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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술이 고프다'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밥은 안 먹어도 술은 마셔야 한다는 신념 아닌 신념을 드러내곤 하던 시절이었다. 세상살이에 힘들어서 마시고, 고된 하루를 보낸 자신이 대견해서 마시고, 비틀어지고 답답한 세상 모습 보고 있으려니 화가 나서 마시고, 이별의 상심으로 마시고, 기뻐서 마시고. 이런저런 이유로 술을 마셨다. 퇴근 후 술 한 잔은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마시다 보면 술이 술을 마시는 지경까지 가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또 술을 찾았다. 술이 고픈 시대엔.

지금은 술자리가 뜸해졌다. 코로나 때문이다. 코로나는 퇴근 후 모임도 뜸하게 했다. 친구들과 만남도 소원해졌다. 만나면 으레 한 잔 하던 모습도 보기 어려워졌다. 코로나는 일상의 모습마저 바꿔 놓았다. 그렇다고 술이 사라진 건 아니다. 회식 술자린 줄었지만 삼사오오 모여 술잔을 부딪히는 모습은 여전하다. 혼술도 많이 늘었다. 나 또한 집에서 혼술로 종종 허기진 마음을 소독하기도 한다.

술은 인간이 만든 음료 중 가장 오래된 음식이다. 술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문헌엔 없지만 원숭이가 산포도를 바위나 나무 오목한 곳에 넣어둔 것을 우연히 밟아 발효된 것을 먹었다 한다. 그로부터 술이 시작되었다는 설이 시초라고 한다. 잠시 술 마신 원숭이 모습을 떠올려본다. 웃음이 난다. 근데 굳이 술의 시초는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술이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먹거리가 되고 인류와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갑자기 웬 술타령이냐고? 술엔 인생이 있다. 술 속에 사랑과 이별이 있고 벗과의 우정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술에 인생, 사랑, 우정이 있는 게 아니라 술을 노래한 옛사람들의 글 속에 들어있다. 아주 오래 전 살다가 간 이들의 마음은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과 다를 게 하나 없다. 사람의 마음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 글을 읽다 보면 그 마음 줄기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거기에 술 한 잔 들어가면 더 그렇다.
 
김재연의 <오직 酒>
 김재연의 <오직 酒>
ⓒ 향원익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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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술과 관련된 시를 읽고 있다. 중국 한나라 때부터 명나라 때까지 술과 연관된 시들이다. 현재 출판기획자로 활동하고 중국어 번역가로 일하고 있는 김재연은 중국의 고시(古詩)들을 어려운 한자투가 아니라 쉽게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여 <오직 酒>를 선보였다.

시집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지의 조조부터 도연명, 두보, 이백은 물론 당송팔대가로 불린 소식, 왕안석, 구양수 외 많은 이들의 시들이 담겨있다. 시는 시대가 아닌 내용을 기준으로 '인생', '만족', '우정', '사랑'으로 나눠 정리해 그 의미를 쉽게 알아보게 했다.
 
날씨 한번 좋구나! / 친구들과 함께하는 나들잇길 / 휘파람 절로 / 콧노래 절로 / 술도 한 잔// 저만치 보이는 무덤 하나 / 오, 인생무상 / 어찌 즐겁게 보내지 않을 수 있나// 내일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 술이나 한잔 마시며 /오늘 이 순간 / 지금 이 순간 마음껏 즐겨보세

 
도연명의 <인생무상>이다. 맘이 맞는 친구들과 나들이 갔다 우연히 바라본 무덤 하나. 그 무덤을 바라보고 무상한 감정을 노래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내일 일을 어찌 알겠는가. 한 시간 앞도 볼 수 없는 게 우리네이다. 그래서 술이나 한잔 마시면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고 노래한다. 하나 더 보자.
 
봄날 마시는 술은 더욱 취하고 / 석양이 질 때까지 마시고 취한다/ 새해가 시작되었고 / 봄날을 맞이했으니 / 나만 늙어가는 것을 아닐 테지 / 세상 모든 사람들이 / 나와 같이 한 해를 보냈을 테니

 
남송 때 관리이자 시인인 육유가 조정에서 파면당하고 지방으로 쫓겨나며 잠시 머물던 기주에서 자신의 처지를 노래한 글이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많다. 마음이 허해서 마시고, 외로워서 마신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서 마시고 승진이나 영전으로 기뻐서 마시기도 한다. 커피나 차 한 잔으로 슬픔, 외로움, 허전함을 대신할 수 없다. 우리 마음을 그래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건 술이 아닐까. 그래서 옛 시인 묵객들이 술을 즐겨한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이별을 노래한 시엔 술 한 잔을 절로 마시게 된다.
 
멀리 떠난 그대여 / 잘 지내고 계신가요 / 오늘 밤 / 저 밝은 달을 함께 보고 있을 테지만 / 우리는 천리만리 떨어져 있으니 / 그대를 향한 그리움이 켜져만 가네요 // 그리움을 달래려 술 한 잔 따르는데 / 술을 마시기도 전에 눈물부터 흐르네요 / 등불도 꺼져버린 깊은 밤 / 지독한 그리움이 밀려오네요 / 이 끝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세어보는데 / 마음만 더 복잡해질 뿐 / 벗어날 수 없네요

 
이별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범중엄의 이별시다.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마음. 허나 술을 마신다고 외로움이 사라질까. 외로움은 안개처럼 하얗게 밀려오고 그리움은 산처럼 커갈 것이다. 술은 그저 하나의 방편이다. 그래도 술이라도 없었으면 그 마음을 어찌 달랠 수 있겠는가.
 
그리 좋은 술은 아니지만
집에 술 한 병 있는데
한잔 어때?

날도 어두워지고
날씨도 우중중한데
이런 날 한잔해야지
어때?


 
지금이라면 전화나 문자로 친구에게 술이나 한 잔 하자고 권하는 내용이다. 요즘이야 집에 친구 초대하여 술 한 잔 하는 시대는 아니기에 가까운 술집에서 만나 술잔을 나누지만 술을 마시자고 권하는 이유가 은근 미소를 띠게 한다. 날씨가 우중충하니 술 한 잔 하자는 건 나 너 보고싶으니 만나자 하는 마음을 은근 날씨로 돌려 말하고 있다.

오늘도 날씨가 우중충하다. 어제부터 성글게 뿌리는 비가 오늘까지 이어진다. 볕조각이라도 들면 마음이 한결 밝아질 텐데 아무리 봐도 틈을 주지 않는다. 이렇게 우중충하는 날엔 마음도 우중충 처진다. 오늘은 저녁 반주로 이태 전에 담근 하수오주나 마실까 싶다. 남북조시대의 시인 포조의 시구절을 생각하며 말이다.
 
"모두의 인생이 같을 수는 없는 법, 왜 한숨 쉬고 슬퍼하고 있나. 일희일비하지 말고 술 한잔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네. 자신의 감정을 이러쿵저러쿵 말해봤자 뭐 하나. 괜한 것에 흔들리지 말게."


오직酒(술) - 그냥 술이나 한잔하게

김재연 (지은이), 향원익청 연(蓮)(2018)


태그:#오직 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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