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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현대 입구 '모리츠' 전시 대형 홍보물. 제목: '안드로메다 은하수(Andromeda)' 200×200cm 2021.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 받는 작품이다
 갤러리 현대 입구 "모리츠" 전시 대형 홍보물. 제목: "안드로메다 은하수(Andromeda)" 200×200cm 2021.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 받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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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성 화가 '사빈 모리츠(Sabine Moritz)' 전이 4월 24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다. 아시아, 첫 개인전이다. 그녀는 1969년 동독 크베들린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쾰른에서 작업 중, 테이트모던 등에 작품이 소장됐다. 명문 뒤셀도르프 미대를 다녔고, 그림 개당 5백억 이상으로도 팔리는 세계적 거장 리히터(Richter)의 제자였다. 이젠 아내가 되었다.

그녀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다. 유럽 주요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었다. 이번 전에서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제작한 구상과 추상, 에칭 연작 등 총 50여 점이 소개된다. 그녀 작품은 나무와 바람과 바다 등 자연에서 출발해 신화와 우주로 나아간다. 폭발하는 색의 파장과 격동 넘치는 붓질의 리듬감은 관객의 내면을 파고든다.

이번 부제는 '휘황한 달(Raging Moon)'이다.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D. Thomas)'의 시에서 가져왔다. 명랑하지만 쓸쓸한 달을 보듯 그렇게 자연의 인상을 화폭에 우물처럼 길어 올린다. 여기서 예술이란 과시나 영예가 아니라, 신비한 영혼의 떨림과 공명이라는 메시지다.

과연 풍경화란? 그저 대지의 꽃이나 하늘의 별 등 우주의 얼굴을 그리는 것인가? 미술이론가들 보기에 풍경은 존재하는 게 아니라 탄생하는 것이다. 하나의 풍경이 잉태하려면, 화가는 자연과 우주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가치를 창조해내야 한다. 그렇다면 이 화가의 경쟁력과 차별성은 뭔가? 그건 동독·서독 지역도 구상·추상 장르도 뛰어넘는 데 있는 것 같다.

감상자, 그림 속으로 유인
 
사빈 모리츠(Sabine Moritz) I '즐거운 우울(Cheerful Spleen) III' 각각 100×100cm 종이 위에 유화 2022
 사빈 모리츠(Sabine Moritz) I "즐거운 우울(Cheerful Spleen) III" 각각 100×100cm 종이 위에 유화 2022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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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회화에서, 관객 참여 없이 작품의 완성은 이뤄질 수 없다고 본다. 화가는 "내 그림을 통해 감상자가 실제로 보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최대한 자유를 주고 싶다. 색은 나에게 상징이나 감상자가 스스로 해석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감상자가 "그림으로 들어가 거기서 걷고 감상하고 자유롭게 사유하라"고 권유하는 것 같다.

화사한 봄을 그린 '베르날(Vernal, 2021년 작)'을 보자. 봄을 꽃과 나무의 만개로 상징한 이 작품은 붉은색, 파란색, 연두색, 노란색으로 화면을 덮어 그 형상을 지워지는 시각적 놀이를 하는 것 같다. 관객 자신도 모르게 그 현란한 변주와 시각적 착시에 빨려 들어가게 한다.

빅테이터, 기억, 감각 풍성하게
 
작가 소개 영상 속 그녀의 작업실. 작품을 설명하는 화가 '사빈 모리츠' 2022
 작가 소개 영상 속 그녀의 작업실. 작품을 설명하는 화가 "사빈 모리츠" 2022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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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나태주는 2012년, 풀꽃을 보면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전문)라는 짧은 시를 발표했다. 들풀을 구멍이 날 절도로 집중해 봐야 그 인상을 빅테이터에 축적해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모양이다. 미술가도 과학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리츠는 말한다. "끊임없이 본다는 것이 기억과 감각을 풍성하게 한다"고. 추상에는 이런 관찰이 더 필요할 수 있다. 그녀에게 24시간도 모자라 보인다. '시각 열기' 위한 데이터 축적과 뜸들이기가 필요하리라. 거기서 대상을 창조적으로 꿰뚫어 보는 경지에 닿게 되나 보다.

영국의 시각 이론가 존 버거(1926~2017)는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라면서 "이미지는 문학보다 더 정확하고 풍부하다. 작품의 상상적 차원이 풍부할수록 그걸 만든 예술가의 가시적 세계에 대한 경험을 공유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봤다. 그는 사람들에게 사물을 보는 방식을 가능한 기존의 방식이 색다르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라고 권한다.

전쟁과 숫자 '4'
 
사빈 모리츠(Sabine Moritz) I '3월(March) 1-2-3-4' 각각 100×100cm 유화 2021
 사빈 모리츠(Sabine Moritz) I "3월(March) 1-2-3-4" 각각 100×100cm 유화 2021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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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가는 동양 정서와 다르게 '4'라고 숫자에 탐닉한다. 계절도 4계절이 있고, 리듬에도 고저장단 같은 4개가 있고, 우주에도 물, 불, 흙, 공기처럼 4요소가 있다. 이번에 4계절 연작 시리즈, 4개 세트로 그린 '3월(위)' 등 연작 시리즈를 나란히 선보인다. 이 화가에게 4란 죽음, 허무, 전쟁, 트라우마 등을 극복하는 이상적 세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다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고, 지구촌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이런 전쟁을 예상했나. 최근 화가는 잠재적 혼란 갈등 군사 행동 상징하는 전투 헬리콥터(아래)를 그려왔다. 헬리콥터를 저렇게 우아하게 그리다니, 무심의 경지에 도달한 듯싶다. 그런데 왜 헬리콥터인가(?). 그녀 말에 의하면 2001년 9·11 테러와 관련 있단다.
 
사빈 모리츠(Sabine Moritz) I '바다 왕(Sea King)' 99, 56×80cm 2017. 이번 전시에는 다른 작품이 소개되다
 사빈 모리츠(Sabine Moritz) I "바다 왕(Sea King)" 99, 56×80cm 2017. 이번 전시에는 다른 작품이 소개되다
ⓒ Sabine Mor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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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의도적이기보다는 우연성이 작용한다고 할까. 잘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작전 중 군인과 죽어가는 사람들, 파괴된 도시와 그 상공을 배회하는 헬리콥터, 활주로를 오르내리는 비행기, 강과 바다를 순항하는 군함이 보이는 것 같다. 스냅사진, 다큐멘터리, 영화의 스틸컷처럼 쉽게 잊히는 역사적 폭거를 가시화해 우리에게 경각심을 준다.

이런 의식 속에 이 화가의 어린 동독 시절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흐릿하고 가변적이고 덧없는 추억을 도상으로 이끌어낸다. 이는 어찌 보면 이 화가의 '망각에 대한 항의(protest against forgetting)'이자, '전쟁과 죽임 문명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

회화, 허무와 죽음의 극복
 
사빈 모리츠(Sabine Moritz) I '국화와 해골(Chrysanthemums and Skulls)' 유화 70.5×91.5cm 2015
 사빈 모리츠(Sabine Moritz) I "국화와 해골(Chrysanthemums and Skulls)" 유화 70.5×91.5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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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미술사 특히 17세기 말 네덜란드 페인팅에서 '허무와 죽음'이 큰 주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 기억하라)'와 '바니타스(Vanitas 모든 게 허무)'가 그거다. 그녀 역시 이 전통에 충실하다. 위 '국화와 해골'이 바로 그런 그림이다. 2013년 스위스 미술평론가 'H.O. 오브리스트(Obrist)'는 그녀 회화를 "과거의 덧없는 충동을 묘사했다" 평한 이유다.

허무, 죽음, 전쟁의 상흔은 그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동독 기억과 서독의 풍경이 만나 변주하면서 생성되는 추상화다. 분단 등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경험한 독일 화가라 그런가, 우리 정서와도 잘 맞는 것 같다. 마치 우리의 아픔도 치유할 모양새다.

그 찬란한 색의 향연이 놀라운 감흥을 일으킨다. 화가의 오랜 사유와 열정 끝에 나온 것이라 그런지 우리에게도 안정감과 균형감을 준다. 아니면 2015년 12조 투입해 시리아 난민 100만 명을 품은 독일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 자신감도 한몫했나.

'기억'의 파편들
 
사빈 모리츠(Sabine Moritz) I '겨울(Winter)' 180×150cm 2021
 사빈 모리츠(Sabine Moritz) I "겨울(Winter)" 180×150c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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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그리는 방식은 흥미롭다. 처음엔 막연해 한참 바라보다 뭔가 떠오르면 색의 표면이 짜지고 붓이 서서히 움직인다. 마침내 울림이 몰려오면 작품의 완성을 향해 달린다. 스케치 없이 그리기에 그 결과는 예측 불가능하다. 평상시, 빅테이터를 충분히 저장해야 한다.

이 화가는 퍼즐 맞추듯 조각난 과거 '기억의 파편'을 맞추는 것 같다. 이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러데이션 효과에, 다층의 레이어(layer) 그리고 고흐의 '별밤'처럼 물감 두껍게 칠하는 임파스토 기법도 동원된다. 이런 모든 제스처가 합쳐져 하나의 작품이 된다.

현대미술에서 독일처럼 회화에 매진하는 나라도 없다. 화가는 자연과의 교감과 조응 속, 삶의 고뇌를 삶의 환희로 바꾼다고 할까. 범람하는 격정의 색채가 우리의 심신을 정화시키고, 거침없는 쏟아지는 폭포의 물줄기 같은 화폭이 우리 영혼마저 압도하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 현대 전시소개 홈 페이지
https://www.galleryhyundai.com/story/view/200000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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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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