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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민음사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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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생겨난 아픔은 삶을 잠식할 만큼의 큰 상처가 되어 가슴에 남기도 한다. 그것이 가족 사이에서 일어난 갈등이라면 더욱 그렇다. 가족은 나와 가장 가깝고 친밀한 관계이지만 바로 그렇기에 서로에게 더 아픈 상처를 안겨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는 유진 오닐 자신의 불행했던 가족사가 그대로 담긴 자전적 이야기다. 이 가족은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면서 처참히 무너져간다. 이 중에서 막내아들 에드먼드가 오닐 자신이다. 오닐은 자신의 이런 아픈 가족사를 생의 말년에 이르러서야 들춰내기로 결심한다.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오닐은 "이 글은 내 묵은 슬픔을 눈물과 피로 쓴 기록"이라고 썼다. 아내는 그런 오닐이 글을 쓰고 나올 때면 눈에 띄게 수척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한다. 오닐에게 아픈 과거를 글로 적는 일이 얼마나 큰 슬픔을 동반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글을 완성하고 난 후 오닐은 자신의 사후 25년 동안 이 글을 발표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고 3년 후인 1956년에 글은 세상에 나온다.

작품은 티론 가족이 여름 휴가차 들른 별장에서 머무르는 하루 동안의 대화이다. 연극배우인 아버지 티론과 마약중독자인 어머니 메리, 알코올 중독자인 맏아들 제이미 그리고 폐병을 앓고 있는 막내아들 에드먼드가 그들이다.

가족들은 아침부터 자정까지 쉬지 않고 서로를 비방하는 말들을 쏟아 놓는다. 상대의 지난 잘못을 질타하고 지금 자신의 처지를 원망한다. 오고 가는 폭력의 말들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서로의 폐부를 찌르고 이내 피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자정이 되고 싸움과 갈등은 잦아들어 침묵의 여로(旅路)에 잠긴다.

아버지 티론은 자기중심적인 인물로 가족에게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는 구두쇠다. 돈이 아까워 아픈 아내가 싸구려 약물을 먹게 내버려 두고 그러다 약물에 중독되자 아내를 치료해 주지 않고 방치했다는 이유로 아들들의 비난을 받는다. 아들들은 아버지를 "돈밖에 모르는 고약한 노랭이"라고 힐난한다.

폐병에 걸린 동생 에드먼드를 값싼 요양원에 보내려 한다는 것 때문에 제이미는 아버지를 증오한다. 자신에게 아버지는 돈이 생기면 땅만 사들여 재산을 불리는 것에만 혈안이 된 인간일 뿐이다. 가족을 위해서는 그 어떤 노력도 희생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제이미는 그런 아버지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다.

아버지 또한 제이미가 못마땅하다. 아버지 눈에는 그가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하게 사는 모습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아버지에게 제이미는 자신의 돈을 갖다가 쓰면서도 고마움도 모르고, 살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삶을 갉아먹기만 하는 무능력하고 한심한 게으름뱅이일 뿐이다.

갈등은 이들 두 부자(父子)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몸이 약한 동생 에드먼드는 가족들이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슬퍼하고, 어머니 메리는 결혼 때문에 젊은 시절 수녀나 피아니스트가 되려 했던 꿈이 깨져버렸다고 신세를 한탄한다. 자신이 마약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모두 가족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족들은 그런 마약쟁이인 어머니를 둔 게 창피하다고 불만을 늘어놓는다.

아버지는 아내의 마약 중독은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라면서 급기야 에드먼드를 향해 "너만 태어나지 않았으면..."이라는 말로 아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분노가 폭발한 에드먼드는 아버지에게 달려든다.

이렇게 티론의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상처만을 주고받는 존재들이다. 그러다 그들은 지쳐 어설픈 화해를 하고 또다시 서로를 미워하면서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만다.

여기서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려 드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서로에게 저마다 얼마간의 잘못이 있고 동시에 얼마간의 기쁨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서로에 대한 평가와 판단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생겨난 슬픔과 아픔을 어떻게 치유하는가의 문제가 아닐까.

오닐이 시도한 것은 되려 그 상처의 기억을 되살려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었다. 아물지 않은 기억을 불러오는 일은 그 아픔과 다시 마주해야 하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테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갈 수 없었기에 오닐은 그 길을 마다하지 않고 마침내 묵혀둔 상처의 얼굴과 대면한다. 이 책이 바로 그 증거이다.

오닐은 먼저 그 시절로 돌아가 그 자신이 가족이 되어보기로 한다. 가족과 함께 살았던 그 더럽고 축축했던 여관방으로 돌아가, 자신이 그 시절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동생이 되어보는 것이다. 자신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아버지, 마약에 해롱거리는 어머니, 술에 빠져 방탕한 삶을 사는 형, 병마와 싸우는 우울한 동생이 되어 그들이 받는 고통을 자세히 전달한다.

그곳에서 오닐은 그 누구보다 가족에게 이해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약한 영혼들을 만난다. 가족의 사랑을 받기 위해 눈물로 호소하고 주장하는 인간들과 맞닥뜨린다. 그들은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고 싫어했던 아버지, 어머니, 형, 동생이다. 마찬가지로 자신 또한 그 무엇보다 가족의 애정을 필요로하는 어린 아이였다는 것을 절감한다. 이를 통해 오닐은 자신과 가족 모두가 서로의 인정에 목말라 하는 작은 존재였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그럼으로써 오닐은 자신을 포용하고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베풀어야 하는 가족이 아닌, 먼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하나의 인간으로 가족을 이해한다. 그들 또한 가족의 따뜻한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개체로서의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러자 뜻밖에도 그곳에서 가족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피어나는 것을 느낀다.

오닐에게 글쓰기는 이렇게 상처를 대면하고, 그 상처의 정체를 밝히는 작업이었다. 아픔을 글로 자세하게 쓸 때 그 아픔은 더 이상 아픔이 아니었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와 연민으로 나아갔다. 인간의 마음은 뭉쳐진 실타래와 같아서 그것을 한올 한올 풀어낼 때 선명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모호한 고통은 인간을 참혹함으로 이끈다. 이해받지 못한 상처는 곪아 터져 자신을 덮치게 마련이다. 구체적인 고통의 나열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자신을 아픔으로부터 건져낼 수는 있다. 이해받은 상처는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된다. 아픔을 자세히 쓰는 일이 이토록 중요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작가의 블로그에도 올라갑니다.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 지음, 민승남 옮김, 민음사(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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