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끝났다. 0.7p%로 승패가 갈렸다. 아바의 노래 'The Winner Take it All'처럼 승자 독식으로 마무리 되었다. 복잡한 마음을 달래고자 아껴두었던 영화 <킹메이커>를 보았다.
 
킹메이커는 김대중과 그를 도왔던 킹메이커 엄창록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정치 영화다. 1960년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네 번 낙선한 정치인 김운범 앞에 선거 전략가 서창대가 찾아온다. 열세인 상황 속에서도 서창대는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던 선거 전략을 펼치며 김운범을 대통령 후보까지 올린다. 문제는 그가 사용하는 방법이 야비하다는 점이다. "이 서창대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아슈? 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외치며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해 승리를 쟁취한다.
 
실제 엄창록은 '마타도어의 귀재', '선거판의 여우'라고 불렸다. 또한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역감정을 선거판에 끌어들인 사람으로 추정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 3명 김대중, 박정희, 노태우에게 지원요청을 받은 유례없는 킹메이커인 셈이다.
 
영화는 이처럼 흥미진진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며 1960~70년대를 잘 재현한 동시에 <불한당> 감독답게 스타일리쉬한 화면으로 눈을 호강시킨다. 특히 화면 속에서 빛의 영역에 있는 김운범과 그림자에 가려진 서창대를 계속적으로 비춰줌으로써 서창대가 가지는 동경, 열등감, 자기비하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주연배우 설경구, 이선균은 물론이고 조연인 조우진까지 모든 배우가 제 역할을 하며 구멍없는 연기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설경구는 김대중을 모방하는 연기를 하지 않음에도 김대중과 오버랩 되는 느낌의 장면들이 많다.
 
 영화 <킹메이커> 포스터

영화 <킹메이커> 포스터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현실 속 킹메이커들의 모습
 
또한 시기가 시기인만큼 이번 대선의 여러 인물들과 겹쳐 보였다. 가장 먼저는 엄창록만큼이나 여러 차례 킹메이커 역할을 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다. 그는 새누리당 비대위원 시절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와 제18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시절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시절의 2021년 재보궐선거 등에서 승리를 이끌어 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대놓고 윤석열 후보에게 "후보도 태도를 바꿔서 우리가 해준 대로만 연기만 좀 해달라"라고 했다. 가급적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한 말이라고 해명을 했지만 그의 말은 먹히지 않고 킹메이커 자리에서 밀려났다. 영화 속에서는 킹메이커 서창대가 김운범에게 내가 당신을 그 위치에까지 올린거야라고 하는가 하면 서창대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자작극을 제안하자 여기가 서커스장은 아니지 않냐라고 하며 대립한다.
 
사실 너무 대놓고 연기라는 말을 해서 그렇지 선거는 대중들이 뭘 원하는지, 그에 맞춰 어떤 이미지로 다가가야 하는지가 중요하기에 후보는 많은 참모들이 마련해준 조언에 따라 언행을 맞춰가는게 중요하다. 그럼에도 어디까지나 킹메이커는 보조 역할이다. 또한 우리는 자기 철학 없이 킹메이커들에 끌려가 탄핵을 당한 대통령을 두 번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두 번째 생각난 인물은 젊은 킹메이커를 자처한 이준석 대표였다. 헌정사상 최초의 30대 당 대표의 등장은 영화 속 40대 기수론 만큼이나 신선한 반란이였다. 또한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화려한 말솜씨로 보수 진영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될 정도였다. 오죽하면 40세 이상만 대통령 출마할 수 있는 헌법 개정 의견까지 나왔겠나.
 
하지만 첫 등장의 신선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영화 속 서창대가 김운범을 낙선시키기 위해 지역주의로 갈라치기를 한 것처럼 이대남을 필두로 세대를 나누고 성별을 나눴다. 그의 세대 포위론 전략은 성공하는 듯 해보였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지역주의라는 혐오의 정치공학은 늘 성공해오지 않았나. 젊은 세대에게는 더 이상 통하지 않으니 새로운 혐오의 프레임이 필요했고 젠더 갈등은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2030 남성의 높은 지지율을 기반으로 2030 세대 전체에서 윤석열 후보가 크게 앞선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막판에 여성 투표의향 남성보다 떨어진다고까지 말 할 정도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2030 여성들은 똘똘 뭉쳐 윤석열 후보를 응징했다.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이번 선거의 승자는 2030 여성이 되었다.
 
그럼에도 젠더 갈등의 갈라치기는 심어졌고 일부 효과를 발휘했다. 이런 걸 보면 선거란 누가 더 야비하게 상대방을 물고 늘어지고 갈라치기를 잘 하느냐에 달려있는지 모른다. 흔히들 정치 공학이라고 하지 않나. 게다가 민주당 역시 네거티브 선거가 중심이 된데다 안치환이 '마이클 잭슨 닮은 여인'을 노래한 것처럼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 역시 혐오에 기반한 선거운동을 했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영화 <킹메이커>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왜 이겨야 하는지가 중요한 법

그렇기에 더더욱 김운범의 "어떻게 이기는지가 아니고 왜 이겨야 하는지가 중요한 법이오"라는 대사가 빛나 보인다. 그리고 난 이번 선거에서 가장 빛난던 발언으로 심상정 후보가 마지막 TV토론 마무리에서 한 다음 말을 꼽는다.
 
"제 지지율이 지난 대선 절반인 3% 수준이다. 솔직히 3배 더 받아서 10%를 넘기고 싶다. 수많은 힘 없는 비주류 시민들의 목소리가 주류가 되는 그런 시대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파견직, 일용직, 프리랜서 특고, 그리고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리를 3배는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의 위험, 또 성차별 임금 그리고 육아독박을 3배는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에서 기후 정의국가로, 주 4일제 복지국가 혁신의 국가로, 가난과 의료비 걱정 없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그런 나라로 만드는 데 3배는 빨리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킹메이커'라는 상투적인 단어에 딴지를 걸어본다. 우리는 5년간 국민을 대신해 여러 일을 할 머슴을 뽑는 거지 킹을 뽑는게 아니다. 헌법 제1조에 나와있듯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렇기에 대통령이란 머슴을 만드는 사람은 국민들이다.
킹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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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연구자, 청소년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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