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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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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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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어른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자녀의 행동을 보면 그의 부모가 어떻게 길렀는가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정 교육의 중요성을 설파한 속담은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 요즘 학부모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되레 아이들보다 미성숙하다 싶은 경우를 종종 만난다. 아이의 시간표를 시시콜콜 묻는가 하면, 학교를 찾아와 집에 두고 온 과제물을 아이에게 전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열일곱 나이의 고등학생을 마치 초등학생 대하듯 하고 있다. 

심지어 중학교 시절 친구 관계까지 들먹이며 '나쁜 아이'랑 어울리지 않도록 신경 써 달라는 이야기까지 담임교사 앞에서 서슴없이 한다. 당신의 자녀가 '나쁜 아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전화기에 대고는 그저 네, 네 하고 말지만, 뒷맛이 영 개운찮다. 

부교재는 무엇인지, 학생증은 언제 나오는지, 교복은 언제부터 착용하는지, 체육복은 어디서 맞추는지, 수행평가는 언제 실시하는지 등 질문 내용만 보면, 학부모가 아이 대신 학교에 다닐 태세다. 신입생이니만큼 그러려니 하다가도 이따금 답답함을 넘어 화가 날 때가 있다.

아이가 학교생활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그냥 지켜만 봐달라고 부탁하면, 십중팔구 아직 어려서 일일이 챙겨 줘야 한다고 대꾸한다. 낼모레면 선거권을 갖는 나이인데 뭐가 어리냐는 말은 혀끝에 맴돌고 만다. 학교에서 자립심을 키울 수 있도록 애써달라면서도 정작 자신은 아이를 온실 속 화초처럼 기르고 있는 셈이다. 

며칠 전 수업 시간에 아이들 앞에서 학부모에 대해 뒷담화를 늘어놓았다가 항의 전화를 받았다. 사실 학부모를 꼬집어 나무랐다기보다 부모 세대의 이기심을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된 채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의무에는 소홀한 기성세대의 행태를 비판했다.

이번 대선에서 승패의 열쇠였던 부동산 가격 폭등을 소재로 대화를 나눈 게 화근이었다. 누구나 자신 소유의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를 바라지만, 그로 인해 세금이 오르는 건 싫어하는 이중성을 문제 삼은 거다. 공공성과 사회적 신뢰가 부족한 기성세대를 반면교사 삼으라는 충고가 학부모에 대한 맹목적인 험담으로 와전된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선생님 말씀의 취지는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어린아이들 앞에서 부모를 욕하면 안 되죠. 아이들이 부모를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일단 정중하게 사과는 했지만, 내심 억울했다. 이게 과연 사과가 필요한 일인가 싶어서다. 국가로부터 혜택은 무한정 누리려고 하면서 기부는커녕 세금 납부조차 어떻게든 피하려고 발버둥 치는 기성세대의 민낯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모든 이가 다 그렇진 않을 테지만'이라는 전제를 달지 않았다는 게 죄라면 죄다. 

현행법상 저촉되지 않는다고 해도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버는 걸 '반사회적 범죄'로 말한 것 역시 뒤탈이 났다. 학부모는 그렇다면 우리 국민 전체가 범죄자라는 이야기냐며 발끈했다. 누군가 이익을 얻은 만큼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비유였다고 해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하긴 몇 해 전인가는 정부 기관이 로또를 주관하는 건 사행심을 조장하는 반사회적인 정책이라고 규정했다가 봉변을 당한 적도 있다. 습관적으로 로또를 사며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도 문제라는 이야기를 자녀로부터 전해 들은 학부모가 전화를 걸어왔다. 당시 그가 건넨 꾸지람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선생님,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가는 정부를 탓해야지, 요행을 바라면서까지 힘겹게 하루하루 버텨가는 우리 같은 서민들을 욕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때도 사과는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수긍할 수 없었다. 그것이 무엇이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맞서 싸워 바루어야 옳지, 남들 다 하지 않느냐며 스스로 합리화하는 건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더욱이 미래세대인 아이들 앞에서 보여주기 참으로 민망한 행태 아닌가.

방과 후 아이들과 상담하다 보면, 담임교사 앞에서 대놓고 부모 뒷담화를 늘어놓는 '순수한' 경우가 더러 있다. 순간 적잖이 당황스럽지만, 그들의 가정환경과 성격, 장단점 등을 파악하는 데에 좋은 물꼬가 돼주기도 한다. 몇몇 아이들이 전한 부모의 '충고'를 그대로 옮겨본다. 

"괜히 나서지 마라. 공부 말고는 튀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마냥 착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다. 때로는 약삭빠르게 행동할 줄도 알아야 한다."
"명문대에 가면 좋은 친구들이 줄을 서게 돼 있다. 친구 관계에 연연하지 말고 그럴 시간에 공부나 해라."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의 생각을 물으면, 다행히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10대의 정서를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라며 퉁 친단다. 부모의 그런 '충고'를 가슴에 새겨 철저히 이기적으로 생활하는 아이가 적진 않지만, 아직은 '영혼이 맑은' 아이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아이는 어른을 비추는 거울

'학부모가 바로 서야 교육이 바로 선다'. 한 교육 관련 시민단체의 모토다. 오래전 그 모토가 가슴에 꽂혀 비록 나서서 활동하지는 못해도 회원으로 가입해 꼬박꼬박 회비를 납부하고 있다. 그곳 학부모 활동가들의 소신과 공동체를 위한 헌신은 교사인 내게 크나큰 자극이 된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서 만나는 학부모들에게선 그러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당신의 자녀 외엔 그 어떤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당신 자신의 삶보다 자녀의 그것이 먼저라는 듯 행동하고 말한다. 언제부턴가 '누구의 엄마'라는 자기소개가 곡해되기 시작했다. 자녀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말처럼 느껴져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오늘의 '말실수'로 학부모로부터 또 항의가 올까 두려워서다. 수업 시간 아이들 앞에서 월 100만 원의 학원비는 흔쾌히 지출하면서 공교육을 위한 교육세는 10원짜리 한 푼도 아까워하는 학부모들의 흉을 봤다. 사실 스무 살과 열일곱 살짜리 두 아이를 키우면서 학원을 보내본 적이 없어 그렇게 학원비가 비싼 줄 몰랐다. 

만약 개인당 매월 100만 원이 교실에 투자된다면 최첨단의 쾌적한 환경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장담했다. 학급당 학생 수가 25명이니 월 2500만 원이고 1년이면 무려 3억 원에 이른다. 조악한 비유일지언정 그 돈이 한 교실에 쓰인다고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신 자녀의 일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돼 있는 기성세대를 본받아선 안 된다고도 했다. 나아가 그렇듯 이기적인 자들이 공동체 붕괴의 주범이라는 '막말'까지 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적어도 우리의 현실과는 아예 동떨어진 금언이라며 말을 맺었다.

누군가는 방과 후 부모에게 고자질하거나 또 누군가는 학부모를 욕보였다며 학교에 항의 전화하거나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할지 모른다. 늘 그래왔듯 우선은 그들에게 죄송하다는 말부터 건네야겠지만, 뭐라고 해명해야 할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는 어른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하루에도 수십 번 입가에 맴도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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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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