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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신역 출장길
▲ 행신역 행신역 출장길
ⓒ 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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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주 출장을 다닌다. 작년에 이직한 회사에서는 더욱 출장을 다닐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근무하는 곳은 서울이지만 본사 사무실은 지방이다. 게다가 본부 내에 소속된 팀이 본사에 근무하고 있으니 싫든 좋든 간에 조직 관리와 유대감을 위해서는 종종 지방 사무실로 출근하는 게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다행히 본사 사무실이 소도시도 아니고, KTX역에서 그리 멀지 않아 얼마전 서울 사무실에 출근하는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행신역으로 나섰다. 행신역이 생기고 나서는 지방 대도시 출장은 많이 수월해진 편이다. 차 배차 간격이 자주는 아니지만 시간만 잘 맞추면 오늘 같이 당일 출장을 다녀오기에 너무도 편리해졌다.  

열차 시간보다는 조금 여유 있게 행신역에 도착했고, 출발역이다 보니 열차는 출발 십오 분 전부터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난 출발시간 십 분 전에 열차를 탔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동 중에 확인할 자료와 메일을 보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고, 무선 네트워크 연결 등의 기본 세팅을 완료 후 잠시 열차 밖을 내다봤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날씨가 조금 풀려서 그런지, 기분 탓인지 사람들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한 명, 두 명 타던 승객들 사이에 아이 둘을 데리고 온 한 여성분이 보였다. 잠시 뒤 그 여성분과 아이 둘은 내가 타고 있던 열차 객실로 올랐다. 객실에 들어선 여성분은 좌석 번호를 확인하더니 이내 아이 둘을 내가 앉은자리의 앞자리에 앉혔다.

잠시 뒤 큰 아이에게 무어라고 귓속말을 한 후 어린 딸아이를 앉아주고는 그 여성분은 열차에서 하차했다. 그 광경을 아무렇지 않게 보던 난 아이들의 엄마로 보이는 그 여성분이 함께 열차를 타고 가지 않음을 알고서는 적잖이 놀랐다. 이내 난 앞 좌석에 앉은 아이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큰 아이는 잘돼 봐야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로 보였고, 작은 아이는 많이 봐야 일곱, 여덟 살이 고작이다. 달랑 두 아이만을 남겨놓고 객차 밖에서 아이들을 향해 손 흔드는 여성분이 엄청난 강심장의 소유자로 보였다. (아마도) 엄마를 향해 무심하게 손을 흔드는 두 녀석이 오히려 더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열차가 떠나기 전 큰 아이는 손이 선반에 닿지 않았지만 의자를 밟고 올라가 익숙한 모습으로 자신의 가방과 동생의 가방을 올렸다. 그러고서는 동생의 재킷을 벗겨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자신은 어느새 스마트폰을 붙들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처음 회사를 입사해서 혼자 고객사를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한두 번은 선임과 함께여서 그닷 큰 부담 없이 방문했던 고객사였고, 고객이었다. 하지만 막상 혼자 방문을 하지니 두려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지원할 내용에 대해서 여러 번 연습도 했고, 숙지도 했지만 회사를 나오며 드는 생각은 '실수하면 어떡하지', '도망치고 싶다' 등의 부정적인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내면의 갈등 속 여러 차례 고객사를 방문하면서 어느 정도 업무도, 고객도 익숙해지고 나서야 그런 두려움은 사라졌다.

처음 하는 업무를 알아서 처음부터 척척해내고, 적응 기간 없이 예전부터 했던 익숙한 일을 하듯이 잘해나가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늘 처음 겪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나, 어려움은 당연한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신의 일에 더 신중해지고, 겸손해지기 마련이다. 익숙해지면 두려움을 가졌던 자신이 조금은 우스워 보이겠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고개를 주억거리고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예전 직장 후배로부터 감사의 말을 전해 들었다. 그 후배는 내가 첫 팀장을 수행했던 당시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었다. 후임은 선임들을 몇 번 따라나서며 업무를 익힐 때쯤 팀장이던 나와 함께 고객사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여러 고객사와 팀 관리 업무로 업무 부하에 힘이 부치던 난 조금은 걱정은 됐지만 입사한 지 세 달 밖에 되지 않은 후배에게 프로젝트 진행 중이던 고객사를 맡겨놓고 다른 업무에 바쁜 날들을 보냈다.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던 후배는 고객사에서 이리 깨지고, 저리 배우면서 꾸역꾸역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당시만 해도 후배는 내게 악감정이 쌓이고, 미워도 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좋은 경험을 해준 내게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경험하고 나니 그리 두려움만 가져서 될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고 했다.  

모든 일은 항상 처음이 있고, 두려움만 가져서는 아무것도 경험할 수 없다. 그런 경험은 꼭 밥벌이하는 경제 활동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사람을 만나는 관계에서도 처음이 있을 수 있고, 사랑을 하는 것도 첫사랑이 있다.

처음이라는 의미가 주는 건 여러 감정이 혼재될 수밖에 없다. 두려움도 있고, 설렘도 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다 보니 모든 일에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일이 점점 줄어든다. 이젠 그 설렘이나,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그리워질 나이가 되고 있나 보다.  

대구까지 가는 출장길에 난 대단한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이 하는 행동을 봐서는 처음은 절대 아닌 듯싶었다. 하지만 아이들도 오늘처럼 처음 열차를 탔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보호자 없이 첫 열차를 탔을 때는 아이들에게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었겠지만 그렇게 경험이 쌓이다 보니 아이들도 어느새 익숙해진 모습이다.

난 함께 열차를 탄 대단한 아이들의 사소한 움직임조차 모두 눈에 담아봤지만 특별히 지겨워하거나, 불편해하는 모습 없이 아이들도 대구까지 무사히(?) 이동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다행히 아이들도 목적지가 대구인 듯해서 난 짐을 내리는 거며 놓고 내린 작은 아이의 장갑까지 잘 챙겨주며 마지막 조심히 가라는 안부까지 전하고 대구 사무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한 동안 그 아이들이 가끔 생각이 날 듯하다. 그 아이들의 부모는 어떤 심정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내게는 대단한 녀석들로 당분간 기억에 머물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브런치에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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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일상과 행복한 생각을 글에 담고 있어요. 제 글이 누군가에겐 용기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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