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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관련하여 한국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짜뉴스들이 퍼지고 있는 것을 보고, 기사로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고자 합니다. 우크라이나 현지인의 인터뷰, 우크라이나 관련 역사 자료, 유로마이단혁명부터 현재까지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비롯한 각국의 뉴스 보도, 과거 우크라이나에서 직접 취재한 내용 등 근거를 바탕으로 씁니다.[기자말]
2월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루간스크 지방 세베로도네츠크의 버스에서 한 여성과 아이가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 군사작전을 선언하며 전면전을 개시했다. 2022.2.24
▲ 불안한 표정으로 차창 밖 내다보는 우크라 동부 주민들 2월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루간스크 지방 세베로도네츠크의 버스에서 한 여성과 아이가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 군사작전을 선언하며 전면전을 개시했다. 2022.2.24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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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이번 전쟁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나치 정부로부터 우크라이나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앞서 전쟁의 명분으로 우크라이나의 '탈(脫) 군사화, 탈 나치화'를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나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인가?

대다수 한국인은 우크라이나를 구소련국가라고만 알고 있지, 이제껏 그 실상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푸틴이 왜 자꾸 우크라이나를 향해 '나치'라고 하는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오랜 세월 외세의 침공과 지배를 받았던 우크라이나 지역은 1917년 우크라이나는 그토록 열망하던 독립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하지만, 1922년에 소련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면서 또 다시 주권을 잃게 된다.

소련 치하에서 자행된 홀로도모르와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단체 UPA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반러시아, 반푸틴 정서, 그리고 나치라는 주장의 유래에 대해 확인할 수 있다. 

소련 수탈의 상징 : 홀로도모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노보오가료보 관저에서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노보오가료보 관저에서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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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치하의 우크라이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1930년대에 있었던 홀로도모르, 우크라이나 대기근이다. 기근이라고 하면 보통 흉년을 떠올리지만, 우크라이나는 흉년 때문에 기근이 생긴 것이 아니었다.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토지에서 나오는 곡식을 모두 수탈해가고, 우크라이나 민족정신 말살을 위해 수탈해간 곡식을 제대로 배급하지 않아서 생긴 인위적인 기근이었다.

밀, 감자 등을 조금이라도 집에 보관하다가 적발되면 그 자리에서 즉결처형한다는 법까지 만들고, 다음해 심을 씨감자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수탈해 갔다고 전해진다.

그로 인해, 300만 명 이상이 굶어죽은 사건이 바로 홀로도모르이다. 제대로 집계되지 못한 지역도 있어서, 일각에서는 그 희생자가 1500만 명에 이른다고도 주장한다. 때문에 당시 우크라이나 인구의 1/3 정도가 줄어들게 되었고, 그 자리에 이주해 온 러시아인들이 지금의 친러파를 형성한다고 주장하는 우크라이나인들도 있다. 

홀로도모르는 소련 치하의 우크라이나가 식민지나 다름없는, 식민지보다 더 못한 상황에 놓여있었던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러니, 우크라이나인들의 소련에 대한 반감은 상당했다.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 UPA
 
키이우의 홀로도모르 추모관 앞의 소녀상. 소련정부가 법으로 금지한, 밀 이삭을 손에 들고 있다.
▲ 밀 이삭을 든 소녀상  키이우의 홀로도모르 추모관 앞의 소녀상. 소련정부가 법으로 금지한, 밀 이삭을 손에 들고 있다.
ⓒ 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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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도모르를 비롯해 소련의 수탈 대상이었던 우크라이나는 소련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독일의 나치가 소련을 침공해서 들어오자, 일부 우크라이나인들은 소련을 몰아내 줄 해방군으로 여기고 처음에는 나치를 환영했다. 그 때문에 소련은 '소련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자들'을 나치라고 몰아가게 된 것이다.

나치를 환영한 당시 우크라이나인들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당시 소련이 얼마나 가혹하게 우크라이나를 수탈하고, 우크라이나인들의 소련에 대한 반감이 강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이들이 계속해서 나치를 지지한 것은 아니다. 나치의 실상을 알게 되고,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단체 UPA는 독소전쟁에서 소련뿐만 아니라 독일에 대항해서도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인다.

 UPA는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 반체제무장조직으로 독소전쟁중이던 1942년 10월에 결성되어 주로 서우크라이나에서 적군(赤軍, 소비에트)와 독일군 양측에 대항하는 레지스탕트 활동을 벌였다.

제2차세계대전 종결 후에는 소련과 싸운 반체제 민족주의단체인 UPA는 소련과 그 후 러시아에서 '나치협력자' '전쟁범죄자' 등으로 낙인찍혔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2014년 도네츠크 전쟁을 계기로 명예를 회복한 단체이다. 

UPA의 활동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크라이나인들은 오랫동안 외세의 침공을 받는 과정에서 소련이나 나치 독일, 그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을 열망해왔다.

결과적으로 지금 푸틴이 말하는 '나치'는, 진짜 히틀러 같은 나치사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에 대항하는 모든 이들 즉, '우크라이나의 자주독립을 꿈꾸는 우크라이나인들' 전체를 가리켜 나치라고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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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다문화사회전문가. 다문화사회와 문화교류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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