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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모습은 신나는 건 아닙니다. 어디를 바라보나 우울한 모습 뿐입니다. 배들, 뱃사람, 해안, 섬들 모두가. 저는 정말로 이교도의 땅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저는 헤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매사에 성의를 다 하겠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속이지 않을 겁니다.  조선인들과 우애를 나누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 1884년 5월 31일 제물포 연해 트렌턴호 선상에서 조지 포크가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서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조선인 최초로 세계일주를 마친 민영익, 서광범 그리고 변수가 5월 31일 5시에 트렌턴호를 떠난 지 20분 후쯤 나는 황급히 펜을 잡고 조선 땅에서 최초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답니다.

그날 저녁 우편 증기선에 편지를 부친 후 나는 불면의 마지막 밤을 선상에서 보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변수가 나타나 짐을 거들어 주었습니다. 그는 비참한(miserable)한 심경이라면서 즉시 조선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서양 견문 후에 되돌아와 맞닥뜨린 조선의 현실에 모두들 혐오를 느꼈다는군요. 

그날 6월 1일은 일요일이었지만 나는 배에 남아 일을 하다가 오후 3시에 변수의 안내로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마침내 배와 이별을 한 것이지요. 나는 금단의 땅에 들어섰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배를 떠나던 순간 나는 마치 어둠속으로  뛰어든 심정이었습니다. 

상륙하여 바라본 제물포는 진흙 투성이인데다 가난에 찌든 모습이었습니다. 150호 정도의 가옥이 있는데 대부분 일인들의 집이었습니다. 우리는 질척거리는 길을 지나 마을 남쪽 끝까지 나아 갔습니다. 거기에서 민영익이 묵고 있는 숙소를 찾았습니다.

숙소는 새 건물로서 조선 무역회사의 집이었습니다. 규모가 상당히 크고 나름 웅장해 보였습니다. 울퉁불퉁한 원목을 조립하여 만들었더군요. 그 집에 이르러 나는 온전히 조선살이 속으로 흡수되었습니다.

조선 음식을 먹었고, 서울에서 민영익을 마중하러 나온 150명 가량의 사람들 속에서 잡담을 나누었지요. 국왕의 메시지가 답지하였고 새로운 인원들이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 시끄럽고 혼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나는 그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다음날 아침 일찍 서울행 행차를 따라나섰답니다. 행렬은 모두 250명 가량이었는데 모두 세 명의 조선 사절과 나를 에스코트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우리는 가마라는 것을 타고 갔습니다. 가마 안에는 의자가 없어 바닥에 다리를 포개고 앉아야 했지만 내게는 별로 불편을 주지 않았답니다. 일본에서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었죠. 출발을 기다렸다는 듯이 장대비가 쏟아지더니 그날 오후 늦게서야 그쳤답니다. 엉망진창인 길을 가마꾼들은 이런 게 뭐가 문제냐는 듯이 잘도 나아가더군요.

작은 동네를 세 곳 정도 지나 우리는 주막이라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오두막 초가였는데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낮았습니다. 검댕이가 덕지덕지 끼어 있더군요. 거기에서 우리는 밥을 먹고 휴식을 취했답니다. 나로서는 난생 처음의 주막 체험이었지요. 그러던 중에 우리의 행렬은 더욱 불어났습니다. 서울에서 온 다른 사람들이 합류했기 때문이죠.

서편 하늘에 노을이 물들고 있을 때 우리는 한강변에 도착했습니다. 나룻배를 타고 마포나루를 향해 강을 건너는데 그 행렬이 수천명에 이르러 대혼잡을 빚었지요. 마포에는 많은 고위 관리들이 영접 나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나는 홍영식을 만났습니다. 미국 사절단의 부사(副使)였던 그는 우리와 별도로 훨씬 먼저 태평양을 건너 작년 말에 벌써 조선에 귀환해 있었지요.      

나는 그날 느끼고 겪었던 첫 인상과 경험을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그렸습니다.
 
저는 강에서 바라보았던 풍경을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마포에 도달하기 직전에 해가 떨어졌는데 서녘 하늘이 기묘한 한 황색으로 물들더군요. 강 건너편으로 거무스름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집들은 중국 사진에서 보셨을 익숙한 모습인데 곡선 지붕을 이고 있었습니다. 집 주위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는데 모두가 흰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두툼한 두루마기를 걸치고 챙이 넓은 말총 모자를 쓰고 있더군요.

우리는 강을 가로질러 널따란 백사장에 이르렀는데 거기에 기이한 모습의 조선인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하얀 옷을 입고 있었고 진한 청색이나 옆은 청색 혹은 밀짚 색깔의 복장을 한 관리들도 보였습니다. 이내 민영익과 서광범의 가마를 우인들, 장병들, 가복 등 수백명이  에워싸더군요. 나의 가마꾼은 나를 모래사장 한 켠으로 이동시켰습니다. 한 동안 아무도 내 곁에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는 많은 조선인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바라 보며 심한 적막감과 무력감에 빠졌답니다. 조금 지나자 조선인들이 제 쪽으로 다가오더니 외국인이라는 걸 알고서는 더욱 접근하여 가마 속의 저를 놀란 얼굴로 뚫어지게 쳐다보더군요. 그때부터 저는 엄청난 주시의 대상이 되었고 언제나 군중이  저의 가마를 에워쌌습니다. 조선인들이 저를 응시하는 그 눈동자는 미국의 어떤 서커스 관람자에게서도 볼 수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마포를 떠났을 때는 밤이었습니다. 공기는 짙은 안개를 머금고 있었고 길은 울퉁불퉁하고 질척거렸으며 구불구불하였습니다. 행렬의 옆으로는 등불과 횃불을 나르는 자들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틀진 초롱에는 초가 한 자루 씩 들어 있었고 반은 청색이고 반은 홍색인 얇고 긴 천 주머니가 내려뜨려져 있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초롱의 모습이 마치 날으는 유령의 긴 옷자락 같았습니다.

바위 사이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거푸 새어나왔고 들개들이 짖어댔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성곽의 대문을 퉁과하여 더욱 좁고 더욱  어두운 길로 들어섰습니다. 길은 온통 깜깜했고 질척거렸으며 고요했습니다.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었구요. 종각의 큰 종이 모든 사람의 귀가시간을 이미 알린 뒤였기 때문이었죠. 가끔 길가의 민가에서 물이 열렸고 그 사이로 타원형의 얼굴을 한 조선인들이 놀란 눈으로 우리를 내다보았습니다.



나는 한양 도성에 들어와 한 시간을 이동한 뒤 마침내 미국 공사관에 들어섰습니다.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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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만남이길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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