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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편집자말]
얼마 전 노견을 키우는 지인 K와 커피를 마시다 느닷없이 울었다. (글쓰기 모임 빼고는) 어디 가서 잘 울지 않는 편인데, 갑작스레 터져 나온 감정에 상대방보다 내가 더 당황했다.

우리는 나이 든 개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우리 집 고양이가 벌써 사람 나이로는 60대 중반이라는 말을 하는 도중에 예고도 없이 눈물이 탁자로 떨어졌다. 나는 황급히 휴지로 눈가를 찍어내며 말했다. "아니 나 갑자기 왜 이러지. 미안해." 휴지 너머로 K를 바라보니 그도 눈자위가 불그스름해져 있었다. 나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끼며 조금 더 울었다.  
 
고작 여섯 번 정도 만난 지인 앞에서 눈물을 보였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고작 여섯 번 정도 만난 지인 앞에서 눈물을 보였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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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묘한 기분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건 반려인이 다른 반려인에게 구한 정서적 연대 같은 것이었다. 고양이의 질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너무 무거워서 누군가에게 쉽사리 털어놓지 못했었는데, 마침 노견을 키우는 지인을 만나 비슷한 고민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내 두려움도 꺼내놓을 수 있던 거였다.

우리는 슬픔에 대해 말했지만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 대낮에 코가 빨개지도록 울었지만 어딘가 후련한 얼굴로 헤어질 수 있었다. 

반려인들에게 '무지개 다리'란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면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강아지 별로 떠났다', '고양이 별로 떠났다'라고 표현한다. 나는 동물과 함께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 표현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말도 통하지 않는 존재를 이토록 지극히 아끼게 될 줄은, 그리고 이토록 서둘러 떠나보내야 할 줄은 모르고 살아서 이별이 더 황망하기 때문에. (무지개 다리를 건넌 이후) 텅 빈 강아지 전용 밥그릇이나 쿠션 위에 붙은 가느다란 고양이 털을 보고 수 백 번 무너질 마음을 미리 안다면 어찌 쉽게 반려동물을 입양할 수 있을까.

그래서 '무지개 다리'나 '고양이 별'이라는 말은 반려인들이 동물 식구를 떠나보내며 비는 소원을 담은 말일 것이다.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마음껏 뛰놀기를. 언제까지나 건강하기를. 다시는 아프지 않기를. 그럼에도 쉽게 그 마지막을 이야기 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무지개 다리 너머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
 무지개 다리 너머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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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무지개 다리 너머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기를 바란다. 반려동물 입양이나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반려동물의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활발한 논의는 고사하고 구할 수 있는 정보조차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반려동물의 장례를 떠올려보자. 반려동물의 마지막, 어떻게 보내주어야 할까?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싶지만 이 방법은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 한국에서 불법이다. 적법한 절차는 세 가지다. 동물병원에서 의료용 폐기물로 처리를 하거나, 농림축산식품부에 등록된 동물 장묘 업체에 맡기거나, 쓰레기봉투에 담아 배출하거나.

그러나 누가 가족을 폐기물이나 쓰레기봉투로 보내고 싶을까. 합법적인 동물 장묘 업체에 맡기는 것이 최선일 테다. 하지만 지방, 특히 제주에서는 그마저도 선택이 어렵다. 제주에는 동물 장묘 시설이 한 곳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주도 농축산식품국에서 최근 부지를 확보해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언론기사를 보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은 천만 명이 넘는다는데, 무지개 다리 너머의 이야기는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실제로 이 글을 쓰는 날을 기준으로, 한 포털 사이트에 '반려동물 입양'을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하니 약3만 6300건이 집계된다. 반면 '반려동물 죽음'을 키워드로 찾은 기사는 5810건, '펫로스'는 1420건에 불과하다.

노묘 두 마리와 사는 나 역시 내 고양이와 헤어지는 일은 떠올리기조차 두렵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지막을 맞이하는 건 더더욱 두렵다. 알지 못하는 세계 앞에서 무력할 때면 책과 사람을 찾는다.

피터 게더스의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를 도서관에서 빌려 고양이 노튼의 투병기와 마지막 순간을 읽는다. 또 먼저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주변인들을 만나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기도 한다. 언젠가는 펫로스를 겪는 사람들과 함께 독서 모임을 꾸리고 싶다. 무지개 다리와 고양이 별, 강아지 별에 대해 말하는 안전한 공간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용감한 사랑'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마지막까지 온전히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욕심일까
 마지막까지 온전히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욕심일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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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사는 건 적잖은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일단 입양을 하게 되면 의도치 않게 생활 패턴이 바뀌고, 자유 시간과 돈은 쑥쑥 줄어든다. 무엇보다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한 건 사별 이후의  고적한 시간들이다.

반려동물의 생은 너무도 짧고, 남겨진 우리는 그리움으로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마음을 나는 '용감한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반려동물과 상실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바란다. 마지막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한다. 기사나 칼럼, 논문 그리고 에세이로 나이 든 동물과 사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동물을 떠나보낸 이들의 이야기가 활발하게 다뤄졌으면 좋겠다.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면 누구나 한 번 겪어야 하는 일이니까.

이제 용감한 사랑을 하는 반려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해주었으면 한다. 우리에게는 무지개 다리 너머를 위한 연대가 필요하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gracefulll)에도 실립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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