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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산부인과에 갔다가 갑상선 검사를 권하시길래 별생각 없이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결과 중에서 수치가 높은 것이 있으니 다시 내과에 가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갑상선을 확인하러 간 내과에서,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결혼했어요?" 묻더니 이런저런 추가 검사 항목을 권하기 시작했다.

"결혼하기 전에 낭군님한테 얘기해서 검사를 했어야지. 특히 이 항체가 없으면 기형아 나올 확률이 높거든."
"(그냥 얼버무리자) 네에, 다음에 남편이랑 (검사) 해볼게요."
"임신한 적 있어요? 한 번도 없어? 임신하기 전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돼."


'낭군님'이 웬말인가 싶기도 전에, 떠밀리다시피 각종 산전검사를 하게 생겼다. 결국 "아기 낳을 계획이 없어서요, 그 검사는 안 해도 돼요" 했더니 역시나 바라지 않는 잔소리가 이어졌다.

"결혼했는데 안 하는 게 말이 돼? 안 낳는다고? 그러면 얼마나 불행한 건데~ 으휴."

선생님은 내 행복까지 진단해 주시고서야 결국 예정대로 갑상선 검사만 진행하기로 했다. '아기를 안 낳으면 불행해진다'는 말, 예언인지 저주인지 모를 말을 자주 듣다 보면 가끔은 '정말 그럴까?' 싶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집에 돌아가면 그곳에 이미 예약된 행복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반려동물에게 배운 다양한 사랑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 여름이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 여름이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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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지만, 반려동물과 살면서도 나름대로 배운 것이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하게 된다. 가족과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때로는 아이돌에 대한 사랑이나 종교적 사랑… 그리고 내가 반려동물에게 배운 사랑의 대전제는, 내가 원하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을 줘야 한다는 점이다. 나에게 편하고 좋은 것이 꼭 상대방에게도 좋은 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리트리버 한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고 있다. 리트리버 여름이는 관심을 주지 않으면 시무룩해진다. 바닥에 얼굴을 납작하게 붙이고 누워서 온몸으로 심심하다는 기운을 내뿜는다. 그래서 손을 뻗어 만져주면 1초 만에 표정이 밝아지고 꼬리가 살랑살랑 바쁘게 움직인다.

사실 호들갑이 없는 편인 내 성격으로는 여름이에게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한때는 대형견이다 보니 사회성을 높여주려고 훈련소에도 다녔는데, 훈련사님은 항상 나에게 '더 크게, 더 과장되게 말해주세요!'라고 요구했다. 그럴수록 집중 받기 싫은 내 목소리는 더 기어들어갔다.

여름이에게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잘했어" 칭찬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러다 보니 여름이에게는 무뚝뚝하고 표현이 없는 보호자보다는, 작은 일에도 오버스럽게 칭찬해주는 텐션 높은 보호자가 어울릴 것이다. 다행인 것은 나랑 비슷한 성향의 남편에게 빠르게 '여름이 패치'가 깔렸다는 것. 남편은 여름이의 호들갑에 맞장구도 쳐주고 여름이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예상했겠지만 고양이는 반대다. 고양이는 큰 소리가 나는 걸 싫어하고, 갑자기 끌어안거나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이면 발버둥을 치면서 멀찍이 떨어져 버린다. 고양이는 내가 고양이처럼 조용하게 움직이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원할 때 원하는 부위를 만져주는 것을 좋아한다.

다행히 고양이가 원하는 사랑의 종류는 내 성격과 잘 맞는다. 나는 고양이가 먼저 다가올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가, 고양이가 곁에 다가오면 고요하게 기뻐한다. 여름이가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게 고양이와 어울리는 사랑 방식인 셈이다.

모든 아이가 같지 않듯이 행복도 다 다르다
 
노트북을 하고 있으면 슬쩍 다가와 눕는 고양이 달이
 노트북을 하고 있으면 슬쩍 다가와 눕는 고양이 달이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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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통해 배운 점이 또 한 가지 있다면, 모든 인간이 같지 않고 모든 아이의 성향이 같지 않듯이 강아지나 고양이도 개체별로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고양이에 대해서 뭉뚱그려 언급하기는 했지만, 우리 집에 있는 고양이 세 마리를 디테일하게 살펴보면 원하는 게 각기 다르다.

제이는 항상 내 시선이 닿는 곳에 있되 쓰다듬거나 빗질을 해주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반면 아리는 시선만으로는 부족하고 항상 내 손이 닿아 있어야 한다. 무릎에 올라오고, 배 위에 올라오고, 팔짱 끼고 있는 팔 위로도 올라온다. 달이는 평소에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다가도, 내가 손을 뻗어서 만져주면 그 즉시 그릉그릉 만족스러운 소리를 낸다. 

강아지나 고양이도 이처럼 원하는 것이 다 다른데, 인간은 오죽할까. 인간이 만족할 수 있는 사랑과 관계의 형태는 사실 셀 수도 없이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나는 반려동물과 나름대로의 사랑을 나누며 충분한 삶의 충족감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에게는 왜 결혼까지 했으면서 아이를 낳는 행복을 선택하지 않는지 의아할 수 있겠지만, 내가 원하는 행복은 이대로도 충분하다.

얼마 전에 팟캐스트 '비밀보장'을 듣는데 소식하는 안영미씨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자기한테 맛있다고 남한테도 맛있는 건 아니에요. 제발 입에 억지로 먹을 거 넣어주지 마세요!" 나에게 좋은 것, 내가 원하는 걸 남에게 강요하는 행동은 사랑이 전제되어도 가끔은 곤욕스럽다.

하물며 서로의 삶에 스쳐갈 뿐인 관계에서는 어떻겠는가. 나는 사랑하는 나의 반려동물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우리만의 행복을 빚어나가면서 사랑을 배우는 삶에 만족하고 있다.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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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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