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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재단의 보호종료아동 자립지원 캠페인 '열여덟 어른'
 아름다운재단의 보호종료아동 자립지원 캠페인 "열여덟 어른"
ⓒ 아름다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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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보호대상아동'과 부모를 대신하여 이 아동들을 보호하게 된 '아동보호서비스'에 대해 살펴보았고, 이 보호대상아동들이 아동보호서비스에서 보내게 되는 '시간'에 대해 검토하였습니다.

입양된 아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보호대상아동은 위탁가정, 공동생활가정, 아동양육시설 등 아동보호서비스 체계에서 만18세가 될 때까지 생활하게 됩니다. 만18세가 되면 이들에 대한 공식적 보호가 종료되어 '보호종료아동(그리고 자립준비청년)'으로 구별됩니다.

평소에 공익광고를 귀에 담아 듣는 분이라면, 아름다운재단이 하고 있는 '열여덟 어른 캠페인'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캠페인은 보호종료아동들을 위한 것입니다. 만18세가 되어 아동복지법이 규정하는 '아동' 범주에서 벗어나게 된 이 아동들은 어른으로 취급됩니다.

우리 나이로는 스무 살이 되었으니 어른으로 볼 수 있지만, 우리 사회의 통념상 스무 살도 여전히 완전히 독립적인 어른으로 보지 않는 편이고, 영구적인 부모가 없는 보호대상아동들에게는 오히려 가혹한 현실로 내모는 일이 됩니다.

보호종료아동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수년 동안 화두가 되어 왔기 때문에 이 글에서 다시 자세하게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 대중매체에서 이들을 취재하여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 밀착취재, 연재기사의 형식으로 보도하였고, 적지 않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정부도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보호종료아동들이 처하는 곤란과 사회적 지원

이러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보호종료아동들의 대학진학률이 매우 낮고, 대학에 진학해도 졸업하는 비율이 낮으며, '좋은 일자리'를 얻는 비율도 낮아서 결국 대체로 낮은 소득수준을 유지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수급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보호종료 이후 경험하는 어려움은 낮은 소득수준, 불안정한 주거, 낮은 자존감과 대인관계 능력, 일상생활 관리능력 등이다.'

물론 모든 보호종료아동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가정에서 생활한 또래들에 비해 이런 어려움에 처하는 비율이 높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아동보호서비스체계, 그리고 각종 민간기관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보호종료아동들도 스스로 자조집단을 만들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어린 동생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그 결과로 최근 수년 동안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올해를 기준으로, 보호종료아동 아니 바뀐 명칭으로 '자립준비청년'은 본인이 원하고 정해진 기준에 맞을 경우 만25세까지 보호기간을 연장할 수 있으며, 800만 원의 자립정착금과 보호종료 5년 이내 매월 30만 원의 자립수당, 전세자금지원, 대학등록금 지원, 취업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받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시도마다 설치되어 있는 자립지원센터의 자립지원전담요원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밖에 '디딤씨앗통장'이라고 해서 보호대상아동으로 선정된 직후 통장이 개설되어 매월 일정액을 입금하면 정부가 추가로 일정액을 지원하여 자산이 쌓여가도록 하는 제도도 있습니다. 보호대상아동의 디딤씨앗통장으로 최소 매월 5만 원이 입금되면 정부가 지원하는 10만 원을 포함하여 매년 180만 원 정도를 모으고(추가적립시 연간 최대 600만 원), 보호종료시점에서 이를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혼하고 혼자 키우던 아빠가 돈 벌어 오겠다며 할머니에게 맡기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데, 그 할머니마저 쇠약해지고 치매 증상이 와서 양육이 불가능해진 만8세 여자아이가 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아이는 친생부모가 모두 연락두절 되었으니 입양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를 의뢰받은 구청의 아동보호전담요원은 위탁가정이나 공동생활가정, 아동양육시설 중에서 차례로 대리부모의 대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다행히도 같은 지역구 내에서 딱 맞는 위탁부모를 만나게 되었고, 만18세가 될 때까지 보호계약을 연장하며 이 위탁가정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위탁보호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이 아동 앞으로 디딤씨앗통장이 만들어지고, 가정위탁지원센터의 지원으로 매월 30만 원을 적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 앞으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생계급여와 위탁아동양육수당이 지급되는데, 이 돈은 대부분 위탁부모가 이 아동을 양육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 아이가 올해 만18세가 되어 자립하게 되면 3600만 원이 들어있는 디딤씨앗통장과 800만 원의 자립정착금 통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4400만원의 적지 않은 목돈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최대 5년까지 매월 30만 원의 자립수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LH전세자금지원을 받아 매월 15만 원 정도 관리비만 내면서 주거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했다면 대학등록금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현재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제공되는 지원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또는 직업훈련을 마칠 때까지, 그리고 취업을 한 경우에도 일정 기간에 동일한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각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특별히 나쁜 일이 생기지 않거나 나쁜 길로 빠져 탕진하게 되지 않는다면, 남겨둔 돈으로 전세보증금을 내고, 대학을 졸업하고 괜찮은 일자리를 얻어 일하면서 자산을 축적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친생부모와 함께 생활하다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떨어져 지내게 된 일반가정의 대학생 자녀와 비교해 보면 어떨까요?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 주거비(기숙사나 자취 비용), 생활비의 일부는 부모가 지불하지만 상당 부분은 성적장학금이나 국가장학금, 방학 동안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충당하게 될 것입니다.

자취를 한다면 전세보증금을 부모가 대신 내 주거나 빌려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돈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부모가 회수하거나 증여할 수도 있겠지요. 그 금액은 자립준비청년에게 지원된 규모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합니다. 이렇게 보면 그렇게 풍요롭지는 않아도 일반가정에서 자란 청년과 비슷한 조건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올해 기준으로는 그렇습니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부정적인 '~라면'(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의 조건들이 실제 현실이 되어 모아둔 돈을 한방에 날려버리거나 야금야금 써서 결국 모두 축내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이고, 각자가 처한 처지에 따라 쪼들리는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상당수의 자립준비청년들은 주거계약이나 공공기관 이용 등 일상생활기술에 부족함이 있고, 재정관리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하며, 식생활이나 주거생활을 어렵게 여기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공동생활가정과 아동양육시설에서는 자립준비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기도 하고, 지역의 자립지원센터에 소속된 자립지원전담요원을 통해 보호종료 시점 전후에 지속적인 교육훈련과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일상생활의 어려움들은 일반가정의 청년들도 유사하게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라고 생각되며, 자립준비지원제도도 있기 때문에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어려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메울 수 없는 부모의 자리

그러나 여기에도 다시 큰 구멍들이 있습니다. 첫째, 보호종료 시점 이전에 아동보호서비스를 이탈하는 아동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원가정으로 평안하게 복귀했거나 더 나은 보호를 받게 되었다면 다행이겠지만, 가출의 형태로 서비스체계를 벗어나 살면서 어둠의 경로로 빠지게 되거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려 했지만 제대로 버틸 힘이 부족해서 더 빈궁한 삶을 살게 된 이들의 사례를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아동보호서비스 체계를 벗어난 아동들의 삶을 돌봐줄 수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보호종료아동들을 추적한 많은 연구들이 밝혀 온 것처럼, 다수의 청년들은 성실하게 살아가고는 있지만, 괜찮은 일자리를 얻는 데는 번번이 실패하며, 전반적으로 볼 때 재정적으로 넉넉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째, 자립준비청년들의 다수가 보호종료 시점 이후로 아동양육시설이나 공동생활가정, 위탁부모와 관계를 단절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보호종료 이후에도 이들 아동보호서비스 제공자들과 연결되어 있는 이들은 보호종료 이전에 보호제공자인 위탁부모나 보육사, 생활지도원과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부모-자녀와 같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거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모/삼촌-조카 사이, 또는 큰언니/큰형-동생 정도의 관계를 맺은 사람들입니다.

또한 아동양육시설을 퇴소한 다수의 청년들은 시설에서 생활하면서 친하게 지낸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과 어울리고 서로를 돌보며 같이 살아가기도 하는데, 이 무리에서 이탈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공동생활가정과 위탁가정의 경우 상당히 많은 보호종료아동(성인)들이 보호제공자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보호종료 이전에 좋지 못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 경우 아동에게는 마땅히 의지할만한 어른이 단 한명도 없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을 보호해 준 마지막 어른을 의지할 수 없다면, 그 아이는 누구를 의지해야 할까요?

셋째, 이미 힌트가 제공되었지만, 마지막, 그리고 가장 큰 구멍은 역시 '부모'입니다. 현행 아동보호서비스 체계는 재정 측면에서 자립준비청년을 상당히 많이 지원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부모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도 꿋꿋이 살아낸 위대한 인물들에 대해 알고 있지만, 우리와 아이들의 대부분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며, 이처럼 평범한 삶에는 평범한 부모와 가정이 필요한 법입니다.

늘 따뜻하고 관대하며 돌봐주고 함께하는 부모가 아니라 희로애락을 같이 하고, 잘못 키우기도 하고, 제법 첨예한 갈등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심지어 등을 지기도 하고, 지우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부족함을 감싸주고, 덮어주고, 결국 용서하고, 의지를 가지고 약하지만 따뜻한 사랑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평범한 부모 자식 관계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사의 결론도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필요하다는 것이며, 다시 독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그 아이의 부모가 되어 줄 수 있나요?" 다만 이 글에서는 다른 제안을 덧붙이려 합니다.

보호대상아동과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영구적인 부모가 되어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결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이룰 때까지, 인생의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고 삶을 꾸려갈 때 조언을 주거나 꿀팁을 전수하거나 싫지 않은 간섭을 하거나 잘못된 길로 나가려고 할 때 혼을 내주거나 아버지를 대신해서 결혼식장에 같이 걸어들어 갈 수 있거나 넥타이 매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한 사람의 따뜻한 삼촌, 이모를 우리 사회가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을 부모 없이 살아간다는 것. 서로 다른 누군가에 의해 내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고 끊임없이 떠돌고 있다는 느낌. 내게는 잘못이 없는데, 밀려나고 버려진 느낌. 친생부모의 부재는 아이에게 남들이 가늠할 수 없는 상실감을 가져다줍니다. 화목하고 따뜻한 가정에 입양되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도 친생부모는 가끔 먹먹함을 주는 삶의 서늘한 그늘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연재기사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낙인'의 흔적들을 지워가야 한다는 제안입니다. 20여 년간 아동복지를 연구하면서 저는 아이들과 그들을 돌보는 어른들의 목소리에 배어나오는 상처의 흔적들을 발견했습니다.

언론 보도와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시설 출신'이라는 수식어, "너 입양됐어? 그럼 '진짜 엄마'는 어딨어?"라는 배려 없는 질문, '검은 머리 짐승은 집에 거두는 게 아니랬는데...'라는 날카로운 말, 아무렇게나 던져지는 '버려진 아이'라는 관용어구... 모두 사라져야 할 낙인의 잔재들입니다.

아동양육시설은 '출신'이 아니라 아이들의 집입니다. 입양 법률과 제도에서 '진짜(친) 엄마'는 입양한 엄마입니다. 우리는 거두어들여야 할 짐승이 아니라 하나하나 존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아이들은 버려진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맡겨진' 존재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특히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보호대상아동, #아동보호서비스, #은밀한 맥락을 찾아서, #자립준비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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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현상의 은밀한 맥락과 패턴을 탐구하는 질적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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