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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딘가 남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서른에야 ADHD라는 병을 처음 알았고, 서른여덟에 성인 ADHD 확진을 받았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병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람들 각자가 품고 사는 보이지 않는 아픔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와 직장을 거친 후 자신에게 맞는 생활을 찾은 지금, 저의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보이지 않는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분들의 삶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손을 흔들어 봅니다.[편집자말]
[기사 수정 : 2022년 11월 15일 오후 3시 53분] 

이토 아사의 책 <기억하는 몸>에는 '약년성 알츠하이머형 치매'를 앓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자신이 뭔가 잊거나 길을 헤매는 방식이 남들과 다르다고 느끼지만,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한다. '다들 이야기하는 것과 난 좀 다른데…' 하고 생각할 뿐이다.

치매의 고통은 모르지만, '그런 게 아닌데 어떻게 설명하지…' 하는 마음은 너무나 잘 안다. ADHD 증상만 나열하면 오해와 선입견으로 이어지기 쉬워 차라리 추상적인 느낌을 설명하는 게 나았다. 하지만 24시간 여러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펄떡이는 느낌, 매 순간 뇌가 '후달리는' 이 감각을 딱 꼬집어 설명할 언어는 아직도 못 찾았다(연재 2화 참조).

친구에게 직장 그만둔 썰을 풀다가 'ADHD가 실존하는가'를 놓고 30분간 옥신각신한 적도 있다. 이 병이 생소했던 내 외국인 친구는 ADHD는 한국 사회와 의료계가 만든 병일 거라고 주장했다. 답답하고 서운한 건 제쳐두고, 머리가 아팠다. 이 감각을 어떻게 '설득'한다? 난 사는 게 힘들다고 억지 핑계를 찾는 게 아닌데. 질병 마케팅에 속아 넘어간 것도 아닌데. 

성공적인 병밍아웃을 위한 요약
 
결국 친구는 내 말에 수긍했다. ‘본래 병의 범위는 사회와 시대에 영향을 받고, 당대를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큰 사람이라면 병으로 보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설명으로 증명 아닌 증명을 할 수 있었다.
▲ 갑론을박 결국 친구는 내 말에 수긍했다. ‘본래 병의 범위는 사회와 시대에 영향을 받고, 당대를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큰 사람이라면 병으로 보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설명으로 증명 아닌 증명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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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는 한국에만 있는 병이 아니다. ADHD의 세계 평균 유병률은 5% 정도로 추정되고, 국내에서는 5.9%~8.5% 정도로 보고된다. 진단은 문화‧경제적으로 영향을 받기에 나라마다 환자 수에 차이가 크지만, 중요한 건 ADHD라는 특성이 실존한다는 것이다.

최근 진단이 급증했다고 ADHD 자체를 '정신과와 제약회사의 신상품'으로 보는 건 무리다. 1798년부터 ADHD로 보이는 임상사례들이 보고되어 왔다. 1902년부터 병으로 규정되었고 1966년 이후 50여 년 동안 2만여 편 이상의 ADHD 관련 연구가 축적되었다. 현대에 질병이 상품화되고 신약 판매가 진단에 영향을 미친다 하더라도, ADHD의 특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늘 있었다.

ADHD 관련 정보에서 이런 댓글들을 자주 본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하면 될 일인데 꼭 많은 사람을 환자나 장애인으로 만들어야 하느냐". 이 말은 요즘 대두된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 개념과 통한다. 자폐와 지적 스펙트럼 등을 신경발달과정상의 차이로 여겨 정상의 범주로 보는 관점이다.

이 생각이 반갑기도 하다. 다양성 사회를 꿈꾸는 동지들이 이렇게 많다니! 하지만 한 정신장애를 문화 관련 증후군으로 여긴다고 해서 생물‧신경학적 원인까지 배제하는 건 옳지 않다. 특히 이 때문에 치료 자체를 비난한다면 오히려 당사자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일이 된다. 병명이 없던 때 각자도생하던 사람들은 과연 살 만했을까?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과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ADHD가 있는 경우의 자살시도 확률은 그렇지 않은 경우의 7배에 이른다. 사회 분위기가 유연해지는 것만으로 증상이 해결되기 어렵고, 그럴 수 있다 해도 환자들은 그 '언젠가'까지 기다릴 수 없다. 문화 개선도 치료와 같이 가야 한다.

나는 사람들의 반응에서 '병리화에 대한 거부감'을 본다. ADHD 자녀를 둔 부모의 경우라면 아동을 난치병 환자로 규정하고 약물을 쓴다는 결심이 간단할 리 없다. 그런데 자신이나 주변의 일이 아님에도 무턱대고 거부감을 표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반응이 질병과 장애를 '기준 미달'로 보는 사회 시각을 담고 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자신의 의도와 반대로 분리와 차별에 가까워지는 건 아닐까. 약물치료가 필수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질환이나 장애, 증후군 등의 분류도 비전문가이자 당사자인 내 입장에선 공들여 초점을 맞출 문제가 아니다. 당사자들이 바라는 것은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다.

ADHD가 엄살 같은 이유

병을 밝히고 흔히 마주하는 반응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 'ADHD라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아직 강한 것 같다. 위로의 뜻일 때는 고맙지만 진단을 부정하는 듯한 말에는 힘이 빠진다. 많은 ADHD인이 경험과 판단을 오래도록 부정당해 왔고 어렵게 병명을 찾는데, 그 후 병을 비전문가에게 검증해야 하는 부담 속에 또다시 던져진다.

이해받지 못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나도 조현병이나 시청각장애처럼 내게 없는 현상의 감각을 모른다. 앞서 언급한 저자 이토 아사는 이를 '몸의 고유성'으로 표현한다. "'A씨의 몸'은 실제 A씨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는 본인이 아니면 'A씨'의 몸으로 살아가는 일'이 어떤 감각인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ADHD 증상이 특이한 점은, 환청이나 기억상실 등과 달리 누구나 한 번 이상 겪어본 것들이라는 거다. 그러니 "그 정도로 뭘?"이라는 생각으로 비ADHD와 ADHD의 차이에 의구심을 갖기 쉽다.

ADHD는 집중을 더 잘하고 싶어 하는 완벽주의가 아니다.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의 기능 이상은 사회성과 학습‧운동‧인지 기능, 수면 등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문제를 알고 적절히 관리하면 강점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부정적 자기상(자기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고 느끼는 내용)으로 삶이 망가지기 쉽다. 

그래서 병식은 중요하다. 병을 자각하고 다스리려는 의지를 갖는 건 본인뿐 아니라 주변과 사회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실업률, 범죄율, 자살률을 낮추는 일이니 애국이라 해도 좋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ADHD를 가진 사람들이 증상보다 사람들의 몰이해로 더 힘들어한다고 말한다. 만일 주변 사람에게서 ADHD가 있다는 얘길 듣는다면, 그저 찬찬히 들어주시기 바란다. 성급히 가설을 내밀기보다 애써온 과정을 봐주면 좋을 것이다.

ADHD는 '패션 정신병'일까

ADHD를 '패션 정신병'이라 부르는 이들도 많다. 마치 패션 상품을 몸에 걸치듯, 관심 받거나 자기합리화하는 도구로 병을 이용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태도를 마주할 땐 '아플 자격'을 발급받기 위해 수많은 면접관에게 심사받는 기분이다. 항상 이상해 보이지 않으려 애써왔는데, 병을 드러낼 때는 거꾸로 모두가 납득할 만큼 ADHD다움을 보여야 할 것만 같다.

나도 <체르노빌의 목소리> 같은 책들을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이 이렇게 온갖 고통과 부조리로 가득한데, 난 외상 하나 없는 내 아픔을 붙들고 뭘 하는 걸까? 그래도 분명한 건, 내가 아픔과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아픔들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ADHD라는 병에는 당사자의 언어가 부족하다.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ADHD가 '세상 그 어떤 병보다 많은 오해와 편견에 둘러싸인 병'이라 표현했다. 서로가 다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그 '무지'를 응시해준다면, 다른 누군가도 당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들어주지 않을까?
▲ 판단하기 전에 관심 갖기 ADHD라는 병에는 당사자의 언어가 부족하다.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ADHD가 '세상 그 어떤 병보다 많은 오해와 편견에 둘러싸인 병'이라 표현했다. 서로가 다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그 '무지'를 응시해준다면, 다른 누군가도 당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들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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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마치 남의 고통을 측정하는 저울을 가진 듯 행동하게 되는 건 왜일까. 짐작되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이의 사소해 보이는 고통을 인정하여 자기 고통의 가치가 내려갈까 하는 불안이다. 자세히 알아보기를 꺼리고 빠르게 결론짓는 건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각자가 겪어온 것들의 가치는 남이 빼앗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부정당한다고 해서 ADHD 당사자들의 경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더딘 듯해도 사회는 억눌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진단명 없이도 누구나 삶의 이야기를 터놓고, 또 들어주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비교나 불행배틀에 매달릴 필요 없도록.

유연함과 단호함

병 얘기를 꺼내려 하면 긴장된다. 자칫하면 병을 방패로 쓰는 것처럼 보이거나 포용에 대한 부담만 줄 수 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든, 상대가 내 얘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이젠 얘기해야겠다'고 느낄 때도, ADHD 특유의 충동성에 휩쓸리지 않도록 자제할 필요도 있다. 때로는 내 특징으로서 일부 증상만 언급하거나, 문제가 되는 어려움을 우회적으로 설명하는 게 낫다. 낙인효과도 각오해야 하니 공적인 관계에서는 더욱 까다로운 문제다.

하지만 한 손으로 유연함을 건네더라도 다른 한 손으로는 단호함을 쥐고 싶다. 그건 이 병이 나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라는 믿음이다. 숨기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고, 그래서 더 숨겨야 하는 일이 된다. 책과 인터뷰, 북토크와 강의 등에서 병을 가시화하기 위해 ADHD라는 낯선 용어를 내미는 분들이 감사하다. 나도 포크 하나 들고서 밭갈이를 거드는 중이다. 

이참에 내 병을 좀 다른 의미의 '패션'으로 삼아보면 어떨까? 다름을 개성으로 삼아 과감히 드러낸다는 뜻으로. ADHD가 비록 걸쳤다 벗었다 할 수 있는 녀석은 아니지만, 몸에 새겨진 괴상하고 아름다운 무늬로 자랑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 분류 문제에 대하여:
ADHD에 대해서는 '정신질환'과 '정신장애'라는 용어가 두루 쓰이는데, 전전두엽, 기저핵, 소뇌의 구조 및 기능 차이와 신경전달물질 불균형이 전 생애에 걸쳐 불편을 주므로 장애로도 봅니다. 한편 ‘disorder'가 ‘장애’로 번역되어 ‘우울장애’나 ‘불안장애’와 같이 경한 의미로 쓰인다고 보기도 합니다. 20여 년간 신경발달장애를 연구해온 반건호 교수는 이렇게 썼습니다. "뇌에서의 신경발달은 사람마다 다르게 진행되는 것은 맞지만, 그중 발달과정에 문제가 생긴 부분이 장애 수준의 불편함을 주기 때문에 ADHD를 병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편 후쿠시마학원대학의 호시노 요시히코 교수는 ‘장애’라고 할 때 중증 장애를 떠올리는 만큼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도록 ADHD와 아스퍼거증후군을 ‘발달불균형증후군’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합니다.

* 참고 자료
1) ADHD의 역사와 원인, 유병률, 분류 관련: <정신의학신문> "ADHD의 역사(1) 하나의 병명으로 자리잡게 되기까지"(2019.05.01.) "교사를 위한 ADHD 이야기"(1)~(3) (2017.12.19~2018.01.02.) "이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2015.10.30.) / 이성직, < ADHD 전문가를 위한 치료 지침서> 학지사. / 반건호,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 라이프페이지. / 호시노 요시히코, <발달장애를 깨닫지 못하는 어른들> 이아소.
2) 신경다양성과 장애학 관련: 이토 아사, <기억하는 몸> 현암사. / 김초엽‧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 사계절. /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알마.

* 브런치에도 연재합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adhdworker)
* 다음 화는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줄타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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