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사람들> 누구보다 일에 최선을 다하는 하경은 사랑 역시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상처는 생각보다 아프다.

▲ <기상청 사람들> 누구보다 일에 최선을 다하는 하경은 사랑 역시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상처는 생각보다 아프다. ⓒ JTBC


사랑과 날씨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JTBC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에서 특보예보관인 주인공 이시우(송강 분)는 날씨의 특성을 '가변성'이라고 말한다. 날씨는 온도, 기후, 수분, 바람, 지형 등 다양한 요소로 인해 시시각각 변화하지만 인간의 생존과 삶의 질에 직결되기에 인간은 예로부터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 늘 노력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바로 그 가변성으로 인해 날씨는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기상청 직원들이 체육대회를 할 때도 비가 내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사람의 감정 역시 주위의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한다. 목석이 아니고서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감정의 항상성을 늘 유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가변성 덩어리인 감정을 가진 두 존재가 만나는 사랑의 미래는 그래서 날씨처럼 예측 불가능하다. 

예측이 가능해서 이미 결과를 알아버린 미래는 과연 재미있을까? 알고 있다고 해서 미래를 철저히 준비할 수 있을까? 유퀴즈에 나왔던 뇌과학자 김대수 교수의 설명을 빌리자면 '인간의 뇌는 과부하가 걸리면 고열로 망가질 수 있어서 생존에 가장 적절할 만큼만 초절전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미래를 잘 아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다면 인간의 뇌는 아마도 그렇게 발달했을 것이다. 결론이 뻔히 보이는 드라마는 재미가 없듯 미래를 뻔히 예측하는 인생도 재미 없지 않을까?

어른, 겁쟁이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주인공 진하경(박민영 분)은 기상청 예보총괄2팀 과장이다. 대학교 캠퍼스 커플이면서 기상청 입사동기인 한기준(윤박 분)과 결혼을 준비 중이었지만 기준은 그만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기준의 외도 상대였던 채유진(유라 분)은 기상청 출입기자이면서 날씨에 관한한 천부적인 감을 가진 열혈 특보관 시우의 연인이기도 했다. 기준과 유진이 결혼하고 시우가 하경의 팀원이 되면서 네 사람은 각각 전후의 연인으로 얽히게 된다. 

기준의 배신으로 깊은 상처를 받은 하경은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시우와 금세 사랑에 빠지지만 그 사랑이 지나치게 뜨거워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감정이 어떻게 자신을 송두리째 삼킬 것인지를 알기에 하경은 시우에게 지나치게 마음 뺏기는 것을 주저한다. 그래서 자꾸 공과사를 구분하자며 시우에게 적당히 선을 긋는다. 

한편 시우는 사랑은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 비혼주의자다. 무책임한 아버지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불행하게 살아온 그로서는 가정을 꾸려 나 외의 다른 사람을 책임질 자신이 없다. 어릴 때 책임감 있는 어른의 보살핌을 받아보지 못했기에 어른이 된 시우는 감정에는 충실하지만 책임감 있게 보살피는 법을 모른다. 상처와 결핍, 어른이 되면 겪지 말았어야 할 것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많은 것을 알아버린 어른들은 오히려 그 앎으로 인해 어린 시절보다 더 겁쟁이가 되어 버린다. 

날씨처럼 내 마음도 읽어 주길 바라는 당신에게
 
<기상청 사람들> 기상관측도 사랑도 열정적인 시우지만 결혼은 어쩐지 두렵다.

▲ <기상청 사람들> 기상관측도 사랑도 열정적인 시우지만 결혼은 어쩐지 두렵다. ⓒ JTBC


<기상청 사람들>에는 어른들의 고민이 담겨 있다. 사내 연애로 스릴도 넘치지만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의 경계선에서 방황하는 하경과 시우, 죽고 못살아 덜컥 결혼했지만 막상 서로에게서 미처 보지 못한 모습에 당황하는 기준과 유진, 국내 최고의 기상 전문가로 평가받지만 정작 돌봤어야 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이혼 위기에 처한 동한, 워킹맘이자 공부하겠다는 남편의 뒷바라지까지 감당하는 명주 등 저마다 고민을 한 짐 지고 살아간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 고민이 더 줄어들 거라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도 고민은 줄어들지 않는다. 다만 고민의 내용이 달라질 뿐이다. 게다가 어른이 된다고 해서 감정이 무뎌지지도 않는다. 상처를 덜 받지도 않는다. 어른도 날씨의 상태처럼 감정이 왔다 갔다 하고, 사회생활은 하루에도 몇 번씩 소나기 내리듯 상처가 쌓이니 일상은 고달프기 그지없다. 

<기상청 사람들>은 기상청이라는 특수한 직업의 세계에 대한 묘사와 초반의 빠른 전개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지만 이후로 오호츠크 기단과 북태평양 기단이 서로 만나 정체전선이 형성된 것처럼 캐릭터들의 관계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해 약간 지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이 그러하지 않던가. 드라마는 현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감정과 감정이 실타래처럼 얽히면서 만들어지는 관계의 밀도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들은 기상청 직원들답게 기상 데이터를 분석하고 화면에 보이는 구름을 읽어 내며 날씨를 파악하려 애쓴다. 하경은 자신이 그러하듯 상대방 또한 자신만의 빅데이터를 읽어주고 분석해 주길 바란다. 차마 말하지 못하는 감정의 편린들을 세심하게 알아주길 바란다. 시우 역시 상대방을 배려하지만 실은 자신의 배려를 알아주길 바란다. 그렇게 두 사람의 오해는 쌓여가고, 갈등은 속으로 깊어진다. 

날씨에게는 없지만 사람에게만 있는 특별한 시그널이 하나 있다. 바로 '말'. 드라마 속 인물들의 갈등이 오랜 가뭄 끝에 내린 장마처럼 해소되는 지점은 바로 속내 깊은 대화를 나눌 때이다. 때로는 전혀 뜻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속사정을 이해할 때도 있다. 

날씨는 자신이 어떻게 돌변할지 수많은 시그널들을 보낸다. 예보관들은 이 시그널을 분석해서 그날그날 기상 상태를 예측하고 사람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정보를 만들고 전달한다. 사람들은 가끔 상대방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보내는 시그널을 분석하고 알아주길 바랄 때가 있다. 아무리 빅데이터를 보여준다 한들 그 분석이 100% 정확할 수는 없다. 그러니 제발 인간이 가진 최고의 기술을 묵히지 말자. 우리는 상대에게 말할 수 있는 발성기관과 언어를 만드는 뇌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기상청사람들 드라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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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음악, 여행을 좋아하고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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