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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6일 '평화의 문학,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라는 주제로 김지은씨(경희대 대학원 영미어문학과 박사과정 수료)의 이야기를 듣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생각하는 줌(ZOOM) 온라인 집회가 열렸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은이),박은정 (옮긴이),<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문학동네(2015), 초판출간 1983년.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은이),박은정 (옮긴이),<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문학동네(2015), 초판출간 1983년.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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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우크라이나인 어머니와 벨라루스의 군인으로 활동했던 아버지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이전에 <체르노빌의 목소리>라는 책을 썼다.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200여 명이 넘는 여군을 만나, 그 목소리를 과감 없이 드러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김지은씨는 "알렉시예비치를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주류 담론이 배제하고 있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보여주고 작은 균열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지은씨는 '전쟁이라는 것은 모든 인류가 경험하는 트라우마 적인 사건'이며, 전쟁이 남성주의로 인해 남성들만의 것으로 변형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국가는 전시에 따라 여성을 전장으로 호출하고 모든 것을 품어줄 수 있는 어머니상으로 이미지 함으로써 여성을 전쟁 담론에 포함하지만, 막상 전쟁이 끝나면 여성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면서 군대와 전쟁을 초남성적 공간으로 재구성한다"는 지적이다.

우크라이나인 어머니와 벨라루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고, 벨라루스에서 대학을 나왔고, 벨라루스에서 기자 활동을 한 알렉시예비치가 노벨 문학상을 탔을 때, 당시 벨라루스 대통령이었던, 알렉산더 루카센코는 "그녀의 작품은 조상들이 피로 만든 승리를 희화하고, 오염시키고 있다. 승리의 역사였던 전쟁을 그리고 조상들의 숭고한 희생을 못 보이고 있다"고 평가절하 하면서 반민족적이라고 했다.
 
 
루카셴카 벨라루스 대통령. 1994년부터 대통령이다.
 루카셴카 벨라루스 대통령. 1994년부터 대통령이다.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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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씨는 "이 작품은 전쟁 전과 후 사이에 여성이 어떤 식으로 포함이 되고 배제되는지를 정말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컨텍스트이자 텍스트"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전쟁에서 필요할 때는 여성들에게 참여해 달라고 국가가 요청했지만, 생리대가 부족해서 행군하면서 생리혈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참혹한 현장들 그리고 전쟁의 끝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목소리들, 적군에 의해서 강간을 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상황들. 전쟁이 끝난 다음에 자신의 국가로 돌아가야 하는데 혹여 가문을 욕보일까 봐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목소리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전쟁이 끝난 다음에 함께 피를 흘렸던 동료라고 인정하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 않고, 강인한 남성 국가를 만들지 않아서 어머니들이 전쟁에서 피해가 되었다며 남성성의 위해가 되는 것들을 모두 잊고 싶었다는 맥락들을 인터뷰에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전선의 소녀들 병사들 중에는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많았지만, 우리 눈에는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라는 대목을 예로 들었다. 
 
전쟁이 끝나자 그들[여군]은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처지가 됐소. 내 아내같이 똑똑한 여자도 여사 병사들을 좋게 보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은 그녀들이 남편감을 찾아 전쟁터에 간 거고. 그곳에서 연애질만 실컷 하다가 왔다고 믿었어요. 이왕 터놓고 얘기한 김에 하는 말인데, 실제로 소녀 병사들은 대부분 정숙한 처녀들이었어요. 순결한 처녀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더러운 오물도, 들끓는 이도, 시신들도...... 더 이상 안 봐도 되자 뭔가 아름다운 게 그리워지더군요. 뭔가 밝고 화사한 그런 게......아름다운 여인들......(<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중)

김지은씨는 이 대목 그 자체로 본다면 어떤 여성이기 때문에 지켜줘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동료라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남성들이 얘기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전장에서 같이 총을 나르고 포탄을 던졌던 여군이 아니라 모든 전쟁 단문으로부터 빠져나와 있는, 적군에 의해서 강간을 당하지도 않고, 피해를 받지도 않는 성모 마리아 같은 그런 순결하고 나를 정화해 줄 수 있는 그런 여성들만을 의미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와 두려움이 감춰져 있다. 하지만 여자들이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원치 않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선물하는 존재. 여자는 오랫동안 자신 안에 생명을 품고, 또 생명을 낳아 기른다. 나는 여자에게는 죽는 것보다 생명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 가혹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중)

덧붙여 이 작품의 마지막 대목에 여군이라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그 자체이며, 조국도, 민족도, 냉전도, 이념 체제에 있지 않으며 어떤 식으로 사람을 살려내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전쟁이라는 참혹함을 뚫고 희망의 목소리를 전하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이 시점에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의 상황에서도 아이를 출산해야겠다는 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또는 이념 체제라는 것들을 다 딛고 일어나서 도와주러 가는 여군의 모습들을 담았다는 점에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단순히 폭로와 고발에서만 그치는 작품이 아니라 "생명의 희망 또는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윤리성"을 말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집회에서는 이런 질의응답이 나왔다. 

- 전쟁을 소설화한 책이나 전쟁을 더 확장해서 알고 싶습니다.

"노라 옥자 켈러의 <종군위안부>라는 책이 있습니다. 같은 작가의 <여우소녀>라는 책도 추천합니다. 미군기지에서 성매매를 해야만 했던 여성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차학경의 <딕테>는 어떻게 여성적인 목소리를 냈는가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있었는데 정작 차학경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관심을 안 가졌습니다. 차학경이 강간당하는 과정에서 죽었다는 것을 <마이너 필링스>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와 <관통당한 몸>도 추천합니다."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인데요. 이런 상황 속에서 이렇게 시간을 내서 저녁에 참여해 주시는 분들의  의지나 목소리들을 생각해 봤을 때는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알렉시예비치에 관심을 두게 되었던 건 정말 사소한 거기도 했어요. 그때 당시에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에 그렇게 사람들이 열광했을까 하는 그런 그냥 순전한 호기심 같은 게 있었는데, 최근에도 불과 작년부터 유튜브나 OTT 서비스에서 유행했던 <가짜 사나이>라고 하는 프로그램들 그리고 강인한 남성을 요구하는 사회 능력주의 사회 현상들이 다 맞물려있습니다.

오늘날 전쟁은 비록 지금 우리의 영토에서 일어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서 멀리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언제나 전쟁이라고 하는 담론을 좀 항상 생각해 봐야 하지 않냐고 생각을 해봅니다.
 
오는 21일 저녁 8시에는 그림책 연구자이자, 큐레이터 그리고 폴란드어 번역자인 이지원씨와 <폴란드 작가들은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돕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온라인 집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나와우리'는 오는 31일까지 매일 저녁 8시에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하는
온라인 집회를 열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기원하는 온라인 집회 포스터
▲ peace for ukraine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기원하는 온라인 집회 포스터
ⓒ 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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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우크라이나, #러시아침공, #우크라이나전쟁,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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