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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불평등이 심각하다.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말은 무성하지만 20대 대선에서 노동자들은 배제되거나 혐오의 대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운동 기간 주 120시간, 최저임금 한시적 유보,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며 노동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노동에 대한 혐오로는 한국사회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비정규 노동자들은 3월 19일부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 전태일 다리부터 인수위까지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행진한다. 이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좋은 일자리'를 확대해야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린 고착된 불평등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공공부분에서 국민을 위해 노동하지만 여전히 일터에서 차별받고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비정규직 현장의 목소리를 싣는다.[편집자말]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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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일차에 인천공항을 방문했다. 비정규직이 압도다수인 인천공항을 방문해 "임기 중에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한다. 우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20여년간 해왔던 기나긴 싸움이 이제야 끝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는 정규직전환을 위한 노사전협의체가 시작됐다. 하지만 대통령이 말한 정규직화인지 의심이 가는 날의 연속이었다. 자회사 방식은 무엇인지, 민간위탁은 왜 뒤로 밀렸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적어도 발전5사의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던 2018년 겨울,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청년노동자 김용균이 새벽시간 혼자 일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노동자들은 투쟁했고, 정부는 결국 합의했다. 발전소 비정규직들을 한국전력(아래 한전)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한다는 큰 틀의 합의를 하고, 유가족인 김용균노동자의 어머니와 아버님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그 후 3년, 세 차례의 당·정·청 발표와 약속이 있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한전과 자유총연맹은 정규직화를 위한 세부협상만 진행 중이며,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정규직 전환 확정 여부는 알 수 없게 됐다.

휴지 조각 된 정부의 약속
 
5일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와 시민대책위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당정 발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5일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와 시민대책위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당정 발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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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건강보험고객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인천공항의 카트, 세관, 출국대기실, 검역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법원에서 전산업무를 하는 노동자들 중 단 한 명도 정규직화 되지 않았다.

가스비정규노동자들은 작년 한 겨울에 곡기를 끊는 농성투쟁을 하는 등 청와대 앞에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하고 합의했지만, 아직 세부사항 논의가 남아있다. 건강보험고객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공단 앞에서 단식과 천막농성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전환에 대해 적극적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 간의 갈등 끝에 별도기관으로 전환 합의를 했다.

인천공항 카트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 대상에도 들지 못한 채 용역업체 변경으로 해고를 당했고, 출국대기실노동자는 공무직 전환을 앞두고 43명 중 15명만 고용승계 하겠다는 기획재정부의 계획에 전원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법원 전산직 노동자들은 공무원과 같이 일하지만 용역업체 소속으로 임금의 약 40%을 중간착취 당하고 있다.

정규직 전환, 하지 말았어야 했는가

정규직화 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다양하다. '처음부터 무리한 시도였다', '노노갈등이 문제다', '자격 없는 사람들이 떼를 써서 정규직화 하는 것이 부당하다', '시험 보고 정당하게 입사해라' 등등의 악플이 주를 이뤘다.

우리 발전소 비정규직을 비롯해, 전국의 다양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전환이 정말 무리했던 것인가? 상시‧지속업무는 당연히 정규직화 해야 한다. 원래 늘 하던 일을 비정규직으로 사용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더욱이 모범을 보여야 하는 공공부문에서는 비정규직 사용을 철저히 제한해야 하지만, 정부는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보다 처우개선만을 조금씩 해주는 형태로 비정규직 사용을 확대해왔다.

그 결과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가장 아래로, 더 아래로 가게 되고 '죽음의 외주화'란 수레바퀴는 나의 가족, 친구를 죽였다. 더불어 능력주의로 귀결되는 '시험 보고 들어와라' 류의 주장은 오랫동안 논란이 되며 충분히 논박되었기에 거듭 언급은 생략한다.

굳이 첨언하자면, 해당직무에 가장 일을 잘 할 사람, 안전한 고용구조가 최우선 되어야 함은 이미 증명되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정규직이여야 했을 사람들이란 이야기다. 오랜 시간 비인격적 대우와 낮은 월급은 물론 산업재해의 고통을 견딘 비정규직들에게 한국사회가 미안해야 하지 않는가.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 입장에서 보자면 실패한 정부다. 실패의 원인을 부동산 폭등을 비롯해 조국 사태, 내로남불의 기득권 지키기, 코로나19 방역에서의 자영업자 내팽개치기 등에서 찾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가 확신하는 원인은 단연코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 포기에 있다.

천만 비정규직을 두고 정치교체 실패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면 온전한 해석이 가능이나 할까?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에 또 나올까 싶은 대통령 탄핵을 경험하고, 한 겨울 장갑 끼고 광화문으로 몰려드는 백만 시민촛불의 힘으로 당선되었다. 그 때만 해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재기가 가능이나 할까 싶은 정도로 처참히 망가졌었다.

그러나 그들이 청와대로 복귀하는 데는 단 5년이면 충분했다. 정권교체와 함께 강성노조 엄단, 혁파 등을 외친 '노동혐오 정권' 탄생의 밑거름이 된 것이 결국 문재인 정부의 지리멸렬함에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을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라
 
충남 태안군에 있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에 근무하는 한전산업개발발전노조 등 비정규직연대회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청와대앞에서 신속한 정규직화를 촉구하며 지난 19일부터 노숙 철애 투쟁을 벌이고 있다.
 충남 태안군에 있는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에 근무하는 한전산업개발발전노조 등 비정규직연대회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청와대앞에서 신속한 정규직화를 촉구하며 지난 19일부터 노숙 철애 투쟁을 벌이고 있다.
ⓒ 비정규직연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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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대선 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보낸 정책질의에 따른 문답이다.
 
- 공공부문 서비스 개선과 양질의 일자리를 위해 공공부문 민간위탁의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다시 추진하여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완료하는 방안에 대해 귀 후보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득보다 실이 크고, 취업준비 청년들에게도 고용박탈감을 안겨 준 최악의 정책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정규직 전환이 능사가 아니며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확대할 가능성 배제 못합니다. 공공기관 인력운영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여, 민간위탁이 남용되거나 불필요한 경우가 있는지 꼼꼼히 분석하고, 합리적인 근로조건 개선을 통해 차별을 시정하는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합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정책추진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토대로 개선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공공부문에서는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해 상시지속업무에 대해서는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했지만 정책 시행과정에서 일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고, 민간부문에 확산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아 오히려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효과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거쳐 개선방안을 도출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보수당의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선 큰 기대는 없다. 다만 정부의 정책으로 만들어진 기관에서, 당신의 지시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정당하지 않은, 비인격적 처우를 받는 것이 정말 정의로운가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한다. 

정규직 전환이 되지 못한 우리와 대통령이 된 당신의 싸움은 어쩌면 벌써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5년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는 없다. 우리는 당신을 만나러 내일부터 청와대로 간다. 우리를 직접 보면 당신의 생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함께.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공공운수노조 발전 비정규직 전체 대표자회의 간사입니다.


태그:#정규직화, #김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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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용균노동자의 동료들은 하청업체 비정규직노동자입니다. 제대로 된 정규직화와 발전소 폐쇄에 따른 고용보장 노동자와 이야기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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