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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승생한울누리공원 인근에 설치된 제주4.3 학살 주범 박진경 추도비에 감옥이 설치됐다. 역사의 감옥에 가둬 무고한 도민들을 학살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죄를 묻겠다는 제주4.3단체와 시민사회의 움직임이다.
 어승생한울누리공원 인근에 설치된 제주4.3 학살 주범 박진경 추도비에 감옥이 설치됐다. 역사의 감옥에 가둬 무고한 도민들을 학살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죄를 묻겠다는 제주4.3단체와 시민사회의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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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승생한울누리공원 인근에 설치된 제주4.3 학살 주범 박진경 추도비에 감옥이 설치됐다. 역사의 감옥에 가둬 무고한 도민들을 학살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죄를 묻겠다는 제주4.3단체와 시민사회의 움직임이다.
 어승생한울누리공원 인근에 설치된 제주4.3 학살 주범 박진경 추도비에 감옥이 설치됐다. 역사의 감옥에 가둬 무고한 도민들을 학살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죄를 묻겠다는 제주4.3단체와 시민사회의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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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제주도민들을 학살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제주4.3 학살 주범 박진경 대령의 추도비가 역사의 감옥에 갇혔다. 

도민 30만 명을 모두 희생시켜도 무방하다고 말하며 제주도에 피의 광풍을 불어닥치게 한 지 74년 만에, 제주시민사회와 4.3단체들이 간접적으로나마 박진경의 죄를 물은 것.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에 따르면 4.3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지난 10일 오후 제주시 한울누리공원 인근 도로에 조성된 박진경 추도비에 '역사의 감옥에 가두다'라는 제목의 감옥을 설치했다.

제주시 충혼묘지에 있던 박진경 추도비는 지난해 국립제주호국원 조성사업에 따라 어승생한울누리공원 인근 산록북로 변으로 공비 완멸 기념비 등과 함께 이설된 바 있다. 

단체들은 박진경이 "왜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일본군 소위 출신에다 미군정 지시로 제주 4·3 학살을 집행했던 자"라며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추모비를 철창에 가둔다"고 조형물 설립 취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역사의 죄인을 추모하는 것은 그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조형물 설치를 통해 박진경을 단죄하고 불의로 굴절된 역사를 청산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박진경 추도비에 설치된 감옥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었다.
 
"이것은 역사의 감옥이다!
역사의 죄인을 추모하는 건 그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박진경이 누구인가. 왜왕에게 충성을 맹서(맹세)한 일본군 소위 출신에 미군정의 지시로 제주4.3학살을 집행하다 부하들에게 암살당한 이가 아닌가. 이런 인간의 추모비가 70년 넘도록 충혼묘지 언저리서 충혈된 눈으로 제주섬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에 우리는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이 자의 추모비를 철창에 가둔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 자에 대한 단죄이자 불의로 굴절된 역사의 청산이다."
 
제주 4.3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어승생한울누리공원 인근에 설치된 제주4.3 학살 주범 박진경 추도비에  ‘역사의 감옥에 가두다’라는 제목의 감옥을 설치했다.
 제주 4.3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어승생한울누리공원 인근에 설치된 제주4.3 학살 주범 박진경 추도비에 ‘역사의 감옥에 가두다’라는 제목의 감옥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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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소위 출신인 박진경은 4.3 당시 초토화 작전을 거부했다가 미 군정에 의해 해임된 김익렬 중령의 후임으로 제주에 내려왔다. 

그는 연대장으로 부임하면서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 명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고 발언하는 등 학살 주범으로 평가받는다.

6주간에 걸쳐 4000여 명에 달하는 도민들을 체포했으며, 제주로 부임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대령으로 진급할 만큼 무자비하게 작전을 벌였다.

무고한 도민들을 탄압하며 출세 가도를 달리던 중 그는 1948년 6월 18일 대령 진급 축하연을 마치고 숙소에서 잠을 자던 중 부하들에게 암살됐다. 제주에 내려온 지 불과 40여 일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는 박진경에 대해 "중산간 마을을 누비고 다니면서 불과 한 달 사이에 수천 명의 '포로'를 양산해낸 박진경 연대장의 작전은 주민들을 더욱 산으로 도망치게 했고, 자신은 암살당함으로써 사태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박진경이 죽고 나서 제주에는 1952년 11월 '제주도민 및 군경원호회 일동' 명의로 제주시 관덕정 경찰국 청사에 박진경의 추도비가 세워졌고, 이후 추도비는 제주시 노형동 충혼묘지로 이설됐다. 

추도비에는 "공비 소탕에 불철주야 수도위민의 충정으로 선두에서 지휘하다가 불행하게도 장렬하게 산화하시다"라고 적혔다. 현재 서울 현충원과 남해군민공원에도 박진경의 비석과 동상 등 추모시설이 세워져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4.3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박진경 추도비 철거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다. 

박진경 추도비 이전 당시 4.3기념사업위는 "4.3 학살과정에 박진경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명백하다. 추모하거나 추도할 인물이 아니라 4.3 학살의 주도자"라며 "도민 3만여 명의 희생을 부른 장본인 중 하나다. 추모해야 하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단죄해야 할 인물"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이번 조형물 설치에는 제주민예총, 제주주민자치연대, 제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노동자역사한내제주위원회, 제주다크투어, 제주통일청년회, 제주4·3연구소, 제주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제주여민회, 무명천진아영할머니삶터보존회, 제주참여환경연대, 서귀포시민연대, 제주문화예술공동체, 노무현재단 제주위원회, 민주노총 제주본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등 도내 16개 단체가 참여했다.
 
어승생한울누리공원 인근에 설치된 제주4.3 학살 주범 박진경 추도비에 감옥이 설치됐다. 함께 설치된 4개의 비석 가운데 철창이 설치된 비석이 박진경 추도비다.
 어승생한울누리공원 인근에 설치된 제주4.3 학살 주범 박진경 추도비에 감옥이 설치됐다. 함께 설치된 4개의 비석 가운데 철창이 설치된 비석이 박진경 추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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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주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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