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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 책표지.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 책표지.
ⓒ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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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원숭이가 죽은 새끼를 품고 다닌 최장 기간은 17일로, 그사이 조그마한 시신은 부패해 벌레가 꼬이고 지독한 악취를 풍겼다. 다른 원숭이들 대부분은 그 어미 원숭이를 피했고, 어미 원숭이는 부패하는 시신에 흥미를 드러내는 나이 어린 원숭이들을 쫓아버렸다. - 133p  

예전에 황제펭귄이 죽은 새끼를 품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꽁꽁 얼어서 미동도 하지 않는 새끼를 부리로 당겨 와 품는 모습을 보고 일부 사람들은 말했다. 황제펭귄은 슬퍼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동물도 슬픔을 느낄까. 혹시 우리가 동물을 의인화하여 동물에게 인간과 같은 슬픔이나 사랑 등의 복잡한 감정을 적용하고 그들의 상태를 함부로 정의해버린 것은 아닐까. 사실은 좀 더 단순한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책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는 황새, 기러기, 돌고래, 고래, 원숭이, 물소, 곰, 거북이, 고양이, 개, 토끼, 말 등 동물들이 죽음이나 상실 앞에 내보인 행동 양상을 고찰하며, 과연 그러한 행동을 인간이 말하는 '애도'나 '슬픔'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 면밀히 검토한다.

동료의 시신을 살피고 돌아간 들소 무리, 죽은 새끼를 안고 다니는 어미 원숭이, 죽은 새끼를 수면 위로 들어올렸다가 다시 물속에 밀어넣기를 반복하는 돌고래, 같이 생활하던 말의 무덤 위를 2주 동안 앞발로 긁어댄 말, 죽은 코끼리의 뼈를 어루만지기 위해 찾아온 코끼리 등 동물이 죽음이나 상실에 내보인 행동은 우리 상상 속의 범주를 넘어선다.
 
엘리너의 죽음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은 하와이안 아일랜드라는 가족의 마우이라는 코끼리였다. 마우이는 코를 뻗어 냄새를 맡고 엘리너의 시신을 더듬더니 코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 맛을 봤다. 오른발로 쳐들고 유심히 살피더니, 왼발과 코로 엘리너를 쿡쿡 찔러보고 잡아당겼다. 전날 그레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엘리너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다음 마우이가 한 행동은 새로운 것이었다. 마우이는 엘리너의 시신을 바라보다가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이 행동들은 모두 8분 동안 계속됐다. - 110p

동물의 감정은 쉽지 않은 연구 주제이다. 종마다 보여주는 행동 양상이 달라서 모든 사례가 엄격한 정의 기준에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고, 같은 종이라 하더라도 일관된 행동을 보여주지는 않아서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나 '슬픔' 등의 감정 용어로 정의하기에는 애매할 때가 많다. 동물의 감정을 수용한 과학 문헌도 많지 않다.

그렇기에 동물의 슬픔을 연구한 책은 그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다. 저자는 동물들의 행동을 검토하는데 그치지 않고, 동물의 자해 행위와 자살 행위를 살펴보고 인간의 애도 행위와도 비교해 본다.

이러한 작품 구성은 동물의 감정이나 동물의 사고를 저평가하면서 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우리들에게 깨달음을 주고 시야를 확장시키는 경험을 선사한다.
 
우리는 인간의 말로 슬퍼한다. 하지만 동물의 몸, 동물의 손짓, 동물의 몸짓으로도 슬퍼한다. - 303p

슬픔은 인간만의 전유물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면서도, 그들의 행동을 함부로 '슬픔'이나 '애도', '자책감' 같은 말로 정의하는 데 신중을 기한다. 인간의 슬픔은 동물의 슬픔과 다르다. 같은 동물이라도 닭의 슬픔은 염소의 슬픔과 다르고, 침팬지의 슬픔과도 코끼리의 슬픔과도 다르다.

평소에 동물에 대해 무관심했던 사람, 동물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가 동물의 슬픔을 살펴보기 위해 수집한 자료만 살펴봐도 흥미롭지만, 고찰을 통해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묵직한 메시지는 우리의 선입견을 깨트리는데 충분한 도움을 줄 것이다.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

바버라 J. 킹 (지은이), 정아영 (옮긴이), 서해문집(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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