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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은 정부와 납세자 간의 사회계약이다. 법적으로는 정부의 일방이나 강제로 보이지만 서로 오고 가는 것이 있는 사회적 합의의 영역에 가깝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정치'라고 부른다.

그래서 세금과 재정의 절반은 정치다. 정부는 세금 내는 걸 좋아할 리 없는 유권자의 욕망을 거스르며 과세를 해야하고 그를 통하여 유권자를 위한 사회적 투자와 재분배를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조세 측면에서 봤을 때 유능한 정부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세금을 융통성 있게 거둘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정부'라 할 수 있다.
 
전주성, <재정전쟁>
▲ <재정전쟁>  전주성, <재정전쟁>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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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정부의 시대 

책 <재정전쟁> 저자에 따르면 '큰 정부 vs. 작은 정부'의 대립항은 정치적 이념에 따라 결정되는 사안이 아니다. 역사적 경험을 돌아봤을 때 선진국에서 정부의 크기를 결정한 요인은 집권정당의 이념보다는 시대적 조류에 가까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수정자본주의가 트렌드였고, 1980년대에는 감세정책과 신자유주의화가 진보와 보수를 불문한 주류가 되었으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불평등 해소를 위한 큰 정부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2022년 대한민국은 어떤 시대적 조건 하에 놓여 있는가? 우리는 팬데믹, 양극화, 기후위기, 글로벌 공급망 위기라는 상황 앞에 놓여있다. 이를 고려했을 때 오늘날 전세계의 흐름은 '작은 정부'보다는 '큰 정부의 시대'에 가깝다. 

현재 OECD의 GDP 대비 복지지출 규모는 평균 20%이고, 한국의 복지지출 규모는 12%이다. OECD의 평균 조세부담률은 33% 수준이고,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7% 수준이다. 이 통계에 근거한다면 OECD와 우리나라 사이의 복지지출 격차 8%를 줄이기 위해선 증세로만 30% 정도의 부담이 더 요구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증세이다.

이를 고려했을 때 선진국 평균 수준의 복지를 하겠다고 하는 건 쉽게 얘기할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조건을 고려하여 어떤 단계적 절차를 밟아서 합리적인 증세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양극화 시대에 증세의 부담을 모두가 동일하게 짊어질 수는 없으므로 그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전략도 요구된다. 

증세를 위한 전략

부자 과세는 불가피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의 집중은 불가피하고, 그 결과로 부자가 세금을 더 내는 것은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국가의 지원 하에 육성된 재벌체제와 지대 추구에 대한 과세는 당위적인 명분도 있다. 그러나 이를 무턱대고 강제할 수는 없다. 

다른 측면에서 보유세 인상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보유세 인상은 선의에 입각한 부동산 대책이자 재분배 전략이다. 그러나 전세시장이란 독특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보유세 인상은 '조세전가'라는 안타까운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형태의 조세전가를 포함하여 부자는 애초에 조세 회피 능력이 탁월하고 여론전을 통해 조세저항을 해내는데도 능하다. 그러므로 당위론에 입각한 '부자 과세의 폭주'는 역효과만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합리적 부자 과세를 위한 논리 개발을 강화해야 하고, 그들의 납세자 주권을 인정하며 자발적인 납세를 가능케 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저자는 증세 방안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답안을 제시하진 않는다. 그러나 수익자 부담원칙, 능력 원칙, 수직적 형평성 등 우리가 조세정책을 다룸에 있어서 생각해야 할 몇 가지 틀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틀에 한국적 맥락을 넣었을 때 어떤 정책적 조합을 도출할 수 있을지에 관한 가능성을 얘기한다.

예컨대 한국 사회에서 증세는 소득세율을 중심으로 논쟁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에서 소득세의 비중은 적고, 넓은 중산층 과세가 어렵다는 측면 등에서 저자는 이런 논쟁의 함몰이 다양한 논의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현금성 복지에 대한 논의를 넘어선 무형적 복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함을 지적하며, '적절한 지출-연계'를 고려한 목적세를 활용해 편익 원칙을 확대할 수 있는 조세 조합을 찾아야 한다는 방향성도 강조한다.

소득세와 법인세 간의 세원 이전 문제에 관한 저자의 접근법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세원 이전은 최고 소득세율이 최고 법인세율보다 높음으로써 발생하는데 흔히 진보는 법인세율을 높여서 차이를 줄이면 된다는 식의 접근을 하고는 한다. 그러나 OECD 평균 수준인 법인세율을 올리는 것은 기업 경쟁력과 상충되는 문제점이 있다.

저자는 이런 점을 고려하여 법인세 인상보다는 소득세율 감세를 대안으로 얘기한다. 증세를 주장하면서 감세를 얘기하는 걸 모순이라 할 수도 있지만, 한국 사회의 높은 지하경제 수준이나 소득공제 비율을 낮춤으로써 과세 베이스를 늘린다는 전제 하에 소득세율을 낮춘다면, 오히려 그 방향이 갭을 줄이고 세수를 거두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장기적 안목을 갖춰야

저자는 "단기와 장기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와 같이 조세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당연하지만 그래서 더 뜯어봐야 할' 도식의 틀을 강조한다. 예컨대 단기적인 관점에서 재정적자로 위기에 대응하는 자동안정장치는 필요하다. 성장률이 이자부담률보다 높다면 재정적자는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증세의 문제를 회피하며 재정적자로만 복지 확대를 감당하는 것은 리스크가 큰 일이기에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는 안정적 경제성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성장이 안정적이어야 고용을 유지하고 세수를 증대시킬 수 있다.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는 수출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고, 인구 감소와 교육 문제를 다루는 구조개혁과 생산성 향상이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다음 대통령이 해야할 가장 중대한 과제로 교육개혁과 연금개혁을 꼽기도 하였다.

또 단기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소득세-법인세 이전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소득세율을 낮추는 게 오히려 낫다'는 맥락과 유사하게, 일단은 복잡한 조세제도의 비효율성을 개선하는 방향의 개혁에서 증세를 출발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물론 이런 '세제 단순화'도 만만하게 생각할 일은 절대 아니지만, 그럼에도 다음 정부가 첫 번째 단계로 시도할 만한 조세개혁 과제가 있다면 이를 추진해볼 만하다. 

다음 정부의 과제

나는 윤석열 당선인이 이 책을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윤 당선인은 본인이 알건 모르건, '재정 전쟁'을 지휘하는 대한민국의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종부세 폐지를 비롯한 대대적 감세를 약속했다. 이런 개혁안은 분명 필요한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문재인 정부의 안티테제로서 '작은 정부와 대규모 감세'를 시대정신으로 상정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불러 일으킨다.

그저 프리드먼의 책을 인상 깊게 읽었고, 부자 때려잡는 세금은 자유가 아니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는, 그런 검찰주의 리더십으로는 조세의 문제를 절대 풀 수 없다. 세금과 복지의 절반은 정치이고, 정치는 대화와 타협에 입각한 사회적 합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이 그런 합의적 정치의 가치에 입각해서 지속 가능한 증세의 방향을 모색하길 기대한다. 유능한 정부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기재됩니다.


재정전쟁 - 세금과 복지의 정치경제학

전주성 (지은이), 웅진지식하우스(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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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과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학생. 영화와 예술에 대해 떠들기 좋아하는 시네필. 두 정체성 사이 어느 지점에서 글을 써보려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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