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완도신문

관련사진보기

"여기는 관제탑, 무슨 일인가?"
"우리의 위치를 잃어버렸다. 육지도 태양도 보이지 않는다!"
"무슨 소린가? 서쪽으로 계속 방향을 잡아라."
"서쪽? 서쪽이 어딘지 모르겠다. 바다의 모양도 다른 곳과 다르다. 아니? 이 계기들이 왜 제멋대로..."

 (무전 끊김)


1945년에 실종된 폭격기들이 실종 직전 관제탑과 나눈 교신 내용이다. 방향과 위치와 속도를 알리는 계기들이 고장나고 무전마저 갑자기 끊어졌다.

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깐이라도 교신했던 사고 선박의 선원들은 한결같이 나침반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각종 장비가 마비되었다고 했다. 

더 오싹한 건 사고가 나던 순간 날씨가 대부분 맑고 화창했었던 점, 발견된 선박들이 전혀 파손되지 않은 채 하나같이 멀쩡했다는 점이다.

원인도 불확실하고 실종자도 발견되지 않으며 배나 비행기의 자해조차 발견되지 않은 블랙홀 같은 곳. 만화, 영화로도 만들어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버뮤다 삼각지대' 이야기다. 버뮤다 해역의 비밀은 게놈 지도가 완성된 21세기에도 여전히 미스테리다.

대한민국에도 중남미 카리브해의 버뮤다 삼각지대와 같은 공간이 있다. 완도 청산도다.
  
청산도 버뮤다 삼각지대
 
ⓒ 완도신문

관련사진보기


일제강점기인 1945년 3월 해남 황산면 옥매광산의 광부들은 전쟁 말 제주도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다. 당시 200여 명의 광부는 일제에 의해 제주도로 끌려가 동굴을 파거나 진지 작업에 동원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45년 8월 20일 해방 이후, 노역에 끌려갔던 광부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타고 새벽 완도 청산도 앞 해상을 지난던 중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선박이 침몰해 118명이 숨졌다.

배를 타고 집에 돌아간다며 기뻐했던 광부들은 배가 불에 타는 바람에 바다로 뛰어들었고 다른 배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일본 초계정이 다가와 일본인만을 태우고 가면서 수몰된 사건이다. 현재 해남 지역에선 그때의 진상을 밝히며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최근에도 완도해경이 청산도 해상에서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던 레저보트 탑승자 2명을 구조했다는 보도가 나올만큼, 이곳 해역은 기관 고장이나 원인 모를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옛 어른들은 "일제강점기 시절 삼각지대를 지나가던 일본 군함이 안갯속에 길을 잃어 서로 충돌하기도 했다"며 "지금도 안개가 끼면 작은 배들끼리 부딪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한다.

이러한 사고의 원인으로 청산면 권덕리와 청계리 사이에 있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지목됐다. 호랑이가 웅크린 형상으로 바위에 구멍이 뚫려 있어 바람이 불면 범 우는소리가 난다고도 하는 범바위가 원인이라는 것. 
  
범바위에서 남동쪽 1.3㎞ 해상에는 상도라는 무인도가 있고, 이 무인도에서 청산도 남서쪽 권덕리마을 끝까지는 1.6㎞, 마을에서 범바위까지는 직선거리로 1.2㎞로 이 세 지점을 잇는 삼각형 안쪽이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범바위의 자력이 작용한다고 한다. 

범바위가 가진 기운
 
ⓒ 완도신문

관련사진보기

  
항상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의 자침 또한 이곳에만 오면 빙글빙글 돌아 예로부터 주민들은 이곳 범바위를 신령스럽게 생각해왔다. 삼라만상에 정령이 있다는 생각은 원시시대부터 있어온 세계관이다. 생물체는 물론이고 무생물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 또는 존재'가 깃들여 있다는 생각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산과 강, 돌 하나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었다. 신령스러운 바위를 숭배했던 거석문화의 잔재가 아직도 우리 주변에 드문드문 남아 있는데, 기 측정가들은 이런 곳에선 신비한 기운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풍수가들은 "우리 선조들은 좋은 땅에 묻혀야만 자신의 대(代)에서 안녕과 부귀영화를 누릴 뿐만 아니라 자기가 죽은 후에도 후손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해 에너지 상승작용이 센 곳을 길지라 여기고 이런 곳에 묘를 쓰거나 집을 지었다"며 "특히 기운이 센 곳은 바위가 서 있는 곳으로, 이런 곳은 무당이나 염원하는 소원을 가진 일반인들이 자주 이용해왔다"고 설명했다.

기 측정 전문가로 알려진 김수영씨는 "지구는 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보편적인 기가 흐르는데, 청산도 범바위의 기(氣)는 일반 명당처에서 측정되는 기보다 훨씬 강력하다"며 "생기의 특성상 효도하고 남에게 베풀어 적덕을 쌓은 사람들이 이곳의 기를 받으면 운 작용이 크게 상승할 것이다"고 전했다. 

굳이 좋은 기가 아니더라도 범바위 전망대에 올라서면 하늘도 바다도 치우침 없이 서로 조화롭고 고르게 공간을 나누어 가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청산도 범바위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덤
 
ⓒ 완도신문

관련사진보기

  
말 그대로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하늘은 바다를 닮고, 바다는 하늘을 닮아 있다. 

엷은 해무가 끼는 날엔 아련하고 아스라히 펼쳐지는 청산도 바다의 비경을 실컷 감상할 수 있다.

높이 솟은 절벽 위 낭길까지 불어오는 바다의 살가운 미풍을 맞으며 해변의 오솔길, 울창한 숲길, 오르막 산자락 길 등 해안을 따라 걸으면 발치에 낮고 작게 피어난 들꽃들, 특히 보라색 붓꽃이 어찌나 고운지 그건, 청산도 범바위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덤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완도신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완도신문은 1990년 9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참 언론을 갈망하는 군민들의 뜻을 모아 창간했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는 사훈을 창간정신으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의 길을 걷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