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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진화한 잔불이 남아있는 현장, 산불진화대는 재발화를 막기 위해 주변 흙을 덮는 작업들을 계속해야 한다.
 밤샘 진화한 잔불이 남아있는 현장, 산불진화대는 재발화를 막기 위해 주변 흙을 덮는 작업들을 계속해야 한다.
ⓒ 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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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외투가 무겁게 느껴지는 햇살 좋은 때가 되면 세월호 아이들이 생각나고, 으슬으슬 추위가 몰려오면 생각만으로도 가슴 시린 젊은 청년 김용균의 죽음이 떠오르는 이 땅입니다.

무겁고 아픈 일들이 계속되지만 언젠가 봄이 오듯이 언 땅을 녹이는 3월 9일 우리는 대통령을 뽑아야 했습니다. 각 당의 후보가 서로 당선시켜 달라고 서로를 헐뜯으며 군중들을 모으고 목에 핏대를 세울 때, 노동자들은 그들의 목소리 크기만큼 실망이 더 커지고 있었습니다.

주요 대선후보들은 누가 더 나쁜가 논쟁에만 관심 있어 보였고 지금 당선자가 된 이는 노동에 대한 공약조차 내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번져가는 산불과 사투하는 노동자들이 어떤 사람들 인지도 알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강릉과 영덕에서 발생한 산불은 선거기간을 지나도 꺼지지 않았고, 타오르는 불길을 잡으려 사투를 벌이는 현장에는 산림청 산불재난 특수진화대 노동자들이 화마와 맞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산불을 끄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은 소방공무원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특수진화대 노동자들은 쉰다는 건 생각하지도 못하고 초과수당도 없이 일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산에서 김밥을 먹고 토스트를 먹고 라면을 끓여먹으며 허기를 때우고, 서 있을 힘도 없을 때 별도로 쉴 곳은 없으니 산속 어딘가에 그냥 누워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일하지만 아직 비정규직입니다.

타들어 가는 산불이 커지는 만큼 비정규직 산불진화대는 더 높이 산을 올라야 했고, 더 큰 불길과 맞서야 했습니다. 산불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지켜야 할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금강송을 지켜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를 지켜야 한다, 송전망을 지켜야 한다'라는 쏟아지는 기사들 사이에 화마와 맞서 싸우고 있는 산림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전 이야기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숨은 영웅이라고, 그들의 초과근무수당이 0원이라는 기사라도 나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누군가의 노동과, 누군가의 위험을 잘 알고 있기에 주요 대선 후보들의 노동안전 정책에는 무엇이 있을까? 또한 외주화된 위험한 노동에 대해서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고층아파트 붕괴사고로 중대재해 수사가 아직 마무리되지도 않은 광주를 찾아 대형 복합쇼핑몰을 건설해야 한다는 후보자의 공약을 들으며 기가 막혔습니다. 건설현장 참사로 상처 입은 유가족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8년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과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이 있습니다. 이 법은 사용자들을 처벌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 현장에서 최소한의 안전조치를 해야 한다는 법입니다. 하지만 경총은 사장이라 감옥가게 생겼다며 수많은 노동자·시민들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법안을 비아냥 거렸습니다.

그리고 이 말에 동의한 대선후보가 있었습니다. 그 후보는 코로나로 인해 불안정한 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손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현장에서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는 노동자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시민의 안전을 이윤과 맞바꾸는 기업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있는 후보가 당선이 되었습니다. 노동자를 생각하지 않는, 그리고 노동자의 현실을 모르는 나라, 저는 무섭습니다.

누군가의 건강을 위해 끼니를 제공하는 급식 노동으로 육체가 무너져가는 노동자가 있습니다.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작 본인들은 화장실 한구석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삶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꿈과 희망인 보금자리를 세우다 떨어지고 깔려 죽는 노동. 잠시도 끊겨서는 안 되는 전기 공급을 위해 정작 자신들의 위험 앞에서 공장가동을 멈추지 못하는 노동. 감염병 위협 앞에서도 인력난에 타들어 가며 힘겹게 병상을 지켜내고 있는 노동. 그런 노동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나라가 될까봐 저는 무섭습니다. 노동자의 고통을 모르는 구중궁궐 같은 정부가 될까 봐 무섭습니다.

이 무서움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현실이 되지 않도록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용균재단 이사이자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인 김영애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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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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