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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참관인 명패와 안내문
 투표참관인 명패와 안내문
ⓒ 황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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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처음으로 대선 투표 참관인을 했다. 민주주의와 첨정권의 소중함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공정한 투표를 위해 긴 시간 애쓴다는 것을 눈앞에서 보는 괜찮은 경험이었다. 투표 참관인은 그냥 앉아만 있으면 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안내 지침서를 보니 지켜야 할 일들이 있었다.

'투표간섭 또는 부정투표 발견 시 투표관리관에게 이의제기 및 시정 요구'를 할 수 있고 투표소 안에서 사고 발생 시 그 상황을 촬영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투표함 투입구 특수 봉인지에 서명을 해야 하고 투표함의 봉쇄와 봉인 과정을 촬영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중요했다. 선거인에게 질문하는 행위라던가 투표사무를 간섭하거나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언행을 하면 큰일 난다. 그래서 어떤 분은 옷 색깔도 신경 쓰이니 검은색으로 입었다고 했다.
 
투표참관인이 지켜야 할 일
 투표참관인이 지켜야 할 일
ⓒ 황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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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긴장했지만 엄청 엄숙하거나 도서관처럼 숨죽이듯 조용하지는 않았다. 역사적인 현장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려는 부모님의 모습은 훈훈했고 처음 투표하는 자녀를 챙기는 부모도 참 좋아 보였다.

한 두어 시간 지났나 시간을 보았더니 삼십 분밖에 안돼서 깜짝 놀랐다. 약간 지루한 가운데서도 신분증을 깜박 기표소 안에 두고 간 시민이 3명이나 발생했고 투표소를 잘못 알고 와서 발길을 돌리는 시민은 생각보다 많았다. 내가 참관한 투표소에서만도 대여섯 명 이상은 된 듯했다.

또한 신분증 제시와 함께 마스크를 잠깐 내려달라는 부탁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시민도 있었다. 그래서 투표 사무관이 선거관리법상 본인 확인 절차가 고지된 선관위의 시행규칙을 제시하는 해프닝도 있긴 했지만 문제가 될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20대 대선 투표절차에 대하여
 20대 대선 투표절차에 대하여
ⓒ 황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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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정도가 지나서는 시민들의 투표하는 행위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기표 전후에 쭈뼛쭈뼛 두리번거리는 걸 보니 투표를 처음 하는 듯해 보였다. 접어서 넣느냐? 몇 번 접으면 되냐? 질문하는 걸 보니 역시 처음이 맞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이 지팡이와 함께 겨우겨우 한걸음 한걸음 떼면서 들어서면 모든 시선이 쏠리곤 했다. 휠체어와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들어오는 시민도 있었지만 정작 기표는 혼자 직접 해야 했다. 손을 떠는 어르신은 도장이 칸 밖으로 삐질까 봐 몹시 걱정하는 표정이다.

나에게는 일도 아닌 것이 누구에겐 찍고 싶은 곳에 찍는 것 마저 쉽지만은 않겠구나... 투표참관인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면, 저 떠는 할머니 손을 보지 않았다면 생각 못했을 것이다. 아마 그 순간만큼은 숨을 참고 찍으셨을지도 모르겠다.

비장한 얼굴로 들어선 한 시민은 기표소 안에서 호호 불기도 했고 잘 마르라고 투표지를 팔락팔락 흔드느라 바로 나오질 않았다.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보내는 한 표가 부디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기표소 밖 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사실 나도 그랬으니까.

또 어떤 시민은 기표서 안에서 한참을 망설이는 모습도 보였다. 아직 결정을 못한 듯했다. 맞다. 아무나 찍을 게 아니라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떤 대통령을 갖고 싶은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몇 번씩이나 꼭꼭 접힌 투표용지가 있는가 하면 마치 '내가 누구 찍었나 한번 볼래?'라고 말하듯이 붉은 도장을 완전히 내보이며 펼친 채 당당히 하강하는 투표용지도 있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담는 건 다 똑같을 것이다.

행여 자신의 기표가 누구에게라도 보일세라 기표소에 들어가서는 등 뒤의 커튼을 손으로 잡아끌어 틈을 안 보이게 하는 시민도 있었다. 얼마나 소중하면 저럴 수 있을까. 그분의 살 떨림의 진동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누군가에게 권력을 쥐어주는 일은 살 떨리는 일이다. 살 떨리는 민주주의를 가지기 위해서 얼마나 싸우고 갇히고 죽어갔는지 우리는 안다. 그 수많은 선조들의 붉은 피가 내 안에서도 떨고 있는 것만 같았다.

총과 칼로, 그전에는 돌도끼와 창으로 권력을 쟁취하던 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인류가 이제는 투표란 것을 한다. 평론가들은 매일 저녁 정치토크쇼에서 국민의 분열로 나라가 망할 것처럼 매도하지만 참정권을 얻고자 흑인과 여성들이 싸웠던 때에 비하면 이 얼마나 평화로운가.

생각하면 감격스러워 눈물 날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하루가 지나면 아니 당장 오늘 밤이면 누군가는 이겼다 할 것이고 누군가는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정치는 정치인이 한다? 아니다. 정치는 시민이 하는 것이다.

폭력과 전쟁이 편하고 쉬울 텐데 우리는 이 불편한 투표를 한다. 그렇다. 민주주의는 불편한 것이다. 반복해서 설들을 해야 하고 귀찮게 토론을 해야 하고 많은 것이 비효율적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는 이 민주주의란 것이 가장 좋은 것이기에 나는 이 투표현장에 다음 선거에도 참여해야겠다는 거룩한 생각을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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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독거노인 비혼주의 여성. 한창 일할 사십 대 자발적 조기 은퇴, 지금은 돈 안 되는 텃밭 농사꾼이자 최소한으로만 노동하는 백수형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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