파농, 리처드 라이트, 이시무레 미치코. 선생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들로 모두 "'근대'의 어둠에 맞서서 '삶-생명'을 근원적으로 옹호하는 일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다.

유럽의 부르주아 세력은 자유·평등·우애의 이념으로 봉건세력과의 투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평등사회를 위한 혁명적 열망을 표출한 광범위한 민중과 함께 했지만, 자신들이 지배계급이 되자 보편적 인간해방이라는 이상을 배반하고 노동자·민중을 탄압했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자기배반으로 시민계급이 주도한 산업문명과 경제체제가 확대될수록 인간적 위기와 사회적 모순은 증대됐고, 인간의 자율성이 유린당하고 인간적 희생이 강요되는 체제가 굳건해진 것이다. 이런 상황과 역사적 조건에서 블레이크, 디킨스, 아놀드, 리비스는 각자 시, 소설, 평론으로 민중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문명의 구조를 꿰뚫어보고, 물질적 발전이라는 척도에 매달려온 근대 산업문명이 '삶의 의미의 상실'이라는 삶의 근원적 위기이자 재난을 낳는다고 비판했다.

근대 문명의 폐해는 유럽 대륙에 한정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식민지를 필요로 했고 식민 지배는 인종주의로 정당화됐다. 카리브해의 섬 마르티니크 원주민 중산층 아들로 태어나 프랑스식 교육을 받고, 프랑스 군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도 한 프란츠 파농은, 정신과 의사로서 보장된 유복한 삶을 포기하고 알제리혁명 전사로 투신하면서, 피지배자의 지배자에 대한 동일시 욕망의 내면화, 자신의 존재를 지배자가 규정하는 체제에서 일으키는 피지배자의 정신분열을 폭로하고 분석했다.

나아가 그는 백인 중산층 남성으로 대변되는 기존 유럽의 인본주의의 대안으로 백인과 흑인, 유럽과 아프리카, 지식인과 민중,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남성과 여성 등의 모든 인간이 이항대립적인 지배와 예속의 틀에서 벗어나 동등한 세계주의적 시민이 되는 세상을 의미하는 '새로운 인본주의'를 주창했다.

흑인 작가인 리처드 라이트는 흑인으로서 겪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체험과 운명을 미국 흑인 전체의 운명 가운데서 보고, 또 그것을 세계 도처의 억압받는 사람들의 운명의 일부로서 파악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제3세계 문학의 가능성을 열었다.

근대를 '원죄'로 규정한 일본의 작가 미시무레 미치코는 일본질소비료회사가 수십 년간 산업폐기물을 바다에 유출한 결과 미나마타 주민들이 겪게 된 끔찍한 재앙을 소재로 고해정토 3부작을 써, 돈을 위해 생명과 자연을 죽이는 근대 문명의 잔혹한 본질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은 단지 환경재앙을 폭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치유 불가한 병고의 고통과 절망 한가운데 당연시했던 삶을 돌아보며, 자신들이 누려온 토착적 삶이야말로 지복의 삶이었다는 깨달음을 얻는, 지극히 순결한 영혼의 정화를 경험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선생은 이처럼 자신이 처한 구체적 현실의 제약 하에서도 인간적 삶의 가능성과 한계를 핵심적으로 규정하는 본질적 요소와 부차적 요소를 구별해내고, 자기 시대의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인간문제를 강렬하게 반영한 리얼리즘 작가들을 옹호한다.
 
<대지의 상상력> 책 앞표지
 <대지의 상상력> 책 앞표지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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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문학은 몽상의 기록이자, 일종의 기도(祈禱)

그러나 문학의 위대한 전통은 가장 잔인하고 야만적인 형태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인 신자유주와 극단적인 가치의 상대화와 허무주의로 전락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인해 망실됐다. 선생은 책 출간 후 인터뷰에서 역사적 실천행위로서의 문학을 하는 작가, 전 생애를 걸고 자본주의 문명에 맞서 싸우는 작가를 볼 수 없다, 작가들이 너무 작아진 것 같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문학이 우리 삶과 문명을 총체적으로 고찰하고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선생이 소개하는 것처럼 적지 않은 작가들이 산업혁명기 당시부터 자본주의 문명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폭로하고 저항했음에도,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로 옷을 갈아입어 득세하고 기후변화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조차 새로운 이윤창출의 기회로 삼으며 멈출 줄 모르는 것을 보면, 문학이 가진 힘이란 너무나 미약한 것이 아닌가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비참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꿈을 현실화하려는 꿈을 간절히 꾸는 법"이기에 "모든 진정한 문학은 몽상의 기록이자, 일종의 기도(祈禱)"라 할 수 있다는 선생의 말, "문학은 '상상'을 통해 구현되고, 현실은 그 '상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문학은 인간과 사회 제도를 아주 서서히 바꾸는 데 기여한다"는 또 다른 문학가의 말(조현행, '소설 재미있게 읽는 법')을 믿는(믿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과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것으로 문학의 쓸모를 한번 경험해 보면 어떨까.

[영상] 류변의 서재 5회 보기 https://youtu.be/eQEIAYURAm8

大地의 상상력 - 삶-생명의 옹호자들에 관한 에세이

김종철 (지은이), 녹색평론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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