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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와서 바라본 창밖 하늘은 온통 흐리고 잿빛이다. "여보, 비가 오나 봐요?" "응, 비 오고 있어."

드디어 비가 온다.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는지 모른다. 온종일 흐리고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창문 밖을 바라보니 아마 어젯밤부터 비가 온 듯 아파트 마당이 촉촉이 젖어있다. 정말 반가운 비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비의 촉감을 느껴본다. 손에 닿는 비는 보드라운 아기 볼을 만지듯 기분이 좋다.

사람이 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능력에 한계를 느낀다. 하늘에서 내려 주는 비가 아니면 산불이 쉽게 마무리될 수 있었을까? 정말 다행이다. 봄비가 이토록 고마운 적이 있었나 반문해 본다. 봄비는 많은 생명의 목마름을 적셔 주고 대지 위에 생기를 넣어 주고 있다. 이 순간은 봄비 노래라도 불러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든다.

울진, 강원도 등에서 산불이 일어났다. 산, 나무들과 사람 사는 집조차 시뻘겋게 태우는 불길을 보고 발만 구르고 있었다. 마음만 타들어 갔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 이러다 도시가 다 타는 건 아닌지, 긴장과 놀라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며칠째, 산불 소식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힘들었다. 어찌할 수 없어 "어떡해"라는 말뿐이었다. 봄비가 내린 날 저녁 TV 뉴스에서 건조주의보가 해제되고 산불이 잡혔다는 소식이 나왔다. 산불이 나고 9일째다. 휴우! 마음이 놓인다. 수많은 나무들과 사람이 사는 집들까지 다 태우고 이제야 불길이 멈추었다.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을 끄기 위해 노심초사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정말 수고를 아끼지 않은 소방대원 일반 봉사자 지역주민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바람 때문에 꺼지지 않은 불길로 잠조차 제대로 잘 수도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로 힘든 상황인 지역 자영업자들도 손발을 걷어붙이고 식사도 무료로 제공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보고 마음이 흐뭇했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다고 해도 아직은 살만하다. 사람들의 정, 그리고 의로운 마음이 모두 남았다. 사람은 정말 혼자는 살 수 없디.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이번 일로 다시금 인간은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2~3년 사이 세상의 변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 본다. 여러 가지 자연재해는 인간이 잘못하여 만든 재앙이라고 한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앙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깊이 고민을 본다. 내가 해야 할 작은 일도 있지 않을까?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내 주변의 작은 일에서부터 점검을 해 본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인간들이 편하자고 너무 함부로 자연을 힘들게 했나 보다. 지구가 화가 잔뜩 난 것만 같다.

온종일 하늘은 흐리고 어두 컴컴한 채 시간이 흐른다. 티브이 소리조차 멈춘 집안 거실은 고요만이 흐른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마음을 차분히 하고 숨을 한번 고른다.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은 시간. 가끔은 이런 시간도 괜찮다. 마음의 출렁임도 없고 지금은 내 안에 정막만이 느껴진다. 

젊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롭고 불안하고 그랬다. 나이가 들면서 고요한 시간을 감내하면서 살아갈 날을 조용히 음미해 보는 것도 외롭지 않고 참 좋다. 산다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 고통도 즐기기 나름이리라.

어려운 일이 있지만, 행복해지는 길도 있을 것이다. 산불은 멈추었지만 세상이 어렵고 힘든 일이 그치지 않는다. 이 또한 빨리 지나가길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봄비,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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