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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심리학 책에서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감정은 공포도 슬픔도 아닌 '불안'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구체적인 연구 사례를 보지 않아도 나는 그 말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남동생이 귀농을 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우울증이 올 정도로 힘들어했다. '우울증이라니... 엄마가 어떤 사람인데... 늙었나... 기력이 약해졌나...' 별의별 생각을 다 했는데, 이제 와 보니 그게 다 '불안감' 때문이었다. 동생의 상황이 나빠질까봐 당시 엄마는 몹시도 불안했던 것이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계속된 유산으로 힘들었을 때, 아이를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그 '불안감'은 내 평생 가장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불안감은 공포와 슬픔을 포괄하는 가장 힘든 감정이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에 '불안'은 선택이 아닌 기본 옵션처럼 느껴진다. 전염병에 걸릴까봐 불안한 마음을 넘어서 그 이상의 불안감이 도깨비 가시처럼 덕지덕지 들러붙는 것만 같다.

만약 내가 미혼이거나 결혼 적령기라면 타인과의 연애가 가능할까? 반려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을 테고, 기저질환이 있는 가족이 있었다면 그들의 안전을 걱정하느라 내내 불안에 시달렸을 것이다.

내 안에 덕지덕지 들러붙은 학습 불안감
 
2021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이 23조 4천억원으로 2007년 조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1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이 23조 4천억원으로 2007년 조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 송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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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생 아이를 둔 학부모인 만큼 아이에 대한 불안지수가 상당히 높았다. 특히 아이의 학업에 관한 부분은 천하태평이 특기인 나조차도 어쩔 수 없을 정도였다. '온라인 수업만 내리 했는데 괜찮을까?' '내 아이가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내 아이만 낙오되는 건 아닐까...' 같은 불안감.  

이것이 내 개인의 불안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집단 불안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코로나가 정점일 때 생생히 목격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는 안 보내도 다들 학원은 보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이의 면역력을 믿었으면 믿었지, 아이의 학습력을 믿기엔 불안한 엄마 중 하나였다.

고백하자면 이 위험하다는 코로나 시기에 아이들 학원을 하나씩 더 추가했다. 한 번 놓치면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수학에 숭숭 구멍이 뚫린 것을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사교육비 증감률, 2021년은 역대급 증가,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로 산출
 사교육비 증감률, 2021년은 역대급 증가,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로 산출
ⓒ 송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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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를 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이 23조 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 수치를 보면서 나는 왠지 모를 동질감과 짠함을 느꼈다. 한마디로 역대급으로 학부모들의 마음이 나처럼 불안했다는 증거일 테니까. 이유도 비슷했다. '사교육을 받는 목적으로는 학교 수업 보충이라는 응답이 절반이 넘었고, 선행 학습이 그 뒤를 이었다(출처 교육뉴스 브리핑)'고.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학교 수업에 뚫린 구멍을 사교육으로 메우는 구조라는 것 말이다. 사교육이 필수처럼 여겨지는 이 시대에 과연 정당한 경쟁은 무엇인가? 또 마땅한 교육은 무엇인가? 골몰히 생각게 하는 지점이었다. 

아이의 학습 경쟁력이 부모의 자본력으로 결정된다? 내가 만약 교육비로 지출할 돈이 없다면? 공교육에 기댈 수밖에 없는 문화 소외지역에 산다면? 학습격차가 빈부의 격차이고, 빈부의 격차가 기회의 격차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의 흉측한 뼈대를 본 것 같아 솔직히 좀 짜증이 났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더 자세히 말하면 입시와 가까워지면 질수록 내가 그간 생각해 왔던(공교육+가정학습=충분) 교육관은 구술로 전해오는 어딘가에 있다는 전설의 새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주도, 교과중심의 공부... 말이야 좋지. 실제로 머지않아 내 아이가 입시 선상에 놓인다 생각하면 전쟁이 나도, 역병이 돌아도, 뒤처지면 안 된다고 조마조마해 하며 용하다는 학원을 샅샅이 뒤지는 편이 훨씬 현실적일 것이다. 

언제까지 이럴 수밖에 없을까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통지일인 2021년 12월 10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합포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이 성적표를 받은 후 확인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통지일인 2021년 12월 10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합포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이 성적표를 받은 후 확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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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편에게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세상이 진짜 많이 변했는데 변하지 않은 것이 딱 하나 있다고. '자기의 마음'이냐고 능글대던 남편에게 "아니, 한국 입시"라고 말했더니 완벽한 정답이라며 공감했다. 

1998년도 내가 입시를 치를 때와 2022년 현재의 입시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세상은 하루하루 눈돌아가게 휙휙 바뀌어 가는데 아이들의 학교 교육, 입시 문화는 방부제로 보존한 양 놀랍도록 똑같은 모습이다. 똑같이 수능을 보고, 똑같이 점수로 줄 세우기 하며, 똑같이 부모들이 불안해한다. 그리고 똑같이 사교육을 뺑뺑이 시킨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학교에서조차 사교육을 당연시하고 아이들의 학습문제를 각 가정의 문제로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에 '믿고 맡길게요'라고 했더니 학교에선 '아니 그 집은 학원도 안 보내요?' 하며 면박을 당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옛날엔 학습 편차가 심한 아이들을 나머지 공부도 시키고 그러지 않았나요? 선생님이 따로 관리하거나 맞춤 과제를 내주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제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염치가 돼버린 지 오래다(지역마다 혹은 학교에 따라 교과보충 특별프로그램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나는 직접 겪어보지 못했다).   

나머지 수업이 있던 옛날로 회귀하자는 말이 아니다. 2022년엔 사교육 의존성이 당연시되고 사회 전체가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는 상황이라면, 앞으로는 다른 대안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을 뿐이다. 

예를 들면 경제적 어려움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가정에는 교육비를 지원하는 바우처를 제공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지역자치단체에서 이미 시행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는데, 체감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학원가가 없는 지역에는 보충 공부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여건을 제공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누구도 불안해 하지 않는 '21세기다운' 교육정책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빠듯하게 나마 학원비를 낼 수 있고 가까운 거리에 학원이 있으니 다행이랍시고 역병 속에서도 아이들을 꾸역꾸역 학원에 밀어 넣는다. 그래도 너무 뭐라 하지 마시길...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부모 아니 학부모의 마음이란 것도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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