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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 3.1 운동기념탑
 오수 3.1 운동기념탑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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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할 때, 3월 10일 임실 오수면에서 보통학교 학생들이 만세 시위를 시작하였다. 보통학교 학생으로서는 전국에서 처음이다. 지난 10일, 3·1 독립만세운동 103년 주년을 맞아 참배하며 항일 항쟁의 숭고한 정신과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오수면 오수리 오수중학교 가까이에 있는 오수 3·1 동산에는 오수 3·1 독립운동 기념탑이 있으며, 오수 3·10 만세운동의 현장인 오수초등학교 교정에는 설산 이광수(1896-1948) 선생의 기념비가 있다.

1919년 3월 오수공립보통학교에 설산 이광수 선생이 훈도로 재직하고 있었다. 선생은 상경하여 3월 3일의 고종 황제 국장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민족지도자 손병희 선생을 만나고 오수로 돌아왔다. 선생은 학생들에게 독립만세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설산 이광수 선생 의거기념비
 설산 이광수 선생 의거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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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0일 오전 10시에 오수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였다. 학생들은 독립선언서를 함께 읽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 학생들로서는 전국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이었다. 학생들은 "대한 독립 만세!"를 목청껏 외치며 오수 시가지로 진출하였다.

일본인 교장과 순사들이 허겁지겁 학생들의 만세운동을 제지하였다. 학부모들을 불러 훈계하고 학생들에게 경고하였다. 일본 경찰들이 학생들을 위협하고 회유하며 배후를 찾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모두가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어떤 낯선 사람에게 받았다고만 말했다.

임실군청 사환 소년의 3·1 독립운동 의거!
 
임실 3.1 운동 기념비
 임실 3.1 운동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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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에 문명근(1902-1976)은 16세의 소년으로 임실군청 사환이었다. 소년은 임실군청에 결근하고 서울에 가서 고종의 국장에 참석하였다. 서울에서 3·1 독립만세운동의 민족적 의거를 보고 임실로 내려왔다.

소년은 곧바로 군청에 사직서를 냈다. 1919년 3월 5일 당시에 전라북도에는 11개 시군에 한국인 군수가 재직하고 있었다. 소년은 독립운동 참여를 권유하는 격문을 지어 이 군수들에게 보냈다. 이 격문을 받은 군수 중에 몇 명이 이 격문을 임실군청으로 반송했고 임실군청은 발칵 뒤집혔다.

일경들은 혈안이 되어 격문을 작성한 주인공을 찾으려 했다. 문명근 소년은 처음에는 관심 대상 밖이었다. 그러나 소년이 서울 다녀온 행적과 군청에 사직한 것이 의심받았다. 이에 필적을 대조하게 되어 일경에게 붙잡혔다. 소년은 5월 16일에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이라며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기미년 3월 10일 오수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독립만세운동을 시작으로, 임실 장날인 3월 12일 10시에 임실 장터에서 남녀노소 주민 2000여 명이 참여하는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일제 군경의 무력 진압으로 흩어졌다가 모이기를 반복하였다. 저녁에는 뒷산에서 봉화를 올리며 1000여 명이 모여서 만세운동을 계속하였다. 3월 13일, 15일, 23일에는 오수에서 독립만세운동이 계속되었고, 임실 지역 전체로 확산하였다.

해마다 임실군 오수면 오수초등학교와 오수장터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참여하는 오수 3·1 독립만세운동 행사가 재현된다. 오전 10시에 3·1기념탑 참배하며,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삼창을 한다.

오수장터까지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시가행진하면서 기미년 3·1 독립운동의 정신을 되새긴다. 코로나19 범유행으로 몇 년은 이러한 의미 깊은 행사가 중단되었지만, 내년에는 이 행사가 재현되기를 기대한다.

오수와 임실 지역의 문화 역사적 토양!

예로부터 남원의 관문이었던 오수 역참은 고려 시대부터 호남 좌도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오수는 교통과 상업의 중요한 거점으로 임실 남원 순창 장수 지역 사람들이 서로 만났다.

3·1 독립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백용성(1864-1940) 조사와 자암 박준승(1866-1927) 선생이 이 지역 오수와 관련이 깊다. 동쪽의 장수군 번암면은 백용성 조사의 출생지이고, 서쪽의 임실군 청웅면은 자암 박준승 선생의 출생지이다.

또한 구한말 호남지역 의병장인 정재 이석용(1877-1914)은 오수 북쪽의 임실군 성수면 출신으로 1907년부터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항일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전해산(1879-1910) 의병장은 이 지역 오수면 출신으로 전남 장성을 중심으로 항일 의병 활동을 하였다.

오수면 둔덕리의 삼계강사(三溪講舍)는 조선 중기에 건립되었는데, 이 지역의 정신 문화적 지주가 되어왔다. 이 삼계강사가 오수공립보통학교의 초기에 학교 설립의 터전이 되었다. 이 둔덕리의 한 가문에서 이기송(1888~1939) 선생 등 16인의 애국지사가 오수 3·1 독립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렀다.

이러한 문화 역사적 배경은 임실 오수 지역이 3·1 독립만세운동의 전국 10대 의거지의 한 곳이 되는 충분한 토양이 되었다.

임실 3·1 동산의 3·1 운동 기념비
 
임실 3.1 동산 독립선언서 비문
 임실 3.1 동산 독립선언서 비문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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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읍 이도리 3·1 동산에는 임실 3·1 운동 기념비가 있다. 이곳 3·1 동산에는 3·1 운동 기념비를 중심으로, 삼일문(三一門)이 있으며, 3·1 독립운동의 정신과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를 추모하는 영모정(永慕亭)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吾等은 玆에…… '로 시작되는 국한문 혼용체의 독립선언서 전문이 새겨진 독립선언서 비석이 있어, 읽다 보면 숙연한 마음이 된다.

이곳 임실 3·1 동산에서 내려다보면, 임실 향교 앞으로 기미년 3·1 독립만세 운동의 함성이 가득했던 당시 임실 장터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현재의 임실 시장은 얼마 떨어진 곳으로 이전해 있다. 지금은 흔적이 없는 옛날의 임실 장터 위치에 기미년 3·1 독립만세운동을 확인할 수 있는 기념물이 설치되면 좋겠다.
 
임실 3.1 만세운동 옛 장터
 임실 3.1 만세운동 옛 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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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독립만세운동 103년 주년을 맞아 임실 오수면의 3·1 동산과 임실읍의 3·1 동산을 3·1운동 기념비를 찾아보았다. 이 기념비들이 이 지역에서도 기미년 그날의 숭고한 정신을 영원히 기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애국심 함양과 올바른 민족정기를 세우는 소중한 현충 시설임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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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임실군 문화관광해설사]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우리 지역의 가까운 고갯길을 걸으며 기사를 엮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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