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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전현충원은 매년 3월 넷째주 금요일을 '서해 수호의 날'로 지정하고 각종 행사를 연다.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전으로 희생된 55용사를 기리고, 국민의 안보의식을 북돋으며 국토 수호 결의를 다지기 위한 법정 기념일이다. 올해는 55용사를 추모하기 위한 5만5천 걸음 걷기대회를 개최하고, 추모의 글 남기기 이벤트도 실시한다.

이러한 '서해 수호의 날'이 지정되게 된 첫 계기는 2002년 6월 29일 서해에서 벌어진 남북간 교전이었다. 이날은 한국과 터키의 월드컵 3, 4위전이 예정돼 있던 날이었다. 오전 10시경 서해 연평도 NLL(북방한계선) 인근에서 북한 경비정 684호와 남한의 참수리 357호가 충돌했다.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치열한 교전은 약 30분간 진행됐다.

이날 충돌로 대한민국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전사자는 참수리 357호 정장 윤영하 대위, 조타장 한상국 하사, 조천형 병기사, 황도현 병기사, 서후원 내연사, 박동혁 의무병 등이다. 교전 끝에 참수리 357호는 침몰했다. 북한도 3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제2연평해전 전사자 묘역
 제2연평해전 전사자 묘역
ⓒ 우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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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날의 교전을 '제2연평해전'으로 명명했다. 처음에는 서해교전으로 부르다 명칭을 변경했다. 이날을 계기로 교전규칙이 '경고 방송→차단기동→경고사격→위협사격→격파사격'의 5단계에서 '시위기동→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의 3단계 대응으로 수정했다.

첫 교전 후 3년 만에 제2연평해전…참상 부른 NLL 논란

제2연평해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1연평해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제1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에 서해 연평도서 일어난 대한민국 해군과 북한 해군 간 14분간의 교전이다. 북한 해군 경비정이 연평도 부근의 NLL(북방한계선) 남쪽으로 2km를 넘어오자 서로 대치했다. 이날 충돌로 북한군 20명이 사망하고 30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 경비정 1척이 침몰하고 5척이 파손했다. 남한의 경우 참수리급 고속정 325호의 정장 안지영 대위를 비롯한 장병 7명이 다쳤다.

제1연평해전은 NLL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NLL은 남한과 북한 사이에 설정된 사실상의 남북 해상 군사 분계선이다. 이중 서해 NLL은 남한 서해 5도(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와 북한의 황해남도 해안 사이에 설정된 해상 경계선이다.

분쟁의 시작은 1953년 7월 27일 UN군 사령부와 북한 간 체결한 정전협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엔군 사령부는 해상 경계선 범위를 3해리를 주장했지만 북한은 12해리를 주장했다. 하지만 명확한 합의 없이 유엔군사령부는 "서해 5도는 UN군 사령관 관할 아래 둔다"고 규정했다. 이 규정이 북방한계선 논란의 시발점이 됐다.

북한은 1973년 개최된 군사정전위원회에서 NLL에 대해 공식적인 이의를 제기하였다. 1999년에도 "유엔군사령부가 NLL을 당시 북한이나 당시 중공군 총사령관에게 통보한 적이 없어 무효"라고 주장했다. 반면 남한과 유엔군사령부는 "NLL은 실질적인 해상분계선이며, 지난 40여 년간 쌍방이 인정하고 지켜온 엄연한 해상경계선으로서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이 같은 NLL 분쟁 한복판에서 제1연평해전이 일어난 것이다.

제1연평해전 직후인 1999년 9월 북한은 NLL로부터 훨씬 남쪽을 경계로 하는 새로운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남한은 현재의 NLL이 준수되어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NLL 분쟁으로 촉발된 제1연평해전이 2002년 6월 제2연평대전으로 이어진 셈이다.

한국 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사건 가운데 하나

이는 그로부터 8년 후인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전'으로 격화됐다. 같은 해 11월 23일 북한은 남한이 NLL 부근에서 실시할 예정인 호국훈련에서의 포 사격을 두고 북한 영해에 대한 사격이라며 훈련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거절하고 이날 오전 예정대로 연평도 주둔 해병대가 훈련을 진행했다. 그러자 북한은 이날 오후 2시 30분 무렵,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 연평도를 향해 포격을 가해왔다.
 
2010년 11월 25일 국방부가 공개한 최초 피격 순간을 담은 사진
 2010년 11월 25일 국방부가 공개한 최초 피격 순간을 담은 사진
ⓒ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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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 해병대원 2명(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이 전사하고 군인 16명이 부상을 입었다. 민간인도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다. 또 연평도의 각종 시설이 파괴돼 재산 피해도 발생했다. 한국 전쟁의 휴전 협정 이후 북한이 남한 영토를 직접 타격하여 민간인이 사망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날 해병대도 대응 사격을 가해 북한군 1명이 죽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정확한 피해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는 "호국훈련에 대한 반발이 아닌 작전통제선을 명분으로 한 의도적 도발"이라고 반발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공중 공격과 포격이 포함된 보복 공격을 계획했다가 확전을 우려한 미국의 설득으로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미국은 "북한에 전쟁 정전 협정을 준수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중국이 북한에 대해 분명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보도에 주의하고 있으며 6자회담 재개가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공격은 한국 전쟁이 끝난 이후 가장 심각한 사건 가운데 하나"라고 우려했다.

서해 NLL 지역 유혈 충돌 언제까지?

연평해전 전사자와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모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대전현충원은 2015년 9월 21일 '제2연평해전 전사자 묘역'을 따로 조성해 장교묘역, 사병묘역 등 4곳에 분산 안장되어 있는 연평해전 전사자 6명의 유골을 연평해전 전사자 합동 묘소로 이장했다. 그해 11월에는 바로 옆에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을 조성해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에 대한 합동묘역 안장식을 거행했다.
 
2015년 열린 제2연평해전 전사자 합동묘역 조성 및 안장식
 2015년 열린 제2연평해전 전사자 합동묘역 조성 및 안장식
ⓒ 국립대전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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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제2연평해전 추모식이 정부 기념행사로 승격됐고 주관 부서도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국가보훈처로 옮겼다.

하지만 제1연평해전(1999), 제2연평해전(2002), 대청해전(2009), 천안함 피격 사건(2010), 연평도 포격전(2010),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사건(2020) 등 서해 NLL 지역에서의 남북간 유혈 충돌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연평도포격전 전사자 묘역
 연평도포격전 전사자 묘역
ⓒ 우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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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 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실렸습니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시민미디어마당 협동조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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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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