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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노동자에 대한 보호법제는 주로 감정 노동자 또는 고객 응대 근로자의 범주에서 규정하고 있다. 감정노동자보호법으로도 불리고 있는 고객 응대 근로자 보호 규정은 2018년 4월 17일에 개정되고 같은 해 10월 18일에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 대표적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개정 당시 36조의 2)에서는 고객 응대 근로자(고객을 직접 대면하거나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상대하면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자)에 대하여 고객의 폭언, 폭행, 그 밖의 신체적·정신적 고통(이하 폭언 등)을 유발하는 행위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을 조치하도록  사업주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법에서 규정하는 세부적인 조치로는 ▲ 고객이 폭언 등을 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문구 게시 또는 음성 안내 ▲ 고객과의 문제 상황 발생 시 대처방법 등을 포함하는 고객 응대 업무 매뉴얼 마련 ▲ 고객 응대 업무 매뉴얼의 내용 및 건강장해 예방 관련 교육 실시 ▲ 그 밖에 고객 응대 근로자의 건강장해 예방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 등이 있다.

또 업무와 관련하여 고객 등 제3자의 폭언 등으로 근로자에게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 휴게시간 연장 ▲ 건강장해 관련 치료 및 상담 지원 ▲ 관련 고소·고발 또는 손해배상 청구 등에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

산안법 외에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는 고객 등 제3자에 의해 성희롱 등이 발생하여 해당 노동자가 그 고충 해소를 요청할 경우 사업주는 근무 장소 변경, 배치 전환,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고(제14조의2),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거나 고충 신고 등을 이유로 사업주가 불이익한 처우를 했을 경우 노동위원회에 그 시정을 신청할 수 있으며(제26조, 2022. 5. 19. 시행), 이에 대한 입증 책임은 사업주가 지도록 하고 있다(제30조).

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콜센터 노동자처럼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해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적응 장애, 우울병 등을 업무상 재해(산재)로 인정하는 명문의 규정을 두었다(제37조).

또 금융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호제도가 있는데 금융 5법(은행법, 보험업법,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상호저축은행법, 여신전문금융업법)에서는 고객 응대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 직원이 요청하는 경우 해당 고객으로부터 분리 및 업무 담당자 교체 ▲ 직원에 대한 치료 및 상담 지원 ▲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직원을 위한 상시적 고충 처리 기구 마련 등이 주요 내용이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감정 노동자 보호 조례를 만들고 있어 15개 광역시도와 56개 기초자치단체에 관련 조례가 있다(2021. 11. 기준). 

직접고용, 원청 책임 강화하는 법제도 필요성

콜센터 노동자의 감정 노동 측면에서 다양한 보호제도가 등장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관련 제도들은 콜센터 노동 문제의 근원적인 대책이라기보다는 증상을 완화시키는 대증요법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다수의 콜센터가 외주화되어 있어 콜센터 운영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청이 콜센터 노동자의 위험을 보호하는 책임에서는 비켜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20년 구로 지역의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 집단감염 사례를 통해 콜센터 노동자들은 콜센터 외주화가 노동 조건의 저하만이 아닌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에도 위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험을 하였다. 근원적으로는 기업의 기본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직접고용을 하도록 강제하는 입법이 필요하다.

멕시코,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스페인의 경우 하도급 계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멕시코의 하도급 금지 규정을 보면 ▲ 기업은 주요 생산 및 영업 활동을 수행하는 하도급 근로자를 직원으로 인정하거나 직접고용 형태로 전환해야 하고 ▲ 기업의 주요 생산 및 영업 활동과 무관한 특수 서비스 및 공사 등의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하도급 근로자를 허용하고 있다.

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당장 어렵다면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법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산안법의 경우 2019년 전부개정(2020년 시행)을 하면서 원청(도급인)이 지배·관리하는 장소에서 관계수급인(도급이 여러 단계에 걸쳐 체결된 경우에 단계별로 도급받은 사업주 전부)의 노동자가 작업을 하는 경우 관계수급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안전 및 보건 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안전보건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다(제63조).

해당 조항은 원청의 책임 확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도급인이 지배·관리하는 장소에 관한 규정이 붕괴, 전도, 건설공사, 제조공장 등으로 한정되어 있어 적용 범위가 매우 협소하다. 감염병이 반복적으로 확산될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감염될 우려가 있는 장소도 도급인이 지배·관리하는 장소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산안법, 콜센터 노동자 보호에 미흡

또 산안법 자체도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관한 규정이 건설업이나 제조업에 편중되어 있어 콜센터 노동자가 적용받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물론 컴퓨터 단말기 조작 등의 작업에 대한 건강재해, 단순반복작업 또는 신체부담작업에 의한 근골격계 질환, 사업장의 환기·채광·조명·보건·방습·청결 등에 대한 규정 등 콜센터 노동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규정들이 있다.

그러나 소음 발생에 관한 규정의 경우 85dB(지하철 소음 수준) 이상의 경우에만 적용하고 있어 하루 종일 헤드셋을 끼고 상담하는 콜센터 노동자에게는 적용이 힘들다.

호흡기로 감염되는 공기매개 감염병의 경우 병원, 혈액검사 작업, 환자의 가검물을 처리하는 작업, 연구 등의 목적으로 병원체를 다루는 작업, 집단수용시설에서의 작업 등에만 한정돼 상담이 주 업무라 감염병 확산에 취약한 콜센터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규정들은 감염병 확산에 취약한 콜센터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한다.

산안법상 중대재해 개념도 손볼 필요가 있다. 2020년 구로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 코로나19 집단감염자 수는 170명에 달했다. 동일한 사유로 170여 명의 질병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사업주의 보건관리가 부실했다는 증명이기도 하며, 매우 시급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에 해당한다.

산안법상 중대재해에 해당할 경우 작업 중지, 안전보건조치 의무, 보고 의무 등이 사업주에 부과되고, 고용노동부 장관은 사업주에게 이를 명령할 수 있어 재해 발생 원인을 파악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데 도움이 된다.

산안법상 중대재해 개념을 보면 1)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2)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재해 3) 부상자 또는 직업성 질병자가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재해로 정의하고 있어 콜센터 집단감염은 3번의 중대재해로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질병과 직업성 질병 개념을 달리 보며 분진에 의한 진폐증, 화학물질 중독 등 해당 업무에 상시적으로 기인하는 유해 요인이 있을 경우 직업성 질병을 인정하고 있다. 즉 코로나19 집단감염은 직업성 질병이 아니기에 170여 명이 감염돼도 중대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낮은 현장 체감도, 근본적 대책 마련 필요

산안법 등 기존의 콜센터 노동자 보호 제도에도 개정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 산안법상 고객 응대 근로자에 대한 보호 규정이 있지만 이를 감독하는 근로감독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피해를 겪은 노동자가 이를 신고하지 않으면 사업장에서 법이 위반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다.

산안법에 근거해 마련된 고객 응대 근로자 건강 보호 가이드라인의 경우 고객의 폭언 등이 있어도 3단계 이상을 거쳐야 통화를 종료할 수 있어 피해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고객의 폭언 등이 있을 경우 통화를 즉시 종료하고, 해당 고객은 향후 서비스 이용에 제한을 두는 등의 제도가 필요하다.

고객 등의 폭언에 의한 정신질환이 산재로 인정되지만 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소요되는 업무상 질병 인정 처리 기간도 단축해야 한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서는 콜센터 사업장 코로나19 관련 지침이 사업장에 강제되도록 법령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와 시민이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어야 하지만, 노동과정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사용자는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고, 감염병 확산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추가로 ▲ 고객 응대 노동자의 건강위험을 인식하여 산안법에 보호 규정을 담은 만큼 사업장 위험성 평가에 고객 응대 노동으로 인한 유해·위험요인을 포함하고 ▲ 사업주의 보건조치 범위에 감염병에 의한 건강장해를 추가해야 한다. 또 휴게시간, 휴게시설 등에 관한 규정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감정 노동 문제가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콜센터 노동 문제는 그 핵심적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대한 보호 규정들이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일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를 현장에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보호 규정들이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콜센터 상담 노동자들은 기업이 고객과 만나는 접점에 있으면서 기업의 얼굴 역할을 하고, 다른 부서들의 업무량을 줄여 업무 효율성을 높여주고 있지만, 그 기업의 노동자로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제는 콜센터 노동 문제를 대증치료에만 머물지 말고 근본적 대책을 논의하여 추진해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콜센터 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2021. 국가인권위원회) '제3장 콜센터 노동자 보호 관련 법·제도 현황과 실태'를 요약 정리한 글임. 글 내용에 대한 자세한 출처와 참고자료들은 원문 참고. 김성호 해담노동법률사무소 공인노무사가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3,4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다.


태그:#콜센터, #산안법, #감정노동, #건강, #법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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