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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글뱅글. 파닥파닥. 치열하게 돌고 돈다
▲ 아는 언니가 발견한 체조선수  뱅글뱅글. 파닥파닥. 치열하게 돌고 돈다
ⓒ 오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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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봉에 매달린 사람이 돈다. 내 눈이 휙휙 돌아간다. 쉴 새 없이 앞뒤로 까닥거리다 360도 휘릭 돈다. 영상을 보는 나는 웃음이 터졌다. 체조인지 철봉인지를 하는 영상을 보내준 아는 언니에게 톡을 보냈다.

"이게 뭐라고, 왜 이렇게 웃기죠?"

언니는 동문서답했다.

"치열하게 살잖아."

동영상은 종로 5가 어디메쯤 있는 가게 앞에서 찍은 거였다. 빨간 민소매, 흰색 타이즈, 검은 머리에 표정 없는 검은 눈, 새빨간 입술. 옛날 동네 완구점에 팔 법 한 어른 손바닥 길이의 사람 모형은 좀 그로데스크 했다.

'체조 선수 5000원'. 글자가 적힌 큰 사이즈 견출지가 아랫부분에 붙어 있었다. 멍하게 보고 있으니 빠져든다. 뱅글뱅글 파닥파닥. 반복 재생. 이거 너무 나 같잖아.

코로나 자가격리, 숨 막히는 반복의 시작 

얼마 전, 배우자 Y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즉시 그를 화장실 딸린 방으로 밀어 넣었다. Y가 목이 아프다던 날 우리는 함께 밥을 먹었다. 검사 결과는 음성이지만 나도 아이도 잠복기일 수 있었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걱정됐다. 내가 양성이고 아이가 나에게 전염될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다. Y는 물론, 나도 마스크를 썼다. 철저한 격리와 함께 숨 막히는 반복이 시작됐다.
 
일주일 동안 아이와 둘이 갇혀 있던 거실은 치워도 치워도 늘 이 상태
▲ 그림책 "당근유치원"  일주일 동안 아이와 둘이 갇혀 있던 거실은 치워도 치워도 늘 이 상태
ⓒ 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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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끼 밥과 두 번의 간식을 차려 아이 앞에, Y의 방문 앞에 놓았다. Y의 설거지와 빨래는 따로 모아서 했다. 기침소리가 들리면 그가, 아이가 걱정됐다. 환자와 아이를 함께 돌보는 게 쉽지 않았다.

'배고파' '심심해' 계속되는 아이 목소리가 환청인지 실제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괜히 목이 따가웠다. 일주일 동안 열 번 넘게 면봉을 코 안에 집어넣었다. 양성이라면 빨리 알게 되어서 방문 앞 밥 배달이라도 그만하고 싶었다. 나흘째 나는 몸살이 났지만 아파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적어도 지금은 안 돼.  

이런 상황, 익숙하다. 두 시간 이어서 자본 적 없는 영아기 시절, 중이염, 수족구, 농가진, 아토피로 어린이집 못 가던 때. 코로나로 유치원이 문 닫았을 때. 확진자가 급증해서 가정보육을 선택했을 때. 그러니까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나의 노동 시간은 하루 종일이 되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집은 내 쉴 곳이 아닌 완벽한 노동의 현장이 된다. Y는 집에 있는 동안 집안일과 육아에 최선을 다했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직원이 5명인 작은 회사는 자주 긴급 아니면 위기였다.

믿을 곳은 유치원과 Y뿐. 잠시라도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거나 빠지지 않고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일이든 취미든 애초에 만들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나 홀로 육아인의 노하우였다.

돌발 상황에도 비상사태에도 아무 문제없이 굴러가게 하기 위한 세팅. 걱정마라, 엄마가 여기 있다. 아이 돌봄이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그건 또 다른 스트레스와 무력감으로 돌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반복은 외롭다  

우리 가족의 자가 격리 7일은 지난 7년을 압축해놓은 것 같았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기운을 얻어 일터로 향하는 Y, 나의 행복과 화를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아이, 언제나 대기 중인 나.

아이는 7살 만큼 자랐다. Y는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나는 7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밥과 빨래와 청소와 돌봄을 끈질기게 반복했고, 그 어느 때보다 생각이란 걸 많이 하면서 – 작은 생명체는 어떻게 먹이고 재우는지, 몹시 섬세한 아이 훈육은 어떻게 하는지, 돌봄과 가사노동은 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지, 내 안의 가부장은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몸도 머리도 바지런히 굴렸다.

세상은 아이를 위한 희생은 당연하지만 자기 계발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자극했고, 계속 아이만 키우는 것은 능력이 없다는 소리 아니냐며 주눅 들게 했다. 방법이 없으니 이게 최선이라고 나를 다독이던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색하고 물었다. 수시로. '너 계속 이렇게 살 거야?' 

이왕 하는 거 당당하고 즐겁게 하지, 투덜대고 화내는 내 모습이 돌봄과 가사노동을 하찮게 여겨지도록 만드는 데 일조하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그렇게 돌고 도는 질문과 고민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시간이 흘렀다.

격리 마지막 날 밤 12시. 아이와 함께 잠들었다 깨서는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거실을 못 본 척, 배달 앱에서 아귀찜을 눌렀다. Y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안심도 되고 밉기도 했다.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그러면 내일 밥을 못할 것 같았다. 넷플릭스를 켜고 급박하게 진행되는 범죄스릴러물을 봤다. 고요히 있다가는 이 상황을 곱씹게 될 것이고 그러면 억울해서 내일 밥을 못할 것 같았다.

왜 억울하냐면, 모르니까. 내가 거실과 주방을 종종거리며 쉼 없이 왕복하고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니까. 일을 하고 금전적 대가를 받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네가 무엇을 하고 있다는 걸, 애쓰고 있다는 걸 '안다', '인정 한다'의 의미도 있다. 그래서 돈도, 눈길도 주지 않는 반복은 억울하고 외롭다.

그 무표정이 계속 마음에 걸린 이유

아침마다 아는 언니가 보내준 체조선수 동영상으로 외로움을 달랬다. 잠시도 쉬지 않고 앞뒤로 흔들고 있지만 아무도 사가지 않는. 여럿이 모여 농구도 하고 뜀박질도 하고 싶지만 제자리 움직임을 멈출 수 없는. 나는 그 체조 선수 좀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출장 중이라는 언니는 다녀와서 가보겠다고 했다.

"걱정 마. 안 없어져. 작년 겨울부터 그 자리에 있었거든."
 
그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누구일까.
▲ 아는 언니가 구입한 체조 선수  그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누구일까.
ⓒ 오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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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중고인데 괜찮겠냐고 물어보더니 언니는 곧 인증 샷을 보내왔다. "우씨, 이게 가게 앞에 있는 것처럼 마구마구 돌지는 않네." 비닐 포장이 된 새 제품이었다. 먼지 쌓인 선수들이 가게 구석에 더 있더란다.

앞에 보이는 선수만 열심히 움직이는 건가 해서 좀 웃겼고, 누가 보지 않아도 계속해서 휘돌 준비가 된 선수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게 좀 슬펐다. 택배로 보낸다길래 우리 본 지 3년도 넘었으니 만나자고, 그때 달라고 했다. 근데 체조 선수 표정 볼수록 무섭다 했더니 언니가 한마디 덧붙였다.

"아무리 치열하게 살아도 내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니 웃을 수 없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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