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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밭을 만드려는 농부는 고사리뿌리를 구입해 심는다. 고사리뿌리를 매매하는 사업자도 있다. 매년 이맘때면 고사리뿌리 캐는 날품팔이를 나간다.
 고사리밭을 만드려는 농부는 고사리뿌리를 구입해 심는다. 고사리뿌리를 매매하는 사업자도 있다. 매년 이맘때면 고사리뿌리 캐는 날품팔이를 나간다.
ⓒ 김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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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투엔 삼십만 원이 들어 있었다. 지난 이틀 고사리뿌리 캐는 일에 날품을 팔고 받은 임금이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이 일로 품을 팔아 춘궁기를 넘겨왔다. 며칠 뒤에 또 하루 이틀 일감이 있다고 하니 그걸로 이 봄을 넘기기엔 충분할 것 같다.

"김 사장. 고사리뿌리 캐는 일이 있는데 어쩔 거여?"

열흘쯤 전부터 시끄러비아지매가 일꾼을 구하러 다녔다. 매년 며칠씩 다니던 고사리뿌리 캐는 날일을 지난해는 하루도 나가지 못했다. 농사가 늘었고, 가족의 만류도 심해서였다. 계속 일을 해오던 몸이라면 괜찮겠지만 겨우내 묵혀온 몸에 이른 봄 고사리뿌리 캐는 일은 무척 버거운 노동이었다.

"읍내 장날에 쓸 용돈 좀 벌어볼까? 언젠데?"
"선거 끝나고 다음날부터 이틀이야."
"내가 힘깨나 쓰니까 일당은 알아서 잘 챙겨주겠지?"


시끄러비아지매는 엄지손가락을 꼽아 보이며 빙긋 웃었다.

고사리뿌리 캐기... 다들 2번이었다

일은 힘들었다. 남의 일을 하면서 돈을 받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가. 게다가 남자일꾼은 나뿐이니 게으름을 피울 수조차 없었다.

함께 일을 하는 아낙들은 포클레인이 파주는 고사리뿌리를 자루에 담는 일을 하고, 나는 그 자루를 20kg으로 포장해 트럭에 싣는 일을 했다. 육칠십 대 산골아낙들이 포클레인 삽날을 따라가며 자루를 채우는 일은 내가 보기에도 버거워 보였다. 포클레인 속도를 따라가려면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수조차 없었다.

저리 애처로운 모습을 보면서 일을 하려니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쉴 참 먹은 뒤로 아낙들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허리 한 번 제대로 펴고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짬이 날 때마다 아낙들은 자루를 잡고 나는 고사리뿌리를 한 아름씩 움켜들어 자루를 채워주었다. 아낙들은 연신 고마워라했다. 내가 쉬어야 할 시간을 그렇게 나누었다. 포클레인 삽날 앞에 고사리뿌리가 밀려 쌓이지 않자 아낙들은 잠시나마 주저앉아 쉴 수 있었다.

"윤석열이가 되었대. 윤석열이가."
"그래. 그래야지. 그쪽이 되어야지. 초저녁에는 조마조마했어."
"우리 영순이가 일번 찍으라 하고 창수는 이번 찍으라고 하더마. 직장 다니는 창수 생각해서 나도 윤석열이 찍었어."


잠시 쉬는 틈에 아낙들은 지난밤 선거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들 2번이었다. 나와는 다른 선택을 했다는 사실 앞에 속이 뒤틀렸다.

그러나 어쩌랴. 그들이 1번을 찍었든 2번을 찍었든 오후 5시가 되어야 포클레인 엔진이 꺼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처지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아낙들의 자루를 채워주었고, 250자루씩이나 20kg으로 포장을 했고, 그것을 트럭에 실어주는 것으로 하루 노동이 끝났다.

개표방송 중 찾아온 손님

지친 몸으로 집으로 들어서자 하루 종일 문간에서 나를 기다렸을 꽃분이가 꼬리를 흔들며 반가이 뛰어나왔다. 밥 때가 되어 고양이들도 떼로 몰려들며 앵얼 거린다. 사료 두어 바가지 퍼주자 모두들 자리 잡고 허겁지겁 배를 채운다.

마루에 걸터앉아 장화를 벗는데 아내가 다가와 있었다.

"고생했어요. 힘들었지?"
"겨우내 놀아서 그런지 여기저기 온 몸이 막 결리네."
"나도 밭일 좀 하느라고 바빴어. 가운데 방에 군불 못 넣었는데 어떡해."
"괜찮아. 씻고 내가 넣지 뭐. 봐, 봐. 삼십만 원이나 벌었어."


나는 자랑삼아 임금봉투를 꺼내 보였다.

"그거 한 십만 원쯤은 보름이 줘. 어제 생일이었는데 아무것도 챙겨주지도 못했잖아요."
"그렇네."


양말을 벗는데 양말에서 흙덩이가 툭툭 떨어졌다.

보름이 우리 식구가 된 지 벌써 아홉 해가 다 되어간다. 해마다 생일이라고 미역국 끓이고 생선도 굽고 했었는데 하필이면 선거와 맞물려 모두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 케이크를 사고 촛불을 밝혔는데 맘이 께름칙했다.

산그늘이 마당을 가로질러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 두꺼운 얼음이 얼던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훈훈했다. 두렁이 이랑이와 산책을 나갔다던 승민네 가족이 두렁이를 앞세워 문간을 들어서고 있었다. 바짓가랑이에 덕지덕지 껴 있는 흙덩이를 떼는데 두렁이가 달려와 콧잔등을 핥았다.

"아유. 힘들었겠어요. 집일도 많을 건데 날일도 나가시고."

승민아빠가 다가와 아무렇게 벗어놓은 장화를 가지런히 세워놓으며 위로하는 말을 건넸다. 승민네 가족은 대여섯 해 전부터 종종 우리 집에 민박을 다녀가는 민박손님이었다. 자주 만나게 되니 식구처럼 편한 사이가 되었다.

대개 두어 달 전에 예약하는데 이번엔 예약도 없이 불각시에 찾아온 거였다. 대통령선거 개표방송이 끝나갈 무렵 문득 내 생각이 나더라며 위로도 하고 위로도 받고 싶었다고 했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고사리밭 아래 감자 심는 산골농부의 모습이 보인다. 저들의 꿈과 평화는 언제쯤 자리잡을까.
 고사리밭 아래 감자 심는 산골농부의 모습이 보인다. 저들의 꿈과 평화는 언제쯤 자리잡을까.
ⓒ 김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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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 맞이 작전명령

몸을 씻고 가운데 방에 군불을 넣었다. 소나무장작 타는 냄새가 좋았다. 오늘 가운데 방 민박예약손님은 남자 넷이었다.

"사장님. 오늘 민박예약한 사람인데요. 지금 막 도착했어요. 주차해놓고 둘레길 걸으려는데 집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요."

고사리뿌리 캐는 일에 한창일 때 전화가 걸려왔었다. 팔팔한 목소리로 짐작컨대 그야말로 '이대남'인 듯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집사람이 안내할 거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아내에게 전화를 넣었다.

"집에 오늘 민박손님이 도착했대. 목소리 들어보니 이대남인 것 같아. 선거이야기는 일체 하지 말기. 보름이와 휘근에게도 말해주고, 승민아빠께도 전달해 주소."

전화를 받는 아내도 무슨 작전명령을 받는 것처럼 신중하게 대답했다.

민박손님과는 저녁밥상을 한 공간에서 함께하기에 어쩌다 선거이야기라도 나오게 되면 자칫 분위기가 안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남의 정치적 성향이 우리 세대와는 많이 다르다는 말을 선거기간 내내 들어왔던 터라 눈치가 보였고 조심스러움이 더했다.

어째 이리 마음이 편치 않을까. 그냥 살아온 대로 살면 되련만 선거뒤끝이 온통 울퉁불퉁 가시방석이다. 사람을 만나도 반가운 마음은 고사하고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대남이라서 그렇고, TK PK 지역이라고 그렇고, 나잇살이나 먹었다고 또 그렇다. 선거 때마다 편이 갈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지만, 비로소 남자와 여자마저 편이 갈렸으니 이 골 깊은 후유증이 잘 안 메워질 것 같다.

별의별 생각

아궁이 불은 활활 타올랐다. 부지깽이를 탁탁 두드리면서 주머니 속 임금봉투를 만져보았다. 아내와 섬진강 쪽으로 꽃구경이라도 다녀올까. 우리 서하 먹을 사과 한 상자 주문해야지. 읍내 장날 생대구라도 한 마리 사올까. 이번 겨울엔 대구탕 한 번 먹어보지 못했네.

봉투를 매만지는 손길에 자꾸 힘이 갔다. 어디 평화운동하는 단체가 어려울 거라는데 거기 후원금이라도 보낼까. 팟캐스트나 유투버들도 어려울 거라는데 거기도 도와야 되지 않나. 4대강도 원전도 다 물 건너갔네. 최저임금은 어찌되는 거야. 휘근이 아직 민방위일 건데 전쟁이라도 나면 어떡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고작 삼십만 원 임금봉투를 매만지면서 문득 민박방에 군불을 넣는 산골농부의 고민이 너무 고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장날 심은 사과나무 살까 하는 걱정이나 하면 되련만 생각은 자꾸만 세상 밖을 넘나든다.

그래. 이젠 좀 달라지고 싶어. 내가 뭐라고 그런 생각을 해? 그냥 고깃국이라도 챙겨 먹으면서 살아야지. 1번이 뭐며 2번이면 어때? 오늘 2번 찍었다는 아줌마들 일도 많이 도와줬잖아. 시끄러비아지매도 2번 찍었을 걸?

순간순간 이글거리는 장작불꽃 속으로 한숨이 푹 나왔다.

저녁 밥상머리에 승민네 가족과 우리 가족이 나누어 앉았다. 내 걱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늦게 도착한 이대남 손님들은 씻어야 한다며 밥시간을 늦추었다.

승민아빠와 반주로 소주를 따랐다.

"내일 읍내 장날인데 뭐 필요한 거 없어?"
"아무 거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사와요. 서하 그림물감 산다며."
"그래. 우리 서하 그림물감도 사고, 스케치북도 사야지."


아내는 저녁반찬으로 잡채를 엄청 많이 만들었다. 잡채가 맛있는지 휘근이는 세 번 네 번 덜어먹는다. 승민아빠도 두 접시째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았다. 술을 잘 안 마시는 아내도 승민네가 가져온 고급스런 와인을 두어 잔 받아 마신다. 얼굴이 불콰해지고 눈동자가 약간 흐물거리는 듯하다. 오늘 설거지는 내 몫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다.

"자. 십만 원이다. 이걸로 옷이라도 하나 사 입어라."

나는 임금봉투에서 떼내어 준비했던 10만 원을 보름에게 건넸다.

"생일이었는데 아무런 선물도 준비 못해 미안한가 보다. 그러려니 하고 받아라."

곁에서 아내가 손뼉을 치며 말을 거들었다. 보름이는 머뭇거리며 그 돈을 받았다. 며느리에겐 역시 시아버지라며 승민네 가족도 덩달아 손뼉을 쳤다. 괜히 머쓱해서 술잔을 기울이고 젓가락으로 잡채를 집었다.

제기랄. 면발은 안 집히고 고명만 집힌다.

태그:#산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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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다 경남 함양군 지리산 기슭으로 귀농하여 농부가 되었다. 경남작가회의 회원으로 틈틈이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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